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디테일의 함정

[the300]

편집자주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4인 가족인 기자에게 청약점수 만점은 69점이다. 탈법으로 부양가족 수를 늘리지 않는 한 최고점인 84점은 남의 얘기다. 실수요자조차 순간 헷갈릴 수 있는 '만점'을 아느냐가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등장했다. 이보다 더 생소한 'RE100'도 아느냐의 대상이 됐다.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게 낫겠지만 대통령의 자격과 쉽사리 연결되지는 않는다.

소소한 공약만 넘쳐나고 국가적 비전제시가 안 보인다는 비판이 계속됨에도 불구하고 선거 코앞까지 무의미한 논쟁이 이어진다. 설 명절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 간 양자 토론은 자료를 보며 하느냐 안 보며 하느냐로 싸우다가 무산됐다. 안 봐도 자신 있는 사람은 안 보고 하고, 보면서 정확히 하고 싶은 사람은 보면서 했으면 될 일이다. 판단은 국민이 하면 됐다.

#디테일 자체가 성공을 담보하지도 않는다. 현 정부가 청약점수 만점을 몰라서 집값을 폭등시킨 건 아니다. 오히려 어떤 여권 인사들은 디테일하게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곳에 상가 건물을 사서 재미를 봤고 디테일하게 서류를 위조해 자녀 입시 부정을 저질렀다.

디테일을 따져 상대를 공격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건 정치권에서 익숙하다. 희대의 블랙코미디로 꼽힐 지난 총선 위성정당 사태가 단적이다.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은 공직선거법상 조항 하나하나를 따져 아슬아슬하게 불법을 피해갔다. '합동 선대위' 대신 '합동 회의'를 여는 식으로 한 몸이지만 한 몸이 아닌 행세를 했다.

#소모적인 디테일 논쟁에 발목 잡힐 만큼 현실은 한가하지 않다. 이대로는 1990년대생은 연금을 사실상 한 푼도 못 받는다. 미증유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기록적인 저출산이 겹쳐 국가적 재앙이 훨씬 앞당겨질 수도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몇몇 표퓰리즘적 공약으로만 2030 세대의 표심에 구애한다. 첫 4자 토론에서 연금개혁에 공감대를 형성했다고는 하지만 거기까지. 그 이상 디테일은 없다. 윤희숙 전 의원의 일갈대로 "지금 입을 꾹 다무는 정치가들은 정말 비겁하다"

나폴레옹의 표현대로 지도자는 희망을 파는 상인이다. 미래를 말하고 희망을 불어넣어야 하는 동시에 이를 위한 고통도 설득해야 한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매일 같은 시간 라디오 방송에서 국민에게 메시지를 던졌다. 대공황 시대를 맞아 경제 정책 기조를 근본부터 바꾸기 위해 '성전'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결국 디테일의 방향이 중요하다. 비전과 전략도 정확한 디테일에서 나온다. 실제 국민의 삶을 향한 꼼꼼한 시선이 먼저다. 전월세 시장과 주택거래 심리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대로 살폈다면 몇 번인지 셀 수조차 어려운 좌충우돌 부동산 대책이 나올 수 없다. 영세 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생태계를 세심하게 파악했다면 막대한 부작용을 낳은 소득주도성장이 그토록 거칠게 추진되지는 못했다.

한 눈은 국민의 하루하루 생활을, 또 한 눈은 미래를 향하는 시선이 필요하다. 최소한 남은 토론에서만큼은 "이거 아느냐"고 묻기보다 "왜 알아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기 바란다. 국민은 후보들의 지식 자랑보다는 지혜를 보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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