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 일하자 국회

[the300]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2002년 9월19일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김영일 재판관)는 약사나 한약사 외에는 약국을 개설할 수 없도록 규정한 약사법 제26조1항(현재 제20조1항)에 대해 '헌법불일치' 결정을 내렸다. 약사 또는 한약사들로 구성된 법인 명의로 약국을 운영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였다. 약사를 여러 명 두는 대형 약국이나 체인점 방식의 약국도 곧 탄생할 듯 보였다.

하지만 21년이 지난 지금도 약사법 조항은 그대로 살아있다. '해 뜨기 전이나 해 진 후' 옥외집회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도 13년째 위헌 상태에 있다. 형법상 낙태죄 조항은 3년 넘게 입법 공백 상태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이달 4일 기준으로 헌재의 위헌·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아직 개정되지 않은 법률은 총 42건에 달한다. 그 중 위헌 결정이 선고된 법률은 22건, 헌법불합치 결정이 선고된 법률은 20건이다.

#지난해 4월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인 일명 '검수완박법(일명 검찰수사완전박탈법, 검찰청·형사소송법)'들에 대해 국민투표를 부치는 방안을 추진했다. 같은 해 열린 6·1 지방선거와 동시에 국민투표를 해볼수 있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현재로서는 국민투표가 가능하지 않다"는 입장을 내놨다.

2016년 헌재가 재외국민 투표권 제한을 이유로 투표인명부 규정을 담고 있는 국민투표법 14조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지만 국회가 이에 대한 대체 입법이란 의무를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석열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대체 입법은 이뤄지지 않았다. '국민의 의견을 물어 국정을 수행한다'는 민주주의 기본 원칙마저 무너진 상황이다. 명백한 입법부의 직무유기다. 하지만 지금까지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통상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 그 시점부터 바로 해당 법률은 효력을 상실한다. 형벌과 관련된 법률의 경우 소급되기도 한다. '헌법불합치'는 해당 법률의 위헌성이 인정되더라도 위헌결정을 하는 경우 법적 공백 또는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등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 예외적으로 해당 법률의 위헌성만을 확인하는 결정이다. 이 경우 언제까지 새로 입법하라는 것을 결정문에 명시한다. 그런데도 국회가 입법을 이행하지 않아 해당 법률 조항의 효력이 상실되고 이후에 비슷한 내용으로 또 헌법소원이 올라오거나 위헌법률심판이 제청돼 헌재가 다시 판단을 내리는 경우도 있다.

집시법의 야간옥외집회 관련 규정이 대표적이다. 대체 법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비슷한 청구가 올라오자 헌재는 2014년 3월 "해당 문구를 해가 진 이후부터 자정(0시)까지라고 해석하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여야가 합의해 법을 고치면 바로 해결될 문제인데, 13년째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이제 21대 국회 임기가 9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상대방을 비난할 시간에 대체 입법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내년 4월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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