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관]국회의원과 '젊고 유능한' 구청장 후보의 상관관계

[the300]더불어민주당 기초단체장 공천 잡음…국회의원 공천권 행사 지방정치 질적 저하로 이어져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당원이 광주광역시 임우진 서구청장의 공천과 관련해 항의문을 추미애 대표와 우원식 원내대표에게 전달하고 있다. 2018.3.26/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6·13 지방선거의 더불어민주당 서울 은평구청장 후보 공천은 매우 이례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극적 반전'이 거듭된 공천 과정도 그러하려니와 무엇보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공천 짬짜미'를 뚫고 후보가 됐다는 점 때문이다.

김미경 더불어민주당 은평구청장 후보는 당초 1차 경선에서는 컷오프된 경선탈락자였다. 이미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서울 시의원 활동과 함께 구청장 준비를 해왔던 그가 절대강자로 꼽혀왔던 것을 고려하면 매우 의외의 결과였다. 불공정 시비가 나지 않을 리 없었다. 결국 재심을 거쳐 재경선을 치렀고 후보로 확정된 것은 김 후보였다.

결과적으로는 경쟁력 높은 후보가 가려진 셈이지만 자칫 잘못했으면 김 후보는 경선조차 치르지 못하고 공천에서 배제될 뻔했다. 정당 공천의 취지와는 역행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공천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지역구 국회의원의 이해득실이 앞서게 되면 후보 경쟁력은 뒷전으로 밀리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유능하고 지지 기반이 탄탄해 선거에서 승리할 확률이 큰 구청장 후보를 오히려 배제할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은평구청장 공천 역시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공천 과정이 꼬인 것으로 알려졌다. 은평구는 갑·을 지역구로 나뉘어 두 명의 국회의원이 있고 이들은 마침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 초선 의원이다. 지역 정가에서는 향후 이들 국회의원의 잠재적 경쟁자가 될 수 있는 김 후보에 대해 의도적인 경선 배제 압박이 가해졌다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다.

은평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초 공천이 해당 지역 국회의원이나 지역위원장들의 대리전으로 치러지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곤 한다. 구청장 후보 결정이 번복된 또다른 지역인 금천구에서는 이같은 현실을 콕 찝어 지적한 민주당 당원의 비판이 공개 제기되기도 했다.

금천구청장 후보 경선에서는 유성훈 후보가 오봉수 후보를 0.59%포인트의 차이로 신승을 거뒀으나 유성훈 후보가 받은 정치신인 10% 가점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인정되면서 후보 결정이 취소, 재투표가 결정된 상태다. 

서울 금천구 민주당 당원인 정모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투표에 참여한 금천구민과 당원들의 참여와 표심은 오간데없고, 모사꾼들의 검은 모략이 판치고 있다"며 "지방선거가 2년 후 국회의원 선거의 유리한 고지 점령 수단으로 전락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지역 전현직 국회의원 등 향후 총선을 노리는 이들 간 '파워게임'에 정작 구청장의 후보 경쟁력은 사라지고 말았다는 한탄이다.

서울 뿐 아니라 전국 어느 지역에서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차적으론 더불어민주당이 대승을 넘어 압승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는 경쟁이 한층 치열해졌기에 그에 따른 잡음도 커지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기초 공천을 쥐고 흔드는 지방정치에 대한 중앙정치의 '갑질 문화'가 문제다. 국회의원이 기초단체장이나 기초의원을 자신의 지역구 유지를 위한 수단 쯤으로 생각하고 지방선거 때마다 자기 사람 심기에 골몰하는 저질 공천 싸움이 반복된다. 일 잘하고 유능한 구청장, 시장은 오히려 공천 배제 대상이 된다. 

지방정치 역시 질적 저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구의원, 시의원 등 지방정치에서부터 차근차근 성장해 나가려는 정치 신인들 역시 커 나갈 길이 없다. 능력 발휘보다는 국회의원에 줄서기만 강요되는 '적폐'만 쌓인다.

더불어민주당 서울 지역 기초단체장 후보 공천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이 잠재적 경쟁자들을 쳐내기위해 공천과정에서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밟으려하는 지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중앙정치가 지방정치를 예속하는 폐해를 막기 위해 더불어민주당이 내놓은 혁신안이 지방선거 공천권을 시도당에 이양하는 방안이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이같은 혁신안이 처음으로 시행됐지만 당내에서는 실망스러운 목소리가 더 크다. 시도당위원장과 지역구 국회의원, 중앙당 지도부 간 물밑 교감에 따른 나눠먹기식 공천이 여전이 청산되지 못했다는 점에서다. 

단수공천과 전략공천이 남발된 것이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서울 구청장 공천의 경우 25곳 중 절반에 가까운 12곳에서 단수공천 및 전략공천이 이뤄졌다. 후보 경쟁력이 월등히 뛰어나 경선이 무의미할 때 공천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지역 경쟁력을 갖춘 후보의 기회조차 박탈하는 데 동원되기도 한다. 공정성 시비의 대다수가 전략공천에서 비롯됐다. 중랑구청장 후보를 경선없이 전략공천으로 결정하자 탈락 후보가 자해소동을 벌이는 극단적인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서울 강남구청장 후보 공천이 전략 공천 가능성에서 선회해 결국 경선 방침으로 결정된 것도 이 같은 후유증을 염려한 탓으루 풀이된다. 강남구청장 경선은 보수 텃밭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처음으로 깃발을 꽂을 지 여부로 주목을 받아온 6·13 지방선거의 대표적 격전지다. 신현희 강남구청장의 저격수로 이름을 날리고 '강남의 정현'으로 최연소 구청장에 도전하는 여선웅 강남구 구의원의 출마 때문에 더욱 관심도가 높아진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에서 공직을 지낸 특정 후보의 전략 공천설이 강력하게 제기됐다. 표면적으로는 보수적 지역 정서에 맞는 후보를 내야한다는 이유였지만 앞날이 창창한 젊은 정치인의 체급을 높여주는 것을 이 지역 기성 정치인들이 탐탁지 않아했을 것이란 추측 아닌 추측이 나온 것도 사실이다.

경선 역시 지역 조직이 탄탄한 국회의원이나 지역위원장이 밀어주는 후보가 월등히 유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결과는 아직 알 수 없다. 국회의원들이 구청장 후보를 선택하는 기준은 후보 경쟁력과는 반비례하다는 교훈 아닌 교훈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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