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보는세상]'진실한 사람'이 질 빚

[the300]

 

지난 17일 오후 국회 본관 1층 출입구. 수십명의 기자들이 진을 치고 정의화 국회의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 의장이 들어서자 카메라 플래쉬가 잇따라 터졌다. 정 의장은 담담하게 쟁점법안 직권상정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최근 여의도 정가에서 가장 주목받는 정치인을 꼽으로라면 정 의장을 빼놓을 수 없다.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쟁점법안 처리를 위해 직권상정을 압박하고,  정 의장이 이에 맞서면서다. 여당 출신의 국회의장이 대통령, 청와대, 여당과 정면으로 맞서는 모습은 언론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국회선진화법 시행으로 의장의 직권상정 여지는 크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와 합의하는 경우에는 가능하다. 여권은 입법공백으로 경제위기가 점증하고 있어 국가비상사태에 준하는 상황이라는 논리를 폈다.   

정 의장은 단호했다. 17일 기자들과 만나서는 "내 생각은 국회법이 바뀌지 않는 한 바뀔 수 없다"며 "내가 성을 다른 성으로 바꾸든지, 정의화에서 (다른 이름으로)"라고 했다. 18일 故 이만섭 전 국회의장 영결식장에서는 "의회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이 흔들리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라며 결연한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정 의장이 여권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을 수 있는데는 5선 의원으로서의 경륜과 합리성, 뚝심 등 개인적 역량 외에 '빚이 없는 의장'이라는 선임 과정도 빼놓을 수 없다.  


'여대야소' 국회에서는 대부분 청와대가 낙점하는 의원이 그대로 의장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통령이 사실상의 인사권자가 되다보니 행정부를 견제해야 하는 국회의장이라고 해도 청와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정 의장은 비박(비 박근혜)계로 대통령이나 청와대의 지원없이 당선됐다. 빚이 없다 보니 입법부의 수장으로서 운신의 폭이 훨씬 넓을 수 밖에 없다. '시시비비'를 떠나 입법부가 독자적인 판단을 한다는 것은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 기본철학의 관점에서 긍정적이다.


이처럼 인사의 영향력은 선출직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정당 공천이라는 과정을 거치는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다. 공천 과정에서 특정인의 결정적인 도움을 받았다면 그 '신세'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한 명, 한 명이 헌법기관이라는 국회의원으로서 운신의 폭에 상당한 제약이 되는 셈이다.  

요즘 여권에선 '진실한 사람' 공방이 유행처럼 회자되고 있다. 당장 박 대통령이 언급한 '진실한 사람' 마케팅을 활용하면 당선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박대통령은 역대 어느 누구보다 굳건한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지나치면 '독'이 될 수 있다. 개인의 역량 보다 '진실한 사람'이라는 브랜드에 과도하게 의지하면 '큰 빚'을 안고 정치를 시작하게 된다. 국민의 대표, 입법부의 구성원으로의 가치, 정치인으로 자기 색깔을 지키고 만들어가는데는 족쇄가 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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