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협을 넘어서…86그룹 오영식의 '합리적 진보'

[the300][국회의원 사용설명서] 오영식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

편집자주  |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과 관심사, 경력을 입체적으로 분석해 드립니다. 의원의 경쟁력과 정치적 미래, 뿐만 아니라 국민의 '심부름꾼'을 어떻게 '사용'해야 우리 사회가 한걸음 나아가고 우리의 삶이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지, 분야별 '파워분석'을 통해 보여드립니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 88중 학생·노동자 구속 있을 수 없는 일 - 전대협의장 소재파악 지시 (1988년 9월27일, 한겨레신문 3면)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25일 추석날 조승형 인권위원장을 동교동 자택으로 불러 경찰이 올림픽 기간 중 학생과 노동자들을 연행·구속하고 있는 데 대해 정부에 항의할 것을 지시했다. 김 총재는 아울러 최근 구속된 전대협 의장 오영식씨의 소재를 파악, 면회하라고 말했다.' 


87년 결성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는 우리나라 민주화를 이끌어낸 학생 운동권 그룹이었다. 주축은 현재 50대로 접어드는 '86그룹(80년대 학번, 60년대생)'이다. 86년생 기자에겐 별다른 느낌을 주지 못하고 있는 세력이지만, 80년대 말 우리 사회에서 이들의 존재감은 다른 어떤 단체들보다 크고 뚜렷했다. 오영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전대협 2기 의장을 지낸 운동권 스타 출신이다. 

88년 오 의장의 행방을 직접 챙겼던 DJ는 2000년 총선을 앞두고 그를 정치권으로 불러들였다. 새천년민주당의 '새 피 수혈' 작업이었다. 오 의원은 지난 2·8 전당대회 최고위원 출마에서 스스로를 "김대중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정치를 시작한 3선의 젊은 국회의원"으로 소개했다.

'젊은 피' 오 의원은 비례대표 후보로 나선 2000년 총선에서 낙선했지만, 2003년 비례의원직 승계를 통해 7개월간 의원 활동을 했다. 직전 2002년 16대 대선에선 노무현 후보의 선거대책위 청년위원장으로 활약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선 노 대통령 탄핵반대 열풍을 타고 배지를 달았다. 운동권 86그룹, 이른바 '탄돌이(탄핵돌이)' 의원들이 이때 대거 국회로 들어왔다.

이들은 노무현정부에서 '실세그룹'으로 불렸다. DJ에 의해 발탁됐지만, 전대협 출신들이 정치권에서 세를 형성한 것은 노 후보를 공식 지지하면서부터다. 탄돌이들은 2008년 18대 총선에선 '참여정부 심판론'으로 대거 낙선했다. 이렇게 86그룹은 2000년, 2004년, 2008년, 2012년 네 번의 총선에서 '떼'로 출마하고, 당선되고, 낙선하고, 다시 당선됐다. 그 가운데 오 의원이 있다. 

[프로필]
△전북 정읍(48) △양정고-고려대 법대-고려대 경영대학원 금융경제 석사 △고려대 총학생회 회장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제2기 의장 △제16대 노무현 대통령선거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청년위원장 △제16대 국회의원(비례) △제17대·19대 국회의원(강북갑) △열린우리당 원내대변인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 

[키워드]

◇학생운동, 감옥, 과일노점상
전대협 2기는 6월항쟁 이후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주장했다. 4·19 이후 최초로 남북 학생회담을 추진하는 등 통일운동을 사회적 이슈로 만들기도 했다. 오 의원은 88년 전대협 2기를 선두에서 이끌었다.

학생운동에 뛰어들기 전엔 평범했다. 오 의원은 "남들처럼 공부해서 출세하고 효도하려는 마음이 있었고, 법학과에 진학해 법조인이 되고자했다"고 과거 자신을 설명했다. 그러나 그 시절 평범한 대학생들이 그랬듯 "부당한 현실 앞에 침묵할 수 없어" 운동을 시작했고 "민주주의를 외치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싸웠다.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88년9월부터 12월25일까지, 또 89년7월부터 92년5월까지 두 차례 옥고를 치렀다. 출소 이후 삶은 막막했다. 감옥에서 나온 그해 10월부터 1년간은 "세상을 겪어보겠다고" 강북 수유역 일대에서 과일 노점을 했다. 수유역은 현재 오 의원의 지역구인 강북갑의 중심이다.

오 의원은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엔 페이스북을 통해 "93년 추운겨울, 크리스마스임에도 과일을 팔기 위해 옷을 여러 겹 껴입고 거리에 나섰던 기억이 납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땐 추웠어도 마음만은 세상에 대한 자신이 가득했습니다. 지금 당이 많이 어렵지만 그 때를 기억합니다…."

