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의사 조민'이 일깨워주는 이것

[the300]

편집자주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조민만 그런 게 아니라더라" 의대 교수인 친구가 지도학생들한테 들은 얘기를 털어놨다. 또래 의전원(의학전문대학원) 출신들 사이에선 조국 전 장관의 딸 '의사 조민'에게 분노보다는 짐짓 모른 체하는 기류도 있다는 전언이다. 같은 잣대를 들이대면 문제가 될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의미다.

물론 다 그런건 아닐 것이다. 비슷한 사례가 있다고 불법행위가 정당화될 수도 없고 동시에 조민이라는 이유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는 것도 옳지 않다.

분명한 건 학력자본을 갖추는데 '세습'이 작동하는 현실이다. 의사 조민은 이를 새삼 적나라하게 일깨워줬다. 기득권 세력으로 맹비난을 받고 있는 586 세대가 공고한 그들의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자녀들에게 차곡차곡 물려준 사회적 자본이 밀레니얼 세대 내에서 장벽을 세웠다.

#97세대가 끝물인듯하다. 부모에게 세습 받지 않아도 학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지방마다 명문고(비싼 비용이 들지 않는 일반고)가 있었고 가난하거나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낮아도 소위 좋은 학교 가서 안정적 직장을 얻는 경우가 흔했다.

시험으로 중학교부터 줄 세웠던 옛날식 학벌주의 역시 폐해가 있고 어느 시대든 잘난 부모 만난 특권은 상당했지만 그래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었다. 그러나 저성장 시대가 고착화 된 지금은 다르다. 오늘날 2030 세대 이하가 대학 진학과 취업, 결혼, 출산, 주택 구매 등 '주류(혹은 중산층)로 진입'하는 일련의 고리에서 경험하는 문턱은 과거와 차원이 다르다.

파이의 대부분을 움켜쥔 586 세대와 그들만의 세습에서 배제된 청년들은 출발선이 다를 수밖에 없다. 세대가 아닌 세습이 문제의 본질이고 불평등의 출발점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위기는 예상치 못한 순간과 방법으로 현실화돼 순식간에 모든 것을 허문다. 2월16일은 384년 전 배를 끌고 산을 넘어온 청나라 군대에 단 하루 만에 천혜의 요새 강화도가 함락된 날이다. 조선은 결국 삼전도의 굴욕을 당했다. 나름 정부가 준비를 했음에도 예상을 뛰어넘는 홍타이지 군대의 속도전에 무너졌다.

지금 저출산은 병자호란의 기동전보다 더 무섭다.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부으며 대비한 지가 오래지만 사실상 무대책이다. 연간 출생아 40만명대가 고작 4년 만에 20만명대로 내려앉았다. 월 출산 2만명대도 위태롭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2030 세대가 애를 낳을 리 만무하다.

586이 노년층이 됐을 때쯤 어떤 사회적 혼란과 갈등이 불거질지 상상조차 어렵다. 추산도 힘든 복지비용과 연금 이로 인한 재정부담을 누가 짊어질 것인가. 역설적으로 부메랑은 세습으로 쌓아올린 그들만의 철옹성을 향할 수 있다.

#전 분야를 장악한 586 권력의 정점은 정치다. 재야운동의 상징이었던 백기완 선생까지 영면하면서 바야흐로 한 시대가 막을 내렸지만 이들의 진지는 탄탄하다. 30대 때 국회의원이 되고 40대 때 참여정부 청와대를 장악한 이래 권력을 틀어쥐는 방법은 더 진화하고 정교해졌다. 정치신인이 성장하지 못하고 결국 10년 전 그때 그 사람들로 서울시장 선거가 치러지는 것 또한 세대 독점과 무관치 않다.

586에게 사냥을 떠나기 전 둥지를 부수는 장산곶매의 비장함과 기개를 바라지도 않는다. 점잖은 '양보 프레임'도 정답이 아니다.

다만 세습 논란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세대 문제의 본질이 훨씬 더 구조화돼 있고 사회 전체 불평등 문제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점에 주목할 때 해법이 보일 것이다.

문제풀이는 이제부터 펼쳐질 대선정국에서 나와야 한다. 판을 뒤흔드는 사고가 간절하다. 현대차가 내연기관을 버리고 쿠팡이 55조원 가치를 평가받는 시대다. 산으로 배를 옮긴 오스만 군대가 1000년의 비잔틴 제국을 무너뜨렸고 대포를 분해해 디엔비엔푸 산 꼭대기에 올려놓은 호치민 군대가 프랑스를 몰아냈다. 대변혁의 시기 역사는 그렇게 새 시대를 열어갔다. 뻔한 얼굴들의 기득권 챙기는 낡은 논리에 미래를 맡기기에는 닥쳐온 위기가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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