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의 정치 깊이보기]20대 총선의 사람과 쟁점, 4년 전에는…

[the300]

편집자주the300이 여론에 나타난 민심 흐름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우리 정치 현상들을 한단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이상일의 정치 깊이보기'를 연재합니다. 필자인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는 여론조사 분석 전문가로 TNS코리아 이사, 청와대 행정관 등을 지냈습니다.
[안철수] 12년 3월 ‘고민 중’ → 16년 3월 ‘광야에서 고난의 행군 중’

꼭 4년전 이 무렵, 당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고민 중’이었다.
총선을 한 달여 앞둔 12년 3월 중순, ‘안철수 현상’은 연초 핵폭풍 급에서 평년 태풍 수준으로 파고가 감소했고, 당시 안 원장은 청춘콘서트 메시지를 되살려 갈 ‘안철수 정치’의 재개 방식을 목하 고민 중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16년 3월, 안철수 대표는 몇 차례 시도 끝에 결국 창당한 국민의당 대표다. 야권분열로 인한 수도권 참패 우려와 야권통합 논의를 강하게 거부하며 독자노선을 표방했다. 정치권의 일반명사처럼 불리기 시작한 ‘철수 정치’를 이번엔 하지 않겠다는 강한 결의가 읽힌다. 총선이 끝난 날, 안철수의 ‘독자 생존’은 결실을 맺을 것인가, 공멸의 주범으로 낙인찍히며 정치권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인가.


[김종인] 12년 3월 ‘비대위원 사퇴’ → 16년 ‘차르 비대위 대표 강행군’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대표는 12년 3월 22일 새누리당 비대위원직을 사퇴했다. 당시 새누리당이 정상적 상황으로 돌아온 만큼 역할이 끝났다는 이유였다. 그 직전 김종인 비대위원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유신에 대해 구체적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당시 야당의 ‘박근혜 유신 책임론’ 공세를 연좌제 공세로 반박하며 박근혜 위원장을 옹호했다.

김종인 대표는 그 후 대선에서 다시 박근혜 대통령을 도왔다. 대선 이후 ‘경제민주화’ 방패만 제공한 채 팽 당했던 김 대표는 지금 더불어민주당의 비상대권을 거머쥐고 당 체질개선과 대안세력화를 위해 고속 질주 중이다. 총선이 끝나고, 김종인 대표는 어떤 선택을 할까. ‘구원투수’ 역할만으로는 뜻한 바를 끝까지 이루지 못한다는 걸 체감한 김종인 대표의 총선 후 선택이 궁금하다.


[김무성] 12년 3월 ‘공천학살 후 백의종군’ 선언 → 16년 ‘생존은 했지만 정치적 假死 상태’

12년 3월 두 번째 공천 배제로 기로에 섰던 김무성 의원은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우파 분열의 핵이 돼서는 안된다, 당과 동지를 떠나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고 말했다. 공천학살을 당했다며 제3의 보수 정치세력을 만들려던 비박계의 움직임은 무뎌졌고 새누리당은 MB 집권 4년차 총선에서 예상을 깨고 과반의석을 확보하며 승리했다.

16년 3월, 김무성 의원은 당대표 신분으로 총선을 치르고 있다. 상향식 공천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도저도 아닌 무원칙‧무감동‧무혁신 공천이 돼 버렸고 김무성 대표는 본인의 지역구와 ‘무대 측근’들의 생존을 담보한 소수 계파 수장 정도로 위상이 추락했다. 4년 전 ‘버려서 얻었던’ 정치적 승부수가 당대표가 된 이후에는 왜 불가했는지 궁금하다. 총선 이후 ‘무대’가 여당의 대권주자로서 위상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정치적 승부를 띄우지 않고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해찬] 12년 3월 ‘세종시 출마 고사’ → 16년 3월 ‘무소속으로라도 출마’

12년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는 이해찬 전총리에 세종시 출마를 거듭 요청했다. 이 전총리는 수차례 난색을 표했다. “선출직에는 나설 뜻이 없다”고 했다. 이해찬 전총리는 결국 세종시에 출마했고 당선됐다. 당시 세종시라는 지역은 ‘노무현 전대통령의 유산’인 세종시를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해야만 하는 ‘계륵’이었다. 한명숙 대표 차출설까지 등장했지만 지역기반이 없는 세종시 출마를 꺼렸고 결국 충남 청양이 고향인 이해찬 전 총리가 총대를 멨다.

그 세종시에 김종인發 ‘컷 오프’가 단행됐고 이번엔 이해찬 의원이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공언했다.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해찬의 생환은 더민주의 총선 이후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 것인가? 이해찬 의원이 무소속으로 생환한다면 ‘친노 좌장’으로 이후 당의 노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김종인 대표의 칼춤이 제대로 먹힌 것인지 급소를 놓친 것인지 이해찬 의원이 총선 이후 그 답을 낼 것이다.


