전기요금제 개편 논의가 무르익으면서 가정용 누진제 개선 외에 꾸준히 도입 필요성이 제기돼 온 연료비 연동제가 실현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새누리당이 정부, 한국전력과 함께 운영중인 당정 전기요금 TF(태스크포스)의 검토 과제 중 하나로 포함됐고,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여야 가리지 않고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연료 가격 상승기 자동인상으로 인한 여론 부담 등으로 정부, 한전, 여야 모두 적극 나서기는 꺼려하고 있어 이번에도 채택이 될지는 미지수다.
◇"지금이 도입 적기" 연료비연동제 도입 주장 봇물= 5일 전남 나주 한국전력 본사에서 열린 한국전력과 자회사들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윤한홍 새누리당 의원은 “나중에 유가가 100불, 120불 가면 그때 가서 또 전기요금을 올려달라고 할 것인가”라며 “에너지 가격이 올라가면 자동으로 전기요금을 올릴 수 있는 체계로 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정우택 의원도 “가스 요금은 연동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전기요금도 연동제를 고민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질의했다. 더민주의 이훈 의원도 이날 질의에서 연료비연동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고, 같은 당 유동수 의원도 지난 27일 산업통상자원부 국감에서 “전기요금이 대통령 말 한마디에 좌우되는 게 아니라 시스템과 합리성에 의해 정해지려면 연료비 연동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료비연동제는 원가 비중이 높고 통제가 곤란한 연료비 변동분을 전기요금에 자동적으로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연료 가격이 상승하면 전기요금이 비싸지고, 하락하면 요금이 싸지기 때문에 합리적인 전력소비가 가능하고 전기사업자 입장에서도 수익구조가 안정적으로 유지돼 재무위험이 완화될 수 있다. 정부도 지난 2011년부터 연동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연료비 상승기와 맞물려 도입을 미루다 2014년 도입 계획을 취소했다.
이번에 연료비연동제 도입 논의가 다시 불붙고 있는 것은 여름철 ‘전기요금 폭탄’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연동제가 도입됐더라면 이미 유가 하락분 만큼 전기요금이 내려가 여름철 전기 사용량 증가에 따른 전기요금 부담도 상대적으로 작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원가 하락 분이 전기요금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서 소비자들은 늘어나는 전기요금에 허리가 휘는데 독점 사업자인 한전은 막대한 수익을 남기는 불합리한 구조가 부각되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지난 2011년 연료비연동제 도입이 실패했던 것이 연료비 상승기 요금인상에 대한 부담이었던 만큼 연료비가 크게 하락한 지금이 도입의 적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당정이 운영하는 전기요금 TF에서도 연료비연동제를 검토 과제에 포함시켰고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지난 27일 국감 답변에서 “원가를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체계가 돼야 지속 가능한 것”이라며 연료비연동제 도입 필요성에 공감했다. TF는 오는 10월말 공청회를 거쳐 11월말까지 전반적인 전기요금 제도 개편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가격 인상기 부담" vs "급상승땐 인상 제한 가능"= 하지만 이번에도 연료비연동제 도입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정부와 한전이 연료비 인상기에 가격 인상에 대한 부담 등으로 여전히 망설이고 있기 때문이다. 연료비가 하락할 때는 전기요금이 자동으로 내려가고 오를 때는 정치적인 부담으로 인상에 제동이 걸릴 경우 수익 악화를 감수해야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체 발전 원가에서 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과거보다 낮아져 도입 필요성이 줄었다는 논리도 편다.
