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심장은 피를 차별하지 않는다

[the300]

이광재 국회 사무총장 /사진=이광재

또 한 명의 이웃이 떠났다. 지난 8일 전주시 빌라에서 40대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그녀는 이혼 후 8년간 홀로 아이를 키웠다. 우편함엔 건보료, 공과금 고지서가 쌓여갔다. 생활고가 핏줄과 생명줄을 압박해왔다. 동맥경화로 사망한 후 부패한 엄마의 시신 옆에서, 생후 18개월 된 남자아이가 굶은 채 쓰러져있었다.

이번에도 국가는 몰랐다. 아니, 알았지만 어찌할 줄 몰랐다. 여성은 이미 2년 전 네 차례, 올해 한 차례 위기가구 발굴대상자로 선정됐다. 건강보험료 56개월, 가스비 3개월, 공동주택관리비 6개월, 심지어 통신비까지 체납됐다. 동 주민센터에서 우편을 보내고 통화를 시도했다. 주소지 방문도 했다. 그러나 원룸 호수를 몰라서 만날 수 없었다. 고작 서너 자리 숫자를 몰라 스러져가는 목소리를 놓쳤다.

이번에도 패턴이 똑같다. 언론이 비극을 알리고, 원인을 조명한다. 복지 사각지대가 지적된다. 가슴 아픈 글이 이어진다. 정부가 부랴부랴 입장을 낸다. "사각지대를 적극적으로 찾겠습니다", "제도를 개선하겠습니다." 9년 전부터 외양간 고치기만 반복이다.

대한민국은 국민의 아픔을 잘 모르는 나라다. 2014년 송파 세 모녀가 현금 70만 원을 남기고 스러졌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들은 삶을 내려놓으며 세상을 원망하기보다 미안하다고만 했다. 그들이 우리에게 미안할 일인가. 2020년 잘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서초구 방배동에서도 그랬다. "우리 엄마 돌아가셨어요. 도와주세요." 발달장애 아이가 남긴 메모를 보고, 세상을 떠난 지 5개월이 지난 엄마의 시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또 3년이 흘렀다.

이번에는 바뀌어야 한다. 복지 신청주의를 근본적으로 해소해야 한다. 동사무소 앞 현수막을 보면 이렇게 적혀있다. "위기가구 긴급 생계지원 신청하세요!" 어려운 사람이 와서 신청하라는 소리다. 번거로운 절차도 문제다. 각종 복잡한 서류를 떼면서 심리적 좌절을 겪는 사람이 많다.

이제 적극적인 발굴 복지로 나아갈 때다. 기본은 정확한 국가 통계다. 코로나 초기 재난지원금을 줄 때, 소득 파악이 어려워 제때 지급하지 못했다. 국민의 질타가 이어졌다. 스웨덴은 개개인의 삶을 40여 개 지표로 나눠 낱낱이 기록한다. 정부가 매년 데이터를 모아 이를 기초로 정책을 추진한다.

어려운 이웃을 조기 감지하는 지표가 있다. 전기, 수도요금 등 몇 가지만 파악해도 위기가구를 찾아낼 수 있다. 우리 정부도 39종 위기정보 빅데이터를 모은다. 수집 대상을 더 넓히고, 분석의 정확도를 높여야 한다. 시기를 놓쳐서도 안 된다. 위기정보가 즉각 현장 주민센터로 전달되고, 신속히 피드백이 이뤄지는 살아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심장은 피를 차별하지 않는다. 인간의 몸 구석구석 실핏줄을 하나로 이으면 9만6000㎞, 지구를 두 바퀴 반 돈다. 피가 통하지 않으면 손발이 차가워진다. 고도화된 인간의 몸처럼, 국가도 국민의 삶이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운지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도 국가를 믿고 살아갈 수 있다. 행복한 국민이 국가의 존재 이유다.

요즘 많은 사람이 묻는다. "대한민국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절박한 과제가 많건만 100년 전 이념논쟁이 뉴스를 채우고 있다. 과거와의 싸움은 멈추고 미래로 갔으면 좋겠다는 것이 국민의 마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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