외환위기 이후엔 고려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공부를 했다. "90년대 이후 사회가 많이 변했고, 대학시절 제대로 못한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 의원은 현재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경제관련 상임위를 원했다"고 말했다. "저것들이 돌만 던지다 와서 뭘 하겠느냐는 얘길 들어. 그래서 고민을 했는데…."

◇합리적진보…막말지양
오 의원은 '합리적 진보'를 주장한다. 당내 운동권 출신중에선 온건파에 속하고, 실제로 합리적이란 평가를 듣는다. 막말도 지양한다. 그가 내세우는 합리적 진보는 △대안을 제시하고 △국민적 이해와 동의를 토대로 이를 실현하는 것이다.

오 의원은 "80년대 시대정신을 계승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만으로 현재를 살 수 없다"며 "새로운 비전과 담론"을 강조했다. 또 "정치를 통해 검증받으면 리더십이 확립되지만, 여태까지 (86그룹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지난해 한 언론 인터뷰에선 86그룹의 문제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특히 "자극적인 언사를 남발하는 모습이 당내에서도 발견된다"고 우려했다. 


"정부·여당을 비판할 때도 단어 하나를 선택하고 그것을 표현함에 있어 불필요하게 자극적인 언사를 남발해 국민의 정서적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일이 많다. 당내 논쟁에서도 이런 모습이 발견된다. 이와 같은 행태, 문화적 습속들을 극복해야 한다."

"내가 옳으니까 나를 따르라는 오만한 태도, 국민을 가르치려는 계몽주의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럼에도…
"구국의 강철대오"

얼마전 만난 오의원이 "야당은 더 이상 심판론이 아닌, '나라를 구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는 얘길 들었다"면서, 스쳐가듯 농반진반 던진 말이지만, 그의 입에는 여전히 전대협의 구호가 입에 착착 달라붙었다.

 

'합리적 진보'를 추구하지만 아직 '운동권 프레임'에 갇혀있다는 외부의 인식은 그로서는 넘어야 할 '벽'이다. 정체성은 뚜렷했지만, 기존 정치질서를 개혁하지 못하고 안주했다는 86에 대한 집단적 '낙인'에서 그는 자유롭지 못하다.


 "나 자신도 학생운동권 출신이지만 과거 학생운동 지도부의 정치적 유통기한은 이제 끝났다…과거 그대들이 무조건적으로 떠받들어지던 학생운동판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문학진 전 민주통합당 의원이 2013년 저서에서 86그룹에 던진 쓴소리다.


정치와 관계없는 지인은 오 의원을 배우 박영규의 극중 역할에 빗대기도 했다. 영화 <라이터를 켜라>에서 운동권 출신 국회의원으로 분한 박영규는, 극 중 돈을 요구하는 조직폭력배 보스에게 외마디 대사를 던진다. "죽어도 못 준다! 난 혹독한 고문을 견딘 민주투사야!!!"

[대표법안-중소기업적합업종 특별법]



오 의원은 현재 국회 산업위에서 '중소기업·중소상인 적합업종 보호에 관한 특별법안' 통과에 사활을 걸고 있다. 2013년 4월26일 대표 발의한 법안은 지난 6월18일까지 무려 13차례 법안소위에 상정됐으나 제자리걸음이다.

법안은 중소기업적합업종 운영 주체를 현재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중소기업청으로 전환해 강제력을 높이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적합업종 선정이 민간의 자율적합의에 따라 결정되고, 대기업 사업이양은 권고적 효력만을 가져 실효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그러나 현 제도 유지를 주장하고 있다.

오 의원이 대표발의해 국회를 통과한 제정법은 △재래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2004년) △중소기업 사업전환 촉진에 관한 특별법(2006) △어린이 놀이시설 안전관리법(2007) 등이다.

[그의 사람들]


오 의원은 당내 '정세균계'와 '86그룹'의 교집합으로 분류된다. 오 의원은 정 의원이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지냈던 2005년 원내대변인으로 활동했다. 두 의원은 고려대 법대 선후배이기도 하다. 오 의원이 지난 2·8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당선된 것은 정세균계 의원들의 지원에 힘입은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당 '원내대변인' 직함을 만든 사람이 오 의원이다. 2005년 이전엔 '대변인'이 전부였다. 당시 오 의원의 카운터파트는 나경원 의원이었다. 오 의원은 "나 의원에게는 비주얼로만 졌다"며 "열심히 다니면서 배운 게 많았던 나의 전성기"라고 말했다. 그는 원내대변인 경험을 살려 2012년 당 전략홍보본부장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당 언론홍보대책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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