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친노 비선실세?" 전해철, 그를 위한 변명

[대한민국 국회의원 사용설명서][the300]전해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편집자주  |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과 관심사, 경력을 입체적으로 분석해 드립니다 . 의원의 경쟁력과 정치적 미래, 뿐만 아니라 국민의 '심부름꾼'을 어떻게 '사용'해야 우리 사회가 한걸음 나아가고 우리의 삶이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지, 분야별 '파워분석'을 통해 보여드립니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새정치민주연합의 '친노 vs 비노' 갈등설이 제기될 때마다 '친노 핵심'으로 오르내리는 사람이 전해철 의원이다. 양정철 이호철 전비서관과 함께 '3철'로 통한다. '비선실세' '참여정부의 황태자'라는 별명도 따라 붙는다.

 

청와대에서 4년 가까이 일하며 핵심보직을 맡아 '친노의 핵심'이 된 그와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3년 군법무관 복무를 마치고 들어간 법무법인 해마루에서 처음 만났다. 막내 변호사가 보기에도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남다르게 변화를 받아들였고 혁신적이었다. 


고객관리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노 전 대통령은 컴퓨터 고객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일상생활에서도 개혁적이었다. 사무실에서는 아무리 말해도 진전이 없자 아예 밖에서 전문가 팀을 꾸려 프로그램을 개발해 사무실로 가져왔다고 한다. 이는 훗날 청와대 업무관리시스템인 'e지원'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2002년 4월. 그는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같은해 6월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면서 후보 재신임, 사퇴론 등 '노무현 흔들기'가 거세졌다. 그때 그를 지원하는 여러 모임들이 생겼고, 법조계 지지선언을 총괄했던 사람이 당시 전해철 변호사였다. 

그게 정치의 시작이었다. 전 변호사는 법률지원단을 만들고 이후 대선 캠프 법률지원단의 간사를 하면서 대선에 깊숙이 관여하게 된다. 이후 참여정부 출범 2년차인 2004년, 민정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2006년에는 만 44세의 나이로 '최연소 민정수석'이 됐다.

참여정부 임기종료를 2개월쯤 앞둔 2007년 12월 말, 전해철 민정수석과 박남춘 인사수석, 윤승용 홍보수석 등 수석 3인방은 다음해 총선(18대) 출마를 위해 일괄 사표를 제출한다. 결과는 모두 낙방. 이후 전 수석과 박 수석은 재수 끝 19대 국회에 입성하는 데 성공한다.
그는 스스로 '친노'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친노=강경파' 심지어 '친노=종북'으로 묶는 '프레임'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목청을 높인다.

"사람들이 친노패권주의라고 하면 제가 항상 그게 뭐냐고 반문을 한다. 제가 어찌보면 '친노패권'의 핵심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저는 아무것도 없다."
'친노의 좌장'이라고 불리는 문재인 대표와의 친분을 이용해서 당직을 차지하거나 이득을 보는 일이 전혀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그는 '왜곡된 친노 프레임'을 설명했다. 프레임에는 실질적인 것을 표상하는 프레임과 기획된 프레임이 있는데 친노 프레임은 철저히 후자라는 것.
현안이 있을 땐 당연히 내부에 원칙론자와 타협론자가 있기 마련인데, 모든 걸 친노와 비노의 대결구도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그는 "모 신문에서 어느 날 신경민 의원을 '친노 강경'이라고 써 놓았더라, 그래서 내가 신 의원한테 '언제부터 친노셨느냐'고 물었다"며 웃었다.
"그게 참 무서운 프레임이다. 어떨 때는 친노를 친북으로 넣기로 하고…"

[그는..위원직 명패만 20개+α, 법사위 야당 수문장]

법사위 여야 간사인 새누리당 홍일표(오른쪽), 새정치민주연합 전해철 의원이 지난 3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영란법과 관련해 논의하고 있다. 2015.3.3/사진=뉴스1

'비선 실세'치고는 고생을 많이 했다. 전 의원은 '면이 서는' 당직보다는 일하는 위원직을 많이 맡아왔다. 2012년 4월 19대 국회에 첫 입성해서 지금까지 맡은 위원직만 20개가 넘는다. 첫해 민주통합당 BBK진상조사위원회 위원, 정봉주 구명위원회 위원, 국회 민간인 불법사찰 국정조사특위 위원 등을 거쳤다.

이후 국회 국가정보원 댓글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위 위원, 민주당 대통령 기록물 열람위원, 국정원법 개혁추진위원회 위원(이상 2013년), 새정치연합 야당탄압저지대책위원회 위원, 국회 서민주거복지특위 위원, 박상옥 대법관 인사청문특위 위원,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위원(2014~2015년) 등으로 활동했다.

