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착한' 개헌, '착한' 대통령

[the300]

“참 나쁜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야당 의원 시절이던 지난 2007년 1월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한 말이다. 노 대통령이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한 데 대한 비판이었다. 박근혜는 “국민이 불행하다. 대통령 눈에는 선거밖에 안 보이냐”고 몰아쳤다. “개헌은 블랙홀”이란 말도 이 때 했다. 그 뒤로 ‘개헌’이란 단어는 정치권의 금기어가 됐다.

 

대통령이 된 박근혜는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자 개헌 카드를 꺼낸다. 2016년 10월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다. 의도는 뻔했다. ‘블랙홀’에 대한 기대였다. ‘꼼수’의 생명력은 하루도 못 갔다. 한국의 블랙혹은 개헌이 아닌 최순실, 박근혜였다. 그렇게 박근혜는 “나쁜 대통령”의 칭호를 가져갔다. ‘나쁜 개헌’의 이미지도 강해졌다.

 

장미 대선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던 2017년 3월 15일.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3당은 ‘뜬금없이’ 개헌에 합의한다. 5월 9일 대선날 개헌 국민투표를 부치자는 내용이었다. 손을 맞잡은 이는 정우택(한국당)·주승용(국민의당)·주호영(바른정당) 등 3명의 원내대표. “대선 전 개헌을 희망했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선과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다만 구체적 개헌 내용은 합의하지 못했다.

 

선거판을 흔들기 위한 이 ‘꼼수’ 역시 사라졌다. 개헌은 블랙홀이 되지도 못했다. “2018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한다”는 대선 후보들의 공약으로 수렴됐을 뿐이다. ‘조기 개헌론자’를 자처하던 이들은 개헌을 말하지 않는다. 국회 개헌특위가 가동 중이지만 발 벗고 뛰는 의원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자유한국당은 아예 반대쪽이다. 야권 인사는 “(개헌 관련) 계산이 나오지 않는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문재인 대통령도 개헌을 공약했다. 대통령에 오른 뒤에도 몇 번 약속했다. 지난달 1일 국회 시정연설은 명확하다. “개헌은 국민의 뜻을 받드는 일이다. 내년 지방 선거때 개헌 국민투표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 문 대통령을 아는 이들은 전한다. “(대통령의 개헌) 의지가 강하다. 게다가 약속은 지킨다는 원칙이 확고하다”.

 

향후 행보가 보인다. 청와대 인사는 “액면 그대로”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숨은 의도없이 약속한 대로 갈 뿐이라는 얘기다. ‘문재인 개헌’이 갖는 엄청난 무기다. 약속 이행에 정치적 꼼수를 들이대기 쉽지 않다. 반대하는 쪽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쁜’ 이들로 규정된다. 자연스레 문 대통령의 노력은 ‘착한’ 개헌이 된다. 의도하건, 그렇지 않건 프레임은 짜여진다.

 

내용도 그렇다. 문 대통령은 합의할 수 없는 것은 미루자는 쪽이다. 대신 기본권, 지방분권, 직접 민주주의 등을 전면에 내세운다. 손사래 칠 수 없는 사안이다. 직접 민주주의는 촛불과 맞닿아 있다. 기본권도 촛불과 민주주의의 연장선에 있다. ‘착한 개헌’으로 포장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대통령이 개헌 과정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개헌 발의와 국민투표 부의다. 후자는 능동적이지 않다.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되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적 행위일 뿐이다. 반면 전자는 주체적 권한 행사다. ‘착한 개헌’을 능동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착한 개헌’을 추진하는 주체는 ‘착한 대통령’이 된다. 개헌하면 떠올렸던 나쁜 대통령의 이미지도 벗는다.

 

국회가 반대하면 개헌을 할 수 없다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얻는 게 많다. 부결되면 2020년 총선 때 다시 추진하겠다고 하면 된다. ‘착한 개헌’은 유지하되 그 과정에서 ‘나쁜 국회’의 부산물은 여의도에 남는다. 문 대통령의 ‘독주’라고 비판해봤자 소용없다. ‘착한 개헌’을 챙길 기회는 국회에게도 똑같이 주어져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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