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버포스는 1823년부터 노예무역금지법에서 한 걸음 더 나간 노예제 폐지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적극 활동했다. 그러나 1825년으로 들어서면서 건강이 점점 더 악화됐으며 결국 의원직을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는 그가 받은 막대한 유산도 노예무역금지법과 노예제폐지 운동을 위해 거의 소진된 뒤였다. 

윌버포스가 오랜 병고에 시달리는 동안 의회에서는 휘그당의 주도로 윌버포스의 노예제폐지법안을 통과시키는 새로운 기적을 이뤄냈다. 1833년 7월 26일이었다. 그날 저녁 병상에 누워 이 소식을 들은 윌버포스는 곧장 성경을 가슴에 안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세상 모든 이에게도 감사한다"라는 말을 남기고 바로 혼수상태에 빠져들었다. 3일 뒤인 1833년 7월 29일 그는 눈을 감았다. 평소 자신이 죽으면 가족묘지에 누이와 딸의 무덤 옆에 묻어달라고 말했지만 의회는 그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했다. 그는 1833년 8월 3일 친구 윌리엄 피트의 옆자리에 묻혔다.

윌버포스는 기독교의 교리와 복음주의 신앙에 따라 영국 사회가 도덕적인 세상으로 변해야 혁명의 사회혼돈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합리적인 보수주의자로 개혁에 더 큰 무게를 뒀다. 혁명주의자들은 노예해방보다 더 시급한 것은 노동자의 해방이라면서 노예에 관심을 쏟았던 그를 전형적인 보수주의자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굴뚝 청소부의 노동조건 개선과 면방직 노동자의 근로조건의 개혁에도 앞장섰고 교도소 죄수의 처우와 사형문제 개선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빈곤층 자제의 교육기회를 확대하고 교회 주일학교를 저소득층 아이들 교육의 장소로 활용하도록 건의했다. 부패선거구 폐지운동과 동물학대 반대운동에도 힘을 모았다.

윌버포스는 인간은 해방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화의 자기실현 주체이며 다 함께 연대하는 소중한 존재라고 주장했다. 그는 진실한 개혁가로 살았고 인간화의 올바른 길로 먼저 달려갔던 위대한 선각자였다.

2008년 그의 탄신 200주년을 기념해 마이클 엡티트 감독의 영화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가 제작됐다. 이 영화는 노예무역금지법을 의회에서 통과시키기까지 윌버포스의 열정과 투쟁을 그렸다. 노예무역금지법이 의회를 통과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엔딩을 장식하는 자막의 내용이 인상적이다. 

"윌리엄 윌버포스는 여생을 불의와의 싸움으로 보냈다. 우리 모두에게 위대한 개혁가의 참모습을 되돌아보게 해줬다. 그는 교육, 건강, 교도소의 개혁에 관한 국민들의 마음을 변화시켰다. ‘더 좋은 세상 만들기’라는 위대한 꿈을 달성하기 위해서다."

윌리엄 윌버포스의 이야기를 마치면서 나는 다시 한번 우연과 필연의 문제를 생각해 본다. 그것이 사회변혁과는 어떤 관계를 갖는가? 개혁가와 혁명가는 어떻게 다른가?

개혁가는 현실의 기존체제를 인정하면서도 그 한계점을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합리적인 방식으로 고쳐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보려는 사람들이다. 폭력을 거부하고 함성으로만 장식된 선동적인 주장도 배격한다. 개혁가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이성이며 합리적인 접근이다. 

개혁가는 낙관적일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의 모든 잘못은 다 고칠 수 있으며 바로 잡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금씩 그리고 차근차근 모두의 힘을 모으고 뜻을 같이해 개선해 가려고 한다. 

개혁가는 개혁이라는 긴 여정의 길로 접어들면서 개혁의 열매를 꼭 자신이 거둬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먼 훗날 누구나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만 있다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개혁의 열매를 자신이 꼭 차지하려는 사람이 개혁에 앞장선다면 그 개혁은 곧 정치 투쟁으로 변질되고 갈등과 혼란을 일으키며 중도에서 좌절되고 만다.

역사적으로 보면 한 시대의 대변혁은 혁명을 통해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 만일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전쟁으로라도 새로운 시대가 조성됐을 것이다. 전쟁과 혁명은 동전의 앞뒤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새로운 시대로의 진운(進運)에는 혁명과 같은 고통도, 전쟁과 같은 아픔도 동반하게 된다.

혁명과 전쟁은 비교적 짧은 기간에 거대한 변혁을 가져오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의 희생을 초래한다. 혁명과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정상적인 사회발전을 위한 개혁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상적으로 개혁이 이뤄졌다면, 즉 그 시대나 사회가 갖는 한계를 해결하기 위한 개혁이 성공했다면 전쟁과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개혁은 우연에서 필연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변동일 수 있다. 어느 계기에서 우연히 시작될 수 있지만 끝내는 필연으로 귀결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 개혁을 향한 노력이 필연적인 귀결로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 한계점을 지나 혁명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상황을 볼 수 있다.

위대한 개혁가의 흔적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윌리엄 윌버포스는 이러한 과정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우리는 우연에서 필연으로 넘어가는 개혁의 전개과정에서 우리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게 된다. 비록 먼 나라의 오래전 이야기이지만 그처럼 개혁가에 목말라하는 것은 바로 우연에서 시작해서 필연으로 귀착되는 그 사실 때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