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미워도...화평을 잃지는 마십시오"

[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마드리드=뉴스1) 오대일 기자 = 한미일 3국 정상이 29일 오후(현지 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IFEMA) 국제회의장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석열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대통령실사진기자단) 2022.6.29/뉴스1

#1. "우리나라는 그들이 오면 어루만져주고 돈을 넉넉히 주며 두텁게 예의로 대했지만, 저들은 관습적으로 예사롭게 여기며 참과 거짓으로 속이기도 한다. (중략) 변덕을 부리는 데 온갖 방법을 다 쓰며 욕심이 한정이 없고, 조금이라도 뜻에 거슬리면 험한 말을 한다."

조선 초기 문신 신숙주가 저서 '해동제국기' 서문에 쓴 일본인들의 기질이다. 1443년 세종의 명령으로 일본을 다녀온 신숙주는 이후 일본에 대한 자료를 추가로 모아 1471년 성종 때에야 이 책을 펴냈다.

일본 본토와 대마도, 류큐(현 오키나와) 지역의 역사와 풍속, 정치 제도 등을 2권으로 정리한 이 책은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돼 있다. 일본인들 사이에선 평가가 갈리지만, 당시 조선에서 이 정도로 잘 정리된 일본 관련 자료를 찾기란 불가능했다.

이 책을 쓴 신숙주가 당대 조선 최고의 '일본통'으로 불렸음은 당연한 일이다. 신숙주가 세상을 떠나자 영의정을 지낸 홍윤성이 "이제 신숙주가 죽었으니 만일 일본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해도 그 나라에 대해 누가 알 것인가"라고 탄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영화 '관상'의 배경이 된 '계유정난' 이후 조카 단종을 내쫓은 세조(수양대군)가 동갑내기 신숙주를 중용하면서 그는 '변절자'로 낙인찍혔다. 그럼에도 그가 조선 초기 최고의 외교관 중 한 명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외국어에 능통해 중국어, 일본어, 만주어, 몽골어 등 약 7가지 언어를 유창하진 않아도 말이 통할 정도론 구사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국제통이라도 신숙주 역시 '중화사상'의 세례를 받은 성리학자였다. 중국 한족을 제외한 다른 민족은 그에게 모두 오랑캐였다. '선비' 신숙주의 일본에 대한 인식은 곱지 않았지만, '외교관' 신숙주의 입장은 달랐다. 그가 숨을 거둘 때 성종이 유언을 권하자 신숙주는 "일본과의 화평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란 당부를 남겼다.

그는 일본인들을 약속을 잘 어기고 이익을 탐하며 무력을 중시하는 민족이라고 강조했다. 한 마디로 군사적 침공의 위험이 크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의 충심어린 유언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일본을 얕잡아 본 조선은 신숙주 사후 약 100년 뒤 임진왜란이란 참극을 겪게 된다.

#2. 정부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이 어떻게 만족스러울 수 있겠나. 가해자인 일본 기업이 아닌 죄 없는 우리 기업들의 돈으로 보상을 한다니 말이다. 추후 일본측이 성의를 보인다고 해도 우리 입장에선 순서가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다.

욕 먹을 게 뻔하다는 걸 윤석열 대통령도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이 이번 결정을 밀어붙인 데엔 2가지 판단이 깔려있다. 첫째, 현실적으로 일본이 피해배상 책임을 인정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점. 두번째는 한미일 군사공조의 완전한 복원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인식이다.

상당 수준의 핵 경량화·다종화를 이룬 북한은 이미 핵을 실전 배치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최근엔 하루가 멀다하고 탄도미사일을 쏘아대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정부가 종료를 결정한 한일 지소미아(군사정보보호협정)는 미국의 반대로 간신히 '조건부 종료 유예' 상태로 유지돼왔다.

중국의 대만 침공도 더 이상 먼 얘기가 아니다. 미군은 중국 인민해방군 창건 100주년인 2027년까지 중국이 대만 상륙 작전에 나설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대비 중이다. 반도체 공급망 등에서 중국을 솎아 내려는 미국의 대중국 봉쇄 전략에 맞서 중국이 대만 점령을 시도할 것이란 우려가 과연 기우일까. 이 경우 미국은 대만에 대한 안보공약을 지키려 할 것이고, 미군 주둔지이자 미국의 동맹인 한국과 일본은 좋든 싫든 함께 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중·러 권위주의 동맹은 더욱 견고해졌다. 한일 갈등 탓에 불완전해진 한미일 군사동맹을 방치할 여유가 더 이상 우리에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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