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마다 비행기 티켓 끊는 회장님들[우보세]

[the300]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김민종 KC컨텐츠 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산업통상자원부에 대한 종합감사에서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2023.10.26/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어떤 분들은 '정확한 이유를 갖고 외국 나가라'고 하더라..."

가수 겸 배우인 김민종 KC 콘텐츠 공동대표는 지난달 2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렇게 말했다. 장내에 폭소가 터졌다. 의원들도 웃었다. 김 대표의 어색한 표정과 떨리는 목소리 때문은 아니었다. 국감 증인이 어떠한 무게를 견뎌야 하는지를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국감 증인은 제대로 된 답변 기회를 얻기는커녕 조용히 의원들의 호통과 질책을 견뎌야 한다는 것을. 사실 국감장에 있던 의원들만큼은 웃어선 안 됐다. 되려 분노했어야 옳다. 그동안 국감이 제대로 된 역할을 했다면 말이다.

국감 때만 되면 의원회관엔 기업 대관업무 담당자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자사 오너(최대주주)나 CEO(최고경영인)가 국감 증인으로 소환될지 여부다. 증인채택을 두고 여야 의원 간 신경전도 펼쳐진다. 의원들이 기업인을 부르는 건 소위 그림이 되기 때문이다. 국감 현장을 중계하는 카메라 앞에서 대기업 총수를 호되게 몰아붙이면, 그것만으로도 기사가 되고 화제가 되는 게 현실이다.

증인들은 답변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작금의 국감은 한정된 시간에 많은 사안을 다뤄야 하다 보니 의원별로 답변 시간을 포함해 3~7분 정도의 시간만 허락된다. 길게 질의하려면 본인의 다음 질의 시간을 줄여야 한다. 그러니 기업인들은 국회에 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 '가봐야 망신만 당한다'는 생각 때문인데, 틀린 얘긴 아니다. 매년 국감 시즌만 되면 기업인들이 해외 출장 일정을 잡는 이유다.

의원실에서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기업인을 증인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실제 증인 출석 직전 철회되기 일쑤다. 우리 국회는 증인을 채택할 때는 상임위원회의 의결을 해야 하지만 철회는 증인 신청자가 해당 상임위원장에게 의사를 표하기만 하면 된다. 그사이 어떤 약속이 오갔는지는 해당 기업과 의원실만 알 것이다.

의회정치 선배인 미국은 국감을 따로 하지 않는다. 대신 상시 청문회를 통해 기업인들과 토론 등 소통의 자리를 자주 갖는다. 지난 9월 미국 워싱턴 D.C.에서 만난 한 의원 보좌관은 "보통 상임위가 열리면 의원들은 최신 산업 동향에 대해 기업인들에게 한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주고 답변을 들으며 궁금한 것을 물어본다"며 "기업인들도 의회에 자신들의 경영활동을 설명할 기회로 여기고 청문회를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동안 기업의 총수나 CEO들이 무소불위의 권한으로 경영을 해 온 것도 사실이다. 당장 총수나 CEO가 한마디 하면 바뀔 일도 실무자와의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면 하세월이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총수나 CEO의 일방적인 지시로 바뀔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대부분의 기업은 이미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국회도 달라져야 한다. 기업, 시장과 실질적인 소통이 필요한 시대다. 구시대적인 국감 행태도 바뀌어야 한다. 내년 새롭게 뽑힐 22대 국회에선 달라진 모습을 기대한다. 국감은 국민을 위한 것이지, 의원들을 위한 쇼 무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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