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 마니아 최동익의 '무한투쟁’

[the300] [국회의원 사용설명서] 최동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보건복지부가 대한의사협회의 하수인이에요?"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6층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장, 작은 체구의 한 국회의원이 내뱉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좌중을 압도했다. 장애인 비례대표로 2012년 국회에 입성한 최동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다. 최 의원은 이날 대체조제 활성화,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마취 전문 간호사의 마취 허용 등 의료계 현안에 미온적인 정부를 향해 공세의 날의 세웠다.

국회 복지위에는 야당 소속으로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복지 관련 부처 공무원들을 바짝 긴장하게 하는 이른바 '양익(兩益)' 의원이 있다. 의사 출신으로 참여정부 청와대 사회정책수석비서관을 역임한 김용익 의원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회장 출신의 최동익 의원이다. 국정감사나 현안질의 등에서 항상 정곡을 찌르는 질문으로 정부를 몰아세우는 두 의원의 질의 차례가 지나가면 공무원들 사이에선 안도의 한숨이 나올 정도다.

특히 전문지식과 장애인으로서의 실제 경험 등으로 무장한 최 의원 특유의 높은 목소리 톤은 어느새 19대 국회 복지위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최 의원은 그동안 장애인 몫 비례대표 의원들이 한번도 이루지 못한 '재선'이라는 도전을 준비 중이다.

최 의원은 "장애인계를 넘어 우리사회에 상식이 통용되고 원칙이 바로서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며 "힘들고 외로운 싸움이 되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동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사진=뉴스1.

[신촌 '촌놈', '정치인'을 꿈꾸다]

1962년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2남1녀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최 의원은 자신을 '서울 촌놈'이라고 부른다. 그의 유년기는 신체에 찾아온 불청객으로 인한 시련의 연속이었다. 주사를 놓는 과정의 의료 과실로 두 살이 되기 전 다리를 저는 장애(지체장애 3급)를 갖게 됐고 10살 무렵 녹내장과 백내장이 한 번에 생겨 시력을 잃었다(시각장애 2급). 4살에 성경책을 읽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누나의 시험문제를 풀 정도로 영특했던 신촌의 신동은 그렇게 복합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됐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맹아학교를 거쳐 1981년 숭실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한다. 대부분의 맹인들이 대학 진학보다는 안마사의 길을 선택하던 시대였다. 이후 숭실대 대학원 사회사업학과와 미국 미시간대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메코믹 신학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등 사회복지 단체 등에서 일하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새정치연합의 비례대표 공천을 받고 정계에 입문하게 됐다.

맹아학교 시절부터는 그는 정치인을 꿈꿨다. 최 의원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던 시기, 하루를 살기도 벅차 내일을 꿈꾸는 것은 사치였다"며 "부자가 되고 명예를 얻고 싶은 것이 아니라 단지 배고픈 아이들에게 밥을 주고 싶었고, 추위에 벌벌 떠는 아이들에게 옷을 입혀주고 싶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지금 최 의원은 서울 동작을에서 내년 총선에 출마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 지역위원장 경선에 출마했지만 지역 터줏대감에게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올해 그는 새정치연합 전국장애인위원장이 되면서 재선 도전을 위한 또 다른 발판을 마련했다.

2월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최동익 간사(오른쪽)과 김재경 위원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스1.


[與에 인맥 많은데, 野의원 된 이유는?]

최 의원이 새정치연합 출신 의원이 된 것을 놓고 주변의 많은 이들이 의아해 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 캠프에서 일한 적은 있지만, 그가 장애인단체에서 시민사회운동을 하며 도움을 받은 국회 인사들 대부분이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이었다. 개인적인 친분도 새누리당 인사들과 더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의원이 야당 소속이 된 것은 복지에 대한 철학이 여당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서다.

최 의원은 "이전까지만 해도 새누리당은 복지와 담을 쌓은 정당이었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으로 복지를 주장하고 나왔지만 조금이라도 복지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라면 그 말이 얼마나 허황된 모순인 지 금방 알 수 있다"고 했다.

장애인에게 최고의 복지는 한정된 재원을 생활비로 조금씩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라는 게 그의 소신이다. 이런 점에서 복지와 성장을 함께 추구할 수 있다는 철학을 가진 새정치연합이 자신과 맞다고 판단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동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해 10월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보건복지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점자로 된 자료를 살피고 있다.사진=뉴스1.