조환익 한전 사장도 이날 국감 답변에서 “(연료비연동제는) 하나의 검토 대상이지만 과거처럼 절대적 필요성은 떨어졌다”면서 “연료비 비중이 확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연료비연동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쪽은 연료비 비중이 떨어졌다고 해도 지난해 기준 57%로 여전히 전기요금 원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주장한다. 또 일본처럼 연료비 급상승에 따른 요금 인상을 막기 위해 기준연료비를 설정하고 요금변동폭을 기준연료비 대비 150% 정도로 상한을 정하거나 가스요금처럼 국제 에너지 가격 또는 환율이 급등해 연료비가 현저히 상승할 경우 연료비연동제를 일시 유보토록 하는 방식 등으로 부작용을 최소화고, 장점을 살리는 방안을 찾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윤한홍 의원은 “온실가스 감축비용, 설비투자 등에 따른 송배전 비용 등은 해외 주요국도 마찬가지인데 미,일 등은 연료비연동제를 실시하고 있다”면서 “연동제 도입을 통해 전기요금 변동성 확대를 제어하고 국민의 합리적 전력 소비를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가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는 2011년 7월부터 전기요금을 국제유가 등과 연동하는 정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고유가로 급등한 발전원가를 전기요금에 반영하기 위한 취지였다.
2008년 9월 당시 김쌍수 한국전력 사장은 "전기요금 연동제가 필요하다"며 "정책용역을 추진 중"이라고 언급했다. 이듬해에는 3개월 단위의 연동제를 실시하겠다는 자세한 정책 방향을 설명하기도 했다. 2010년 10월 국감에서 김진표 민주당 의원이 연료비 연동제로 전기요금이 오를 수 있다고 우려했지만, 김 사장은 "연동제는 인상만 있는 게 아니고 내려갈 수도 있다"며 추진 의지를 재확인했다.
연동제 시행을 한 달 앞둔 2011년 6월17일 국회 지식경제위 전체회의에서 관련 내용은 심도있게 논의됐다. 정부는 고유가가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 수요를 조절하기 위해 연동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연동제의 도입에 따른 전기요금 상승에 대한 지적은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에서도 제기됐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이 연동제에 우려를 표명한 셈이다.
정만기 당시 지식경제부 기획조정실장은 "현재 원가 이하의 낮은 전기요금 때문에 전기 과소비와 에너지 사용의 왜곡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국내 전기요금은 OECD 국가 평균의 절반 이하 수준이며 이로 인해서 국내 제조업의 전력 소비량이 많고 석유류 소비가 전력으로 대체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며 "연료비 연동제 시행으로 요금체계를 개선하고,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낙성 전 새누리당 의원은 "한전의 전기요금은 발전·송전·변전·배전 등 고정비와 연료비인 변동비로 구성이 되는데 이 중 연료비가 80%를 차지하고 있다"며 "연료비 연동제가 시행되면 전기요금이 약 6~7% 인상될 것으로 예측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계부채가 엄청나게 오르고 있고, 물가도 어렵다. 전기요금을 이렇게 또 일시에 올리면 산업계도 큰 타격을 받는다"며 "아렵게 사는 서민들의 전기요금을 일률적으로 올리려고 할 게 아니다. 전기요금이 낮아서 낭비되는 부분에 요금을 많이 올려야 한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정부는 당시 시행예정이었던 연동제를 돌연 무기한 연기했다. 2014년에 들어서는 아예 백지화하기에 이르렀다. 물가가 급격하게 올랐던 영향이다. 당시 유가가 일반적으로 배럴당 100달러에 달하던 때라 연동제를 실시하면 전기요금이 오를 수밖에 없었다. 전기요금 인상을 불러올 연동제는 정권 차원에서 정치적 부담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
