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연 정책포커스]중향평준화를 말하는 이유

[the300]

편집자주여의도연구원은 정책이슈를 알기 쉽게 풀어쓴 '여연 정책포커스'를 머니투데이 더(the)300을 통해 연재합니다. 복잡한 정책의 본질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난 20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상층 노동자들의 양보를 통한 중향평준화를 소득불평등과 실업난의 해법으로 제시했다. 언론과 여론의 반응은 갈리고 있다. 한국 사회의 문제 원인을 제대로 짚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왜 상향평준화가 아니고 중향평준화인가에 대한 비판여론도 만만치 않다.


 새누리당과 보수진영은 그간 성장과 경제활성화에 주력하여 왔다. 분배의 측면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다뤄온 것도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국정운영의 한 축을 담당하는 집권여당의 원내대표가 성장이 아닌 소득불평등과 분배를 들고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그간 우리나라 정치권의 분배에 대한 논의도 상향평준화에 집중되어 왔다. 모든 사람을 지금보다 더 잘 살게 해주겠다는 상향평준화만큼 듣기 좋은 주장이 어디 있겠는가? 이러한 현실에 비추어 보면 집권여당의 원내대표가 중향평준화를 주장하고 나왔다는 것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다.


왜 듣기 좋은 상향평준화가 아니고 중향평준화인가? “독이 있는 것은 모두 보기에 좋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 보기 좋은 것이 모두 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독버섯은 화려한 외양을 뽑낸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될 진실이다. 모두를 잘 살게 해주겠다는 상향평준화 주장은 듣기에는 달콤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매우 낮다. 특히 지금과 같은 저성장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IMF, OECD는 물론 한국경제개발원, 한국은행 등 국내외 경제전문기관과 학자들 대부분이 우리나라가 저성장 시대로 진입하였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저성장 시대는 우리가 나누어야 할 파이가 더 이상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나눌 파이의 크기는 제한되어 있는 데,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영세 자영업자들은 밤늦도록 일해도 한 달 백만 원 벌기도 쉽지 않다고 절규한다. 지금의 청년세대들이 부모들보다 못사는 첫 세대가 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들이 넘쳐 난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불에 육박하고, 경제규모 면에서 세계 10위권인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자살율과 자살증가율, 노인빈곤율 등에서 OECD 최고 수준이다. 이런 비극들의 원인은 무엇인가? 최근의 연구결과들에 따르면 우리와 경제수준이 비슷한 OECD 19개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가 미국과 함께 소득불평등이 가장 심한 국가로 분류된다. 여러 가지 다른 이유도 있지만 극심한 소득불평등의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이중적 노동시장이다.
우리는 지금 사장이라고 해서 다 같은 사장이 아니고, 노동자라고 다 같은 노동자가 아닌 시대에 살고 있다. 대기업 사장과 중소기업 사장, 영세 자영업자는 모두 자본가로 분류되지만 그 처지는 천차만별이다. 이를 자본의 양극화라고 한다.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재벌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 중소기업 정규직, 그리고 비정규직의 근로조건과 처우는 현격한 격차가 있고 이 차이가 갈수록 더 벌어지는 양극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작금의 청년실업난과 소득의 양극화 현상은 노동의 양극화와 직결되어 있다. 노동 양극화의 핵심은 이중적 노동시장이다. 상층시장에 속한 대기업과 공기업 정규직들은 정년까지 보장되는 고용안정성, 고임금, 그리고 두둑한 복지혜택을 누리고 있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법이다. 그 반대편에는 일상적인 실직의 위험, 저임금, 빈약한 복지혜택에 고통 받는 하층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오르지 못할 성벽처럼 구분된 우리의 이중적 노동시장은 진보진영이 추구하는 형평성 또는 평등의 원칙에 배치된다. 유사한 일을 하면서도 받는 대우는 천양지차인 이중적 노동시장은 평등의 가치와 부합할 수가 없는 것이다.
보수가 추구하는 효율성의 원칙과도 배치된다. 상층시장에 속한 노동자들, 특히 공공부문 정규직들은 그다지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도 해고나 임금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 반면 한번 하층시장에 속하면 웬만한 성과를 보인다 하더라도 대우가 달라지거나 상층 시장에 편입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도 일을 열심히 할 동기가 사라지게 된다.


정규직이냐 아니냐에 따라 기업들이 노동의 댓가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크게 달라진다. 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은데, 비용 격차는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가능한 한 정규직 채용을 회피하고, 비정규직 채용과 하청업무로 돌리게 된다. 이도 여의치 않으면 사업장을 해외로 이전한다. 아직 노동시장에 속하지 못한 청년과 미래세대가 이러한 이중적 노동시장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되게 된다. 극심한 청년실업난은 이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심화되는 소득 불평등과 극심한 실업난의 핵심원인이 이중적 노동시장에 있다면 이의 해법도 여기서부터 찾아져야 한다. 상층과 하층 노동시장간의 극심한 격차를 지금부터라도, 조금씩이라도 줄여 나가야 한다. 하층 노동자들의 처우를 향상시켜야 하는 데, 이에 소요되는 재원과 우리가 가진 가용한 자원의 한계를 감안하면 다른 대안은 없다. 상층 노동자들의 양보를 통해 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이것이 중향평준화다. 이외에 다른 해법은 없다. 듣기에 달콤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매우 낮은 상향평준화만을 되뇌이는 것은 무책임한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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