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관에서]낙태죄 논란 국민청원 열풍의 명암

[the300][뷰300]직접민주주의 부합 '쇼통' vs 대의정치·청원제도 무력화

【수원=뉴시스】최진석 기자 = 청와대 조국(오른쪽) 민정수석이 29일 오후 경기 수원시 장안구 천주교 수원교구를 찾아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이용훈 주교를 예방를 마친 뒤 이 주교와 악수를 하고 있다. 조 수석은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한 청와대 입장을 밝히는 과정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는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발언, 낙태죄 폐지에 대한 천주교의 입장이 긍정적으로 변화한 것처럼 발표했다가 주교회의의 반발을 산 바 있다. 2017.11.29. myjs@newsis.com

문재인정부 청와대가 낙태죄 폐지 국민청원에 답변한 내용이 뜨거운 논란이 됐다. 프란치스코 교황 발언을 인용한 게 폭발력을 지녔다. ☞[관련기사] 靑, 천주교 찾아 교황발언 인용실수 인정

청와대는 곤혹스러운 가운데서도 조 수석과 박수현 대변인의 29일 천주교측 방문과 해명으로 일단락됐다고 봤다. 한 관계자는 30일 "잘 풀렸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청원은 해프닝 한 번으로 끝나기엔 쟁점을 많이 안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특징 격인 국민청원의 최대 매력은 '무장벽'이다. 누구나, 말도 안되는 소리라도 대통령 앞에 던질 수 있다. 다른 데도 아니고 최고권력기관 청와대가 그렇다. 이런 개방성에 반응성마저 장착했다. '30일 내 추천 20만건'이 되면 공식 답변한다. 문 대통령은 이 기준에 미달해도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여태 두 번의 답변 모두 조국 수석이 나섰다. 소년법·임신중절(낙태)이 그의 소관이기 때문이지만 청와대가 조 수석의 '스타성'을 고려했단 관측도 있다.

과거엔 상상하기 어려운 변화다. 키워드는 직접민주주의다. 국민은 '직접소통'과 '즉각반응'에 대한 갈증이 있다. 청원게시판은 이 갈증에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주효했다. 수십만건의 동의를 얻은 청원이 잇따라 등장했다. 국민청원 자체에 대한 청원이 나올만큼 화제다.

상업 콘텐츠였다면 '대박'인 셈이다. 청와대는 고무돼 있다. 활발한 국민청원 덕분에 국민 시선이 청와대로 향한다. 어지간한 이슈는 청와대가 주도할 수 있는 동력을 준다. 문재인정부의 특징으로 꼽히는 '쇼통'(show+소통) 측면에서도 의미있다.

하지만 논란도 거세다. 첫째 대통령은 왕도, 신도 아니지만 청원 열풍은 모든 문제를 대통령과 청와대가 고칠 수 있다는 인식을 키울 수 있다. 문재인 정부 국민청원은 제도화되지 않은 정치적 결단이다. 이 게시판은 청원법에 근거한 청원과 달리 청와대가 임의로 설치한 공론장에 가깝다. 자칫 대통령의 의지가 약해지거나, 생각이 다른 정권으로 교체되면 청와대 청원기능은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질지 모른다.

둘째 국민청원이 인기를 끌수록 이미 마련된 청원 시스템이 무력해지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국회 청원은 본래 있으나마나 했지만, 관심에서 더 멀어졌다. 국민신문고(국민권익위), 각종 내부고발 장치도 비슷하다. 
청와대 국민청원 추천순 top 7/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셋째 기존 정치제도의 위기다. 이미 국민들의 시선은 대의 민주주의에 머무르지 않는다. 탄핵 국면을 거치며 정치와 사회현안에 관심도 극적으로 높아졌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런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했다. 청와대는 한 손에 국민청원을, 다른 손엔 공론화 제도를 들었다. 반면 의회(국회)와 기존 정치권은 아직 답을 못찾고 있다. 

전통적으로 공론화와 청원은 최고 대의기구이자 '민의의 전당'인 국회 몫이다. 이것마저 대통령과 행정부에게 뺏긴 셈이다. 대통령 권력 분산과 국회 강화를 최고 가치로 뒀던 국회발 개헌론도 설 자리가 줄었다. 지방분권, 기본권 개선 등 '내 삶을 바꾸는' 개헌론이 그 자리를 채우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낙태죄 답변 논란은 단순히 "새 균형점"이란 교황발언의 해석 문제가 아니다. 국민청원의 이면을 드러낸 사건이다. 이런 논쟁을 흘려보낼 게 아니라 국민청원 개선 계기로 삼아야 한다. 국민청원을 제도로 흡수, 뿌리내리게 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야당도 청와대의 막강한 '쇼통'에 속수무책이긴 하지만 새겨들을 점도 있다. 자유한국당은 논평에서 "청원은 엄연히 법적 근거와 제한이 분명한 법제도인데 그런 내용은 쏙 빼놓고 청와대가 뭐든 이뤄줄 것처럼 과장하고 있다"며 "청와대 관계자들이 마치 해결사인 듯 공식답변을 내 놓는 것은 소통을 가장한 쇼"라고 했다.

【서울=뉴시스】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이 26일 청와대 홈페이지,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를 통해 23만명이 청원한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한 답변을 하고 있다. 2017.11.26. (사진=유튜브 캡쳐) phot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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