[대표법안→송파 세모녀법]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최 의원이 발의한 이른바 '송파 세모녀법' 가운데 하나인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통과됐다. 지난해 2월 발생한 송파 세모녀 사건을 계기로 사회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의됐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사회복지수급권자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지원하도록 하는 것이 법안의 골자다. 어려웠던 가정환경과 장애로 인한 고된 생활환경 경험이 반영된 법안이라는 것이 최 의원의 설명이다.

[키워드-신앙과 무협지]

최 의원이 가난과 복합 장애를 이겨내며 국회의원의 자리에 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신앙의 힘과 무관치 않다. 어린 시절 불편한 다리 탓에 형의 등에 업혀 당시로선 귀한 간식이었던 빵을 먹으려고 교회에 갔던 최 의원은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자신의 장애를 그나마 배려해 주던 맹아학교와 달리 정글같았던 대학 신입생 시절, 혼란스러운 마음에 안식을 준 곳이 교회였고 독재국가인 당시의 대한민국에서 약자들이 직면한 현실을 알려준 곳도 교회였다.

평생의 반려자인 아내를 만난 곳도 교회 선교단이 개최한 장애인 관련 행사였다. 당시 시각장애인용 점자사전을 편집하는 봉사활동을 하던 지금의 부인을 만나 6주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최 의원은 무협지 마니아이기도 하다. 맹인들이 들을 수 있는 '보이스 북'을 통해 15년 동안 그가 읽은 무협지만 어림잡아 3000권이 넘는다. 1년에 평균 200여권을 읽은 셈이다. 특히 중국 무협 작가 김용의 작품을 좋아한다. 김용 작가의 '녹정기'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정갈하면서도 수려한 표현력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정도라고 그는 평가한다.

최 의원의 무협지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협의 세계는 평등한 세상이어서다. 장애인도, 여성도, 노인도 무림의 고수가 될 수 있다. 모두가 노력에 의해 초절정 고수로 성장할 수 있다.

최 의원은 "차별이 없으며 정의가 승리하는 무협의 역사를 동경한다"며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고 마침내 극복하는 지고지순한 인간승리를 배울 수 있다. 그 세계가 바로 내가 꿈꾸는 세상"이라고 했다.

[이 한 장의 사진-'볼라드' 해체 투쟁]
최동익 의원이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던 2010년 볼라드 해체 투장에 나서 볼라드를 해머로 부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최동익 의원실 제공.

2010년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던 시절, 최 의원은 볼라드 해체 투쟁에 나섰다. 볼라드는 보행자용 도로나 잔디에 자동차의 진입을 막기 위해 설치되는 장애물이다.

볼라드는 일반인들에게는 안전을 지켜주는 구조물일지 몰라도 시각장애인들에겐 부상의 원흉이다. 그래서 최 의원은 당시 망치나 해머로 볼라드를 부수는 상징적인 행사를 진행했었다.

최 의원은 "볼라드는 현행법에 어긋난 불법설치물"이라며 "아직도 정부와 각 지자체는 법을 무시하고 국가 예산을 들여 불법 설치물을 계속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요주의]

"이 땅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삶에 대한 무한투쟁이었다."

최 의원의 말처럼 장애인으로서 국회의원의 자리에까지 오른 그의 인생은 '투쟁'의 연속이었다. 장애인단체 활동 당시 관성에 익숙해져버린 장애인단체를 개혁하고 구악을 쳐내는 일 또한 그의 투쟁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사석에선 부드러운 말투의 '호감형'이지만 공적인 자리에선 자신의 신념에 어긋나는 일에 대해 상대의 눈물을 쏙 뺄 만큼 거세게 몰아부치는 '결기'가 있다. 이는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이 때문에 최 의원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등을 돌린 사람도 적지 않다.

2012년 총선 당시에도 불출마를 종용하거나 공천을 가로채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당시 이들의 등쌀에 못 이겨 조건부 불출마 선언을 했다가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이를 번복한 사건은 아직까지도 그를 따라 다니는 꼬리표다.

[프로필]

△서울(1962년) △서울맹학교-숭실대 사회복지 학사-숭실대 사회사업 석사-미시간대 사회복지 석사 △한국맹인복지연합회 과장, 사무국장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사무국장 △노무현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본부 수석부위원장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자문위원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자문위원 △보건복지부 장애인 편의시설촉진위원회 위원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관장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공동대표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사 △국가인권위원회 정책자문위원 △제19대 국회의원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 법안
  • 팩트체크
  • 데스크&기자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