검찰과 법원 등을 소관기관으로 하는 법사위에서는 늘 여야 입장 차가 확연히 갈리는 사안이 많다. 전 의원은 이때마다 야당의 수문장 역할을 하며 율사 출신이 포진해 있는 여당에 맞선다. 간사인 전 의원의 발언 기회는 관행상 항상 마지막이다. 그는 동료 야당 의원들이 제기한 문제점을 정리하면서 핵심을 한번 더 찌르는 마지막 공격수의 역할도 같이 해내고 있다.

[키워드① 세.월.호.]

그도 처음에는 이렇게 큰 정치적 사안이 될지 몰랐다. 모든 국민이 슬퍼했다. 안전사회를 만드는 일에 공감했다. 4·16 세월호 참사에 지원 방법을 마련하자는 당의 방침에 그는 아예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세월호특별법은 지난해 11월, 참사 발생 206일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과정은 우여곡절 그 자체였다. 전 의원이 대표발의한 제정안을 바탕으로 공식·비공식 회의만 54번을 거쳤다.
천신만고 끝에 특별법은 통과됐지만, 정부가 내놓은 시행령에 그는 다시 격분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국회법 개정안의 '시행령 수정권' 문제의 출발은 여기에서부터였다.

전 의원은 지난 1일 기자간담회에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직원을 '120명 이내에서 일괄 구성한다'고 한 특별법과 달리 시행령이 '직원 90명은 시행령 공포 후 임명하고 6개월 이후 직원 30명을 추가해서 한다'고 규정한 점 △특조위 공무원 파견과 관련해 '위원장이 업무 수행을 위해 파견근무를 요청할 수 있다'고 돼 있는 법 규정을 시행령에서는 위원회를 총괄하는 행정지원실장을 만들고, 조사1과장에는 검찰 수사서기관을 앉히도록 한 점 등을 지적했다.

[키워드② 민변]

전해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인터뷰/사진=머니투데이 이기범 기자

87년 만 25세 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차 시험을 준비하던 청년 전해철은 87년 민주항쟁을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에 대한 미안함일까. 그는 93년 군검찰 제대 후 경기도 안산에 법무법인 해마루를 설립, 외국인노동자와 산재피해 노동자들을 위한 상담과 변론에 힘썼다.

1996년부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대외협력위원장, 노동위원회 대외협력부장, 언론위원회 위원장 등을 하며 민변의 대표 변호사로 떠올랐다. 민변에서 전 의원이 맡은 사건의 70~80%는 노동법이나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이었다. 

대표적인 게 2003년 8월, 제5공화국 정권이 부부싸움에 따른 살인사건을 '여간첩 납북기도 사건'으로 조작한 수지 김 사건. 전 의원은 3년여의 법정 싸움 끝에 42억 원의 배상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배상 금액은 당시 유사소송과 비교했을 때 최고 수준이었다. 국가정보원은 결국 2003년 8월 고인의 명복을 빌며 사건조작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전 의원을 포함해 당시 소송대리인단 5명은 사건 수임료를 국가폭력과 관련된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해온 단체에 기부하기도 했다.

민변과 관련한 일화 하나. 지난해 12월24일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본회의를 앞두고 막바지 법안처리를 하던 법사위에선 '민변 쓰레기' 설전이 오갔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민변 소속 장경욱 변호사가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인사와 접촉했다는 보도에 대해) 용변을 보기 위해 만나서 인사하는 것도 신고를 해야 하는 하느냐"고 말한 데 대해 "장 변호사가 국가 안보활동을 희화화했다"고 공격했다. 김 의원은 "민변은 말은 그럴듯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라고 하는데 민변이 없어져야 우리나라가 정말 민주사회가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 의원은 "저도 민변 회원인데, 민변의 많은 선후배 분들이 단언컨데 김진태 의원보다 훨씬 더 훌륭한 일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며 "개인의 의견은 얼마든지 피력할 수 있지만 단체나 다른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이야기는 하지 말기 바란다"고 말했다.

"평소 발언 수위보다 낮춰서 했다"는 김 의원과 "그래도 과도하다"는 전 의원이 충돌하면서 사태가 격화, 김 의원은 "야당 간사한테 교육 받고 법사위에 와야 겠다"라며 서류를 책상에 던지기도 했다.  

