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수당 이전에 '잘 키울 의무' 있다

[the300][워킹맘 좌충우돌](10)육아, 사회구성원으로 건전한 성장시킬 의무있어

1.
주변에 영유아 육아를 주로 담당하는 엄마들과 이야기해보면 공통점이 있다. 첫째, 독박 육아가 힘들다는 것, 둘째, 어떻게 하면 돈 안들이고도 내 아이한테 더 좋은걸 해줄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한다는 것, 셋째, 왜 이 나라는 엄마 마음을 모르는지 모르겠다는 것. 즉, 뭔가 보육 정책을 하려고 하는 것은 같은데 정작 내가 필요한 건 안 해준다는 것이다. 결국 이 같은 모든 문제는 ‘돈’으로 귀결한다. 

가정 외 자원으로 육아 부담을 덜어 줄 인력, 기저귀부터 우유, 치즈까지 매일매일 소비하는 육아필수품, 그 외에 소소하게 들어가는 용품들. 아이들은 자라면서 성장 단계별로 지속적인 보조(support)를 필요로 한다. 절대적인 양적 측면에서만 볼 때에도 아이들의 욕구가 나이에 비례하여 점점 더 커지기에 양육비용도 다차원적으로, 필연적으로 증가한다. 자녀가 어릴 때 돈을 모으라는 어른들 말씀이 일리가 있는 이유이다. 

흔히 저출산 정책의 실패 근거로 '그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도 출산율이 떨어진 것을 보지 않았느냐?' 를 언급한다. 옳은 말씀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직접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그 수많은 예산이 어디로 들어갔는지, 내가 무엇을 받았는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부모들은 무상보육의 결과로 기관에 보육료를 지급하지 않고 아이를 보내면서도 특별활동비가 들어가는 것에 의아해 하게 마련이다. 가정양육수당을 매달 받으면서도 전체 양육비용에 대비하여 그 차이가 상당하기에 항상 부족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여러 가지 현금과 현물 급여들이 무엇을 목적으로 도입되었는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

2. 
문재인 정부는 공약으로 약속했던 아동수당을 내년부터 도입할 예정이다. 모든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아동수당을 언급했던 만큼 그 어느 누구가 당선이 되었어도 도입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주 국회 예산 소위에서 약 1조1000억원에 달하는 아동수당 예산안이 부결(보류)되었다.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를 다투기 이전에 왜 우리가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수당’을 도입하여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없었던 탓일 테다. 이는 저출산을 해소하기 위하여 아동수당을 도입해야 하느냐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실제로 수많은 국가들이 일찍이 아동수당을 도입하였으나 경제 위기와 함께 복지 재정의 전반적인 축소로 아동수당의 절대적 급여 수준도 낮아진 것이 사실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아동수당은 ‘아동복지’ 의 영역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도입 대상 연령이 만 0세에서 5세를 기준으로 하기에 현재 시행중인 보육료 지원 정책과 그 목적이 헷갈릴 법도 하다. '어린이집 보내도 이 돈 받아요?' 라고 묻는 아이 엄마들의 질문이 이를 보여준다. 

보육정책 역시 저출산과 복지 정책이라는 큰 틀안에 속하지만 아동수당을 단순히 기존에 해 오던 정책의 연장 차원, 즉 저출산 대책과 보편적 급여 지급이라는 두 개의 프레임만으로 바라보았을 때에는 도입의 근거가 불명확해질 수밖에 없다.

3.
우리는 현재까지 수많은 아동복지 정책을 전개해왔으나 아동복지법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요보호 아동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기에 모든 아동을 위한 복지는 아직 낯선 것이 사실이다. 아동만을 위한 수당에는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아동수당을 무조건 현금을 퍼주기 위한 정책으로 보고 여야가 공방을 벌이기보다 아동의 건전한 성장을 위해 우리는 그동안 무얼 해왔는지 철저하게 검증하여야 한다. 단순히 부모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현금 지원으로 여기기보다는 왜 아동이 있는 가구에게 보편적인 수당이 지원되어야 하는지, 이를 왜 우리 사회가 함께 연대하여 부담하여야 하는지 진지한 고찰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이 아동이 자라났을 때 우리 사회의 경제활동을 책임지는 주체라는 것, 그리고 다양한 소득보장정책은 세대 간의 연대를 통해 실행된다는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지금 이 비용이 결국은 나에게도 인센티브로 돌아온다는 원론적인 전제를 기억하여야 한다. 돈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은 내가 그 아동을 건전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라게 할 의무가 먼저라는 것을 상기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몇 살 때까지 어느 정도의 소득을 가진 가구에 얼마를 줄 것이냐를 정치적으로 결정하기 이전에 당사자인 부모가 이 돈을 받을 때 무얼 사회에 환원하여야 하느냐,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하느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먼저 되어야 한다.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 가장 큰 현실적인 고민은 ‘돈’ 이다. 그리고 국가가 이를 보조해줄 때 더 많이, 더 보편적으로 급여가 지급되어 정책적 체감도를 향상시키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이 돈을 받고 내가 어떠한 막중한 의무감을 가지고 자녀를 양육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높여 주는 것이다. 

아동을 위한 복지로 수많은 국민의 혈세가 지급되는 정책으로 아동수당을 바라본다면, 해당 예산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종착점이 아닌 한 발 더 사회가 성숙하기 위한 시작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윤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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