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9월 용산, 피바람이 분다

[the300][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대통령마다 스타일은 다 다르다. 여러 정권을 거쳐 대통령을 보좌했던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특색이 뚜렷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원고대로 읽던 관행을 깼다. 대통령이 예상되지 않은 발언을 즉석에서 한다는 건 당시 참모들에게는 충격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젊었다. 수행해야 할 일정이 대폭 늘어난 통에 수면 부족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익히 알려진 대로 새벽형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 때는 더 심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열공' 모드였다. 중요한 외교무대를 앞두고는 직접 요약 노트를 만들고 주말에도 보고서를 붙잡고 수시로 참모에게 전화했다. 현직 윤석열 대통령은 소통이 특징이다. 용산 대통령실은 건물들이 멀찍이 떨어져 있던 과거 청와대와 공간 자체가 다르다. 대통령과 참모들의 점심, 저녁 '벙개'는 일상이다. 때로 버럭 하면서 부딪히기도 하고 혼쭐도 내지만 기본적으로 대통령이 다른 이들의 의견을 많이 듣는다는 게 참모들의 평가다.

#낮 12시35분. 대통령실 A행정관은 아직 점심시간이 한창인데 자꾸 시계를 쳐다본다. 행여 사무실 복귀가 늦을세라 마음이 편치 않다. 엘리트 관료로서 탄탄한 경력을 쌓아온 '늘공'이지만 불안하다고 했다. 지위를 막론하고 진행되는 대통령실의 쇄신 칼날이 누구를 향할지 모르는 두려움이다.

창가 자리에 앉았던 B행정관은 밥을 몇 술 뜨다 말고 블라인드를 친다. 지나가는 사람과 눈 마주치는 게 공연히 부담스럽다. 정치권에서 누구보다 착실히 경험을 축적해온 '어공'임에도 "피바람이 분다"고 긴장했다.

요즘 용산의 점심 풍경이다. 어제 인사했던 사람이 오늘 안 보이는 나날이 이어지면서 직급이나 업무영역을 따질 것 없이 한껏 위축됐다. 분위기가 이러니 소통에 강한 대통령이 발휘할 수 있는 최고 경쟁력이 안 보인다. 핵심 참모부터 실무진까지 격의 없이 아이디어를 모으고 추진력을 발휘하도록 이끌 수 있을 텐데 현실은 바짝 경직된 상태다.

#'쇼'를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윤 대통령의 성품을 고려할 때 이런 쇄신은 예고된 건지도 모른다. 한 번에 뒤집는 전면적 발표보다는 수시로 보강·교체하는 방식이다. 한 여권 인사는 "짧고 강하게 단행했으면 선명한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어수선한 기간은 최소화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고 했다.

일단 선택했으면 상시 쇄신의 장점을 극대화해야 한다. 억울하게 휩쓸려 경질되는 인재가 없도록 가려내는 게 대표적이다. 전면적 업무점검도 기준을 세워 불확실성을 제거하되 가능한 단기간에 매듭짓는 게 바람직하다. 동시에 메시지도 살려야 한다. 메시지는 감동이 실려야 힘을 받는다. 감동은 상대가 기대하는 수준을 뛰어넘을 때 나온다. 아무리 아끼는 복심이라도 책임이 있다면 쳐내는 결단이 그렇다. 말 그대로 읍참마속이다.

반대로 눈엣가시 같아도, 앙금과 섭섭함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도 국정 철학을 공유할 수 있다면 품어내는 아량도 절실하다. 국가 최고지도자의 숙명이다. 대통령실 혁신은 물론 교육부, 보건복지부 장관 등 헌정사상 최장기간 공석을 이어가고 있는 자리를 채울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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