상황은 2014년 하반기 들어 반전됐다. 배럴당 100달러 내외를 유지하던 유가가 50달러 수준으로 급락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저유가 시대가 개막되며 연료비 연동제를 실시할 경우, 전기요금이 현재 수준보다 떨어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올들어서는 오히려 정치권이 연동제를 강력하게 주문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윤한홍, 더불어민주당의 유동수 의원 등이 산자위에서 실시를 촉구했다. 전기요금 당정 태스크포스(TF)도 연동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유가 시절 전기요금 인상을 의식해 연동제를 반대하던 정치권이, 저유가가 오자 찬성으로 돌아선 것은 포퓰리즘적인 모습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유가라는 것이 등락이 있기 마련인데, 유가가 다시 상승하기 시작하면 연동제가 오히려 서민들의 발등을 찍는 사안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같은 맥락에서 더민주는 최근 발표한 전기요금 개편안 논의에서 연동제를 아예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기료 연동제, 美 판매업자-日 수요관리 중점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는 물가에 따른 소비자의 합리적인 전력소비 유도, 전력판매사업자의 재무적 안정을 위해 복수의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달 발표한 '공공기관 요금체계 평가'에 따르면 미국, 일본, 영국, 캐나다, 아일랜드, 중국, 필리핀 등에서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유가 등 발전에 필요한 연료비를 반영해 요금을 조정하는 기간에는 각 국가별로 차이가 있다. 연동제의 목적을 보면 미국의 경우 전력판매업자의 재무적 안전성에, 일본의 경우 소비자의 전력소비 유도에 보다 포커스가 맞춰져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은 주별로 요금제가 천차만별이지만, 전력산업 구조개편 과정에서 가격상한제를 우선 실시한 이후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해왔다. 최초 1950년대부터 시작됐지만, 1970년대 중후반 무렵 오일쇼크로 인해 전기사업자의 재무상황이 악화되자 대부분의 주가 연동제를 채택하기에 이르렀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전체 전기요금에서 연료비를 별도로 분리해 연 1회 연료비 요금단가를 산정하는 방식이다. 연료비 요금단가는 매년 연료비 전망치를 기준으로 산정한다. 전망치와 실제 실적의 차이분은 이듬해에 반영해 소급한다. 예컨대 올해 kWh당 예상연료비를 100원으로 책정했고, 100kWh를 썼다면 우선 1만원을 연료요금으로 내게 된다. 이후 실제 연료비가 110원으로 산출된다면 1000원을 추가로 내년에 정산해야 한다. 전기사업자의 리스크가 최소화되는 셈이다.
일본의 경우 여러가지 요금제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1996년에 연료비 연동제가 도입됐다. 1990년도에 들어 엔고 현상이 지속되며 연료비가 낮아지자, 이 부분을 소비자들에게 환급해줘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를 반영해 시행이 결정됐다. 고유가 시절에 도입한 미국과 반대되는 이유로 제도를 확립한 셈이다.
요금조정은 매달 이뤄진다. 분기별 원유, 석탄, LNG(액화천연가스) 등의 통관 통계가격에 근거한 평균연료가격 등을 통해 연료비조정단가를 산정한다. 순수한 가격변동 효과를 반영해 수요관리를 하기 위한 취지다. 급작스러운 인상을 막기위해 요금 인상폭을 최대 50% 이내로 설정한 것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도 연료비 연동제를 채택한 경우가 있다. 전기요금이 아닌 가스요금의 경우 지난해 7월 '도시가스요금 연료비 연동제 시행방침'이 확정, 시행됐다. 도매가스요금은 원료비와 도매공급비용을 나뉘는데, 도매공급비용은 매년 5월1일에 1회 조정이 되고, 원료비는 변동요인이 있을 경우 2개월에 한번씩 조정이 된다. 2개월 원료비를 산정해 기준원료비(원료비 중 미수금 제외분)의 ±3%를 벗어나면 요금이 조정되는 체계다.
저유가 국면이 지속되면서 가스요금은 올들어 꾸준히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통계청이 5일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따르면 도시가스와 지역난방비는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9.1%, 22.4% 줄었다. 반면 한국전력은 2013년 11월 전기요금을 5.4% 올린 이후 혹서기 등에 한시적이고 부분적인 요금인하를 적용했을 뿐, 국제유가 등을 반영해 전체적인 요금조정을 하지 않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