[유승민] 12년 3월 대구서 가장 먼저 공천 확정 → 16년 3월 새누리당의 최종 공천 갈등

12년 3월 5일, 새누리당 공천 확정자 명단 중 대구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2명이었다. 동구을의 유승민, 달서병의 조원진 의원. 19대 총선 때에도 대구는 새누리당 친박의 ‘물갈이 요구’로 가장 늦게 공천이 확정된 지역이었고 그만큼 물갈이 폭도 컸다. 그 큰 폭의 물갈이가 이뤄진 대구에서 가장 먼저 공천을 받았던 유승민 의원이 지금은 ‘최종 컷오프’ 무대에 올라 있고 조원진 의원은 경선 지역으로 분류돼 1차 사선을 넘었다.

원조 친박에서 ‘비박’을 넘어 ‘반박’의 상징이 된 유승민 의원. 유승민의 총선 사활 문제는 시점과 방식에 따라 새누리당에 상당한 파장을 남기게 될 것이다. 컷오프로 결론이 난다면 중도보수 진영에 상당히 큰 악재가 될 수 있고, 경선탈락이라면 결국 박대통령의 벽을 넘지 못한 대구 민심의 벽을 확인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다. 그도 아니고 총선에서 생환한다면, 앞으로 TK 맹주, 새누리당의 대권후보 지도가 바뀔 가능성도 있다. 어느 길이 4월 14일 아침 유승민 의원의 앞에 펼쳐질지 자못 궁금하다.


[야권연대] 12년 3월 25일 민주통합-통합진보 공동선대위 구성 → 16년 ‘야권연대 결렬’

12년 총선에서는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간에 전국적 야권연대가 성사됐다. MB 정권 심판을 매개로 공조한 두 야당은 3월 25일 공동선대위를 구성하고 전국 각지에서 후보 단일화를 이뤄냈다. 보수진영은 ‘야합 연대’를 맹공하며 경기동부연합 등 통진당을 겨냥한 이념공세로 야권연대에 대항했다. 결과는? 새누리당이 과반을 획득했지만 내용 면에서 야권의 연대 전략은 나름 훌륭한 성과를 거뒀다.

16년, 야권연대 협상 테이블은 치워졌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은 각자 각 지역에 막바지 공천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가 선거전이 본격화되면 수도권을 중심으로 ‘연대와 단일화’ 압력이 거세질 것이고 가능한 쪽으로 몰아주는 ‘단일화’ 과정이 전개될 것이라는 예상을 거두지 않고 있다. 얼마나 많은 지역에서 다자구도가 현실화 될 것인가, 몇 개의 지역에서 단일화를 통해 야권 승리지역을 늘릴 것인가. 구도의 문제는 여전히 예민하다. 3%, 5% 미만의 격차로 승부가 갈리는 지역에서 야권후보가 2~3인씩 나온다면?

김한길 의원이 야권통합의 충돌에 끼어버렸다. 김종인 대표의 통합 제안에 큰 소리로 화답하며 통합을 거부하는 안철수 대표와 각을 세웠지만 국민의당은 결국 통합과 연대를 거부했고, 더민주는 당차원 연대의 문을 닫고 공백 지역까지 공천을 단행했다. ‘분열 필패-통합 승리’를 내 건 김한길 의원은 어떤 묘수로 수도권 연대의 틀을 만들어 낼 것인가? 본인 지역구부터 쉽지 않아 보인다. ‘통합 지뢰’의 뇌관을 해체하지 못한다면 김한길 의원의 정치적 생존 공간 자체가 위협받을 가능성이 크다.


[정권심판론] 12년 3월 MB정권 심판 ‘동의’ 53% vs. 16년 3월 朴정권 심판 ‘동의’ 47%

12년 3월 민주통합당이 주장하던 MB 정부 심판론에 동의한다는 여론이 53.3%였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비율은 40.7%로 조사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에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공동 책임자라는 주장에는 공감한다가 45.2%, 공감하지 않는다가 47.6%였다. 정권 심판론의 공동 책임론에서 다소 비켜선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총선을 진두지휘했고 4대강 등 정권 악재를 뚫고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16년 3월초, 정권심판론에 동의한다는 응답은 46.7%, 국정안정론에 찬성하는 비율은 40.9%였다. (조선일보-미디어리서치 여론조사) 4년 전보다 정권 심판론 찬성비율은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국정 안정론보다 우위를 보이는 흐름은 여전하다. 여권엔 큰 부담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같은 조사에서 정권심판론에 동의한다는 응답자 중, 야당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응답은 절반 정도인 59.2%에 그쳤다고 한다. 정권을 심판하자는 말에 수긍하면서도 선뜻 야당을 지지하겠다고 답하지 못하는 유권자들, 그들을 충족시키는 길이 바로 안철수 대표가 말하는 제3당의 길일 것이다. 야권은, 안대표는 과연 그 길을 찾아 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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