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86 세대'의 시간

[the300]

# 이른바 ‘86 세대’가 정치권에 뛰어든 지 20년이 됐다. 첫 타자는 1996년 15대 총선 때 배지를 단 김민석이었지만 ‘젊은피 수혈론’ 바람이 분 2000년 16대 총선을 시작점으로 본다. 젊은 피 수혈은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았다.

그래도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세대로 대표되는 진보의 ‘86 세대’가 도드라졌다. 전대협 3인방으로 불린 이인영‧우상호‧임종석이 전면에 선다. 임종석은 국회에 바로 입성했고 나머지 2명도 4년 뒤 금배지를 단다.

이들은 세월이 흐른 뒤 대통령 비서실장, 집권여당 원내대표까지 맡는다. 177석의 거대여당을 이끌 원내사령탑 김태년(4선)도 ‘86 세대’다. 젊은피의 맏형이었던 송영길은 21대 총선에서 5선이 됐다.

16대 국회 때 13명(4.8%)이었던 ‘86 세대’는 20대 국회 때 132명(44.0%)로 늘었다. 21대 국회에서면 169명(56.3%)으로 압도적 과반이다.

#지난해 조국 사태를 겪으며 세대 교체론의 타깃이 됐던 ‘86 세대’는 자신의 존재를 재확인했다. 세대 대결 측면에서 오히려 완승을 거뒀다.

‘불평등‧불공정’ 논란 속 ‘86 세대’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만큼 ‘86 세대’는 견고했다. 이들 세대가 워낙 두텁다. 인구 통계학적으로는 물론 정치 사회의 경험 측면에서 그렇다.

1987년 ‘민주화 세대’의 간판을 얻었고 이후 정치적 승리를 쟁취했다. 경제 측면에서도 밀리지 않는다. ‘세습중산층’의 핵심이 바로 ‘86 세대’다.

반면 ‘86 세대’를 대체할 수 있는 세대는 퇴물이거나 미완이다. ‘86 세대’ 이전 세대는 태극기를 흔들어 봤지만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표를 보고서야 체감할 정도로 더디다. 주류 교체도 뒤늦게 깨달았다.

2030 세대는 불평‧불만‧비판의 수준을 넘지 못했다. 산업화 세대를 밀어냈던 ‘86 세대’에 비견될 힘과 실력은 없다. 공유된 세대 경험도 많지 않다. 앞선 세대를 대체할 만한 수권 능력이 없다는 얘기다. ‘86 세대’가 비켜준다고 해서 ‘세대 역전’ ‘세대 교체’가 이뤄질 상황이 아니라는 의미기도 하다.

#‘86 세대’는 주류이자 중추다. 21대 총선을 거치며 그 중추성이 더 공고해졌다. ‘86 세대’의 장기 집권 시대에 돌입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미래 세대가 주체적으로 세대 역전을 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 양자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냄)’이란 말이 있지만 물결이 약하면 밀어낼 수 없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늙고 낡아가는 한국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미래 세대의 근육을 키우는 것보다 ‘86 세대’의 진화가 더 급하고 중요하다. 중추가 된 ‘86 세대’가 준비를 외면하고 과거 경험에 매몰되면 미래는 없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문화, 새로운 세대 등을 이해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86 세대의 시간’은 이 소명(召命)을 무겁게 인식하고 데서 시작된다. 새로운 미래에 진입하는 입구에 서 있다는 것부터 각성해야 한다.

#‘86 세대’에 주어진 책임은 과거에 대한 게 아니다. 과거의 경험은 소중하고 귀중하다. 현재의 성공적 ‘K-방역’도 축적된 경험의 결과다. 하지만 새로운 시간에 대한 준비는 부족하다. 우리 사회는 물론 전세계적 한계다. 지금이 더 중요한 이유다.

방향은 잡았다. 선도국가, K 이니셔티브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창의적 발상을 주문해도 마땅한 게 없다. 관료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비겁하다. 원래 보수적인 게 관료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중추인 ‘86 세대’가 실망스럽다. 과거가 아닌 미래의 잣대를 들이대면 무능‧무력하다. 늙고 낡은 대한민국을 유지‧관리하는 게 ‘86 세대’에게 주어진 소명은 아니다. 과거의 경험에 갇히는 순간 늙은 나라가 된다.

‘86 세대’ 스스로 혁신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한다. 스스로 젊어져야 역동적 대한민국이 만들어진다. 아울러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새로운 세대와 의식적 ‘콜라보(협업)’를 통해 경험을 공유‧이전해야 한다. 진화와 콜라보, 그게 '86 세대'의 소명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2030 세대'가 아닌 ‘86 세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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