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눈치만 보는 정부

"답답하다."

지난주 국회 산업통상자원벤처중소기업위원회의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를 지켜본 디스플레이 업계 고위 관계자의 반응이다. 최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의 '국가핵심전략산업특별법에 디스플레이 분야만 제외했다'는 보도 이후 문승욱 산업부 장관의 입장 변화에 관심이 모아졌으나 특별법을 언급하지 않고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우회적인 답변으로 갈음했기 때문이다.

같은 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특별법의 주무부처는 산업부로 확실히 했다"고 못 박은 것을 감안하면 문 장관의 발언은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산자위 안팎에서 "산업부가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보다 기재부 눈치만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문 장관은 삼성전자 반도체 영업기밀(최근 3년 치 매출과 고객정보, 재고 현황 등)을 대놓고 요구한 미국 정부에 대해서는 "통상적인 상식으로는 이례적인 조치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우리의 대응 방향을 밝히지 않았다. 협상을 앞둔 산업부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도 대만 정부가 1주일 만에 미국의 요구를 일축한 것과 비교하면 사실상 눈치만 보다가 초기 대응 시기를 놓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달 초 대만 경제부는 TSMC를 비롯해 자국 반도체 업체들이 고객의 동의 없이 영업비밀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오죽하면 여권에서조차 "이러다 미국이 삼성전자를 국유화하는 것이 아니냐"(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 "깡패 미국에 맞서 사자처럼 싸워야 한다"(조정훈 시대전환 의원)는 목소리가 나올까.

지난달 우리나라 수출은 558억3000만 달러(약 66조6721억원)로 무역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56년 이래 6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디'(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의 쌍끌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것을 문 장관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지난 5월 산업부는 2030년 시스템 반도체 글로벌 1위 달성을 목표로 'K-반도체 전략'을 발표했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경쟁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겠다는 공식 선언인데, 미국에 한국 반도체 산업의 기밀을 통째로 내주고 이를 달성할 수 있을지 우려가 앞선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