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토영삼굴'의 지혜가 절실하다

설렘과 기대 속에 새해를 맞곤 하지만, 올해는 우려가 앞선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 우리 경제가 직면한 대내외 여건이 안갯속이다. 아니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본격화되는 경기 위축, 일자리 감소, 부동산·자산 버블 붕괴, 무엇보다 인플레와의 전쟁 속 서민들의 삶이 더욱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3고 현상'에 따른 내수 침체, 반도체 등 경제 버팀목인 수출까지 지난해 하반기 들어 급격한 둔화세에 빠졌다. 자금 경색에 따른 기업 부도라는 뇌관이 언제 터질지도 모를 일이다. 산 넘어 산, 말 그대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정부, 기업, 국민 모두 다시 한 번 신발 끈을 단단히 동여 메야 한다.

대내외적으로 온갖 악재가 도사리고 있지만, 최대의 위험 요인은 역시 '정치 리스크'다. 지난 한 해 국회는 부끄러움 그 자체였다. 통합과 치유라는 본연의 역할을 망각하고 오히려 극한 대결로 분열과 혼란을 부추켰다. 0.73%포인트 차이. 어쨌든 승부는 갈렸지만, 대선은 끝나지 않았다. 연장전이 지속 됐다. 어느 때보다 소통과 협치가 필요했지만, 진영에 기댔다. 선거 때는 외연 확장, 중도층이 필요해 변하는 척 시늉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시 쉬운 길을 택했다. 야당은 민주적 절차에 따른 정권 교체를, 여당은 제1 야당을 인정하지 않고 사생결단 출구 없는 싸움에 몰두했다. 집권 여당은 대선 승리 후 곧바로 벌어진 권력 투쟁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더니, 야당은 전례 없는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막기 위한 방패로 전락했다.

몰염치함의 절정은 지난해 12월 벌어졌다. 헌정 사상 첫 준예산 편성이란 위기는 넘겼지만, 경제와 서민이 신음하고 있는데 법정 시한을 3주나 넘겨 새해 예산안을 통과 시켰다. 대선 이후 윤석열정부의 첫 번째 예산이었다. '어디 한번 해봐라' 기회를 줄 수도 있었지만, 철저하게 막았다. 여당 역시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음에도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전체 예산 639조 원 중 마지막까지 대립했던 규모는 불과 수억 원에 불과했다. 그 작은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삿대질을 했다.

싸움만 일삼다 결국 민생과 직결된 일몰 법안 처리도 내팽개쳤다. 안전운임제(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 연장 등 쟁점법안 처리를 놓고 힘겨루기를 하다 주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근로기준법 개정안)와 건강보험재정 국고지원 일몰 연장에 합의하지 못했다. 영세 소상공인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건보재정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그런데 연초부터는 1월 임시국회 소집을 놓고 또 대치 중이다. 야당이 이태원 국정조사 연장을 이유로 소집을 요구하자 여당은 '이재명 방탄 시도'라며 반발하고 있다. 뒤늦게 안전운임제, 추가연장근로제 등도 논의하자고 한다.

2023년 새해에는 정말 정치가 달라져야 한다. 정치 논리가 경제를 휘둘러선 안 된다. 눈 앞에 놓인 경제 위기도 문제지만, 그동안 실타래처럼 꼬여 있을 뿐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노동, 교육, 연금, 저출산 고령화 등 구조적 문제 해결의 첫발을 내딛어야 하지 않나. 한치 앞을 내다 보기 힘든 여건이지만, 국가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개혁을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 진영의 문제가 아니다. 미래 세대를 위해, 지속 가능한 국가를 위해 반드시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오매불망 핵심 지지층만 바라봐선 되는 일이 없다. 극단의 쉬운 길이 아닌 오히려 진영을 배신하는 험로를 택해야 2024년 총선에서도, 다음 대선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새해 전망이 장밋빛이었던 적이 없었다. 오히려 절망스러울 때 우리는 내실을 다지며 기회를 찾았다. 정치권은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줘야 한다.

'검은 토끼의 해'다. 고서에서 토끼는 순발력과 지혜의 동물로 인식된다. '토영삼굴(兎營三窟)'. 토끼는 언제 닥칠지 모를 위험을 대비해 미리 세 개의 굴을 파 놓는다고 한다. 어려움이 커질수록 '토영삼굴'하는 지혜가 절실하다. 정치가 더 이상 민생과 경제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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