[이런 면이?…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출생은 호남, 생활은 경상도에서 했다. 사범학교 출신인 아버지는 평양에서 생활하다 6·25전쟁이 터지자 목포에서 제2의 삶을 살았다. 4남1녀 중 막내인 전 의원은 중학교까지 목표에서 다니다 마산중앙고등학교에 진학한다. 중학교 말, 가세가 급격히 기울면서 마산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큰 형님네서 하숙을 했다. 이후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하면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전 의원은 "어릴 적부터 지역감정이라는 것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한 학년에 600여명이었던 고등학교에 호남 출신 학생은 전 의원을 포함해 단 2명이었다. 원래 혼자인줄만 알았는데 2학년에 올라가보니 한명이 더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전라도말'을 쓴다고 놀림을 받았던 그는 "그때부터 지역감정이 정말 근거가 없고, 폐해가 심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친구도 전라도 반, 경상도 반이다. 그는 인사추천을 검증하는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이 경험이 굉장히 소중하게 작용했다고 회고했다. "참여정부에서는 지역적 균형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다양한 성장 경험이 균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연관검색어 = '친노']

'문재인의 사람'. 문재인 대표의 의사결정 스타일이 도마에 오르면서 전 의원의 이름도 함께 오르내렸다. 그러나 그는 비공개 회동 등을 통해서 문 대표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전 의원은 문 대표에 대해 "공식적이고 제도적인 틀을, 어찌보면 답답할 정도로 정말 준수한다"며 "그 원칙과 원리가 굉장히 강하다. 청와대에 있을 때부터 그랬다. 예외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전당대회가 끝나고 당직이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자문을 할 수 있었지만 공식라인이 결정된 뒤에는 그럴 수 없다는 것. 물론 친분이 있으니 언제든지 전화하고 물어볼 수는 있겠지만 인사가 결정된 뒤에는 그렇게 하는 것도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 한장의 사진]

2006년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당시 한명숙 총리와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 /사진=전해철 의원실
강원도 양구 2사단 법무관 시절. /사진=전해철 의원실 블로그

[그의 사람들 → 박남춘, 우윤근, 박성호]

박남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는 동병상련을 겪었다. 2007년 말 청와대 수석을 그만두고 함께 18대 총선에 도전했다 모두 낙마의 쓴맛을 봤다. 이후 19대 국회에 함께 입성했다. 

참여정부에서 각각 민정수석과 인사수석으로 일했던 전 의원과 박 의원은 당시엔 오히려 '갈등관계'였다고. 박 의원이 인사를 추천하면 민정수석은 이를 검증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서로 격의 없이 의견을 나누면서 자주 만나는 사이다.

3선인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는 10여년 전 변호사 시절부터 잘 아는 사이. 법사위 활동을 함께 하면서 실제 주요한 현안 등에 대해 많이 논의를 하고, 전 의원이 자주 조언을 구한다고.

박성호 새누리당 의원과는 대학 때부터 알던 사이다. 알고 지낸 세월만 30년 가까이다. 박 의원은 고려대 선배면서 같은 지역(마산)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 국회에 와서도 자주 보고 연락한다고 한다.

[대표법안 =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 개정안]

19대 국회에 입성 후 발의한 '1호 법안'이다. 그는 18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안산시 지역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지역 현안을 적극 발굴하고 해결책을 모색했다. 이 법안도 안산의 노후한 산업단지를 살리기 위해 발의한 '지역민생 밀착형 법안'이다.

개정법은 착공 후 30년 이상 된 국가산업단지에서 시행되는 구조고도화사업의 경우, 공공시설 외 산업기반시설에도 비용 일부를 국가가 보조할 수 있도록 근거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아무래도 재정이 부족한 지자체 혼자만의 힘으로 수십억원이 들어가는 구조고도화사업을 제대로 진행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2013년 4월 개정안이 통과한 이후 전 의원은 지역구인 경기도 시화·반월공단의 노후화된 하수관 정비사업에 필요한 비용 195억원을 포함해 총 235억원을 예산으로 확보했다. 

[요 주의!]

율사 출신으로 법사위의 야당 수문장인 전 의원. 그는 국회 본회의 전 마지막 관문인 법사위의 후반기 야당 간사다. 법안 통과의 최후 전선에서 야당의 대응전략을 짜고 있다.

뛰어난 언변과 논리력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끝까지 확인하고 밀어붙여 '오해'를 받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표가 지난 2·8 전당대회에서 당선되면서부터는 스스로 거리두기를 하는 모습도 보인다. '친노 프레임'이 워낙 강하다보니 사전에 오해를 피하기 위해 현안 인터뷰에도 거의 응하지 않는 편. 이 때문에 정치적 소신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측면도 있다.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프로필]

△전라남도 목포(53) △마산 중앙고-고려대 법학과 △고려대 언론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사법고시 제29회 합격(1987년, 사법연수원 19기) △법무법인 해마루 종합법률사무소(안산) 설립 △대한변협 인권위원(1996)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외협력위원장·언론위원장 △노무현 대통령 후보 선대위 법률지원단 간사(2002)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위원(2003) △대통령비서실 민정비서관(2004) △대통령 비서실 민정수석(2006) △대통령 정무특보(2007) △민주당 안산시 상록구갑 지역위원장(2008) △19대 후반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 △세월호 특별법 협상 TF 야당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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