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살입법]항공 조종사 파업이 어려운 이유

[the300]③입법을 통한 기존 시장 보호

편집자주25년 국회 경력을 가진 서인석 AP입법교육원 원장(전 보좌관)의 연재 기고 '필히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입법'(필살입법)을 시작합니다. 서 전 보좌관은 입법활동 전반에 대한 책을 쓰고 강의를 하며 행정사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서 전 보좌관이 입법 노하우의 정수만 뽑아 총 10회에 걸쳐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서인석 전 보좌관.

입법을 통한 기존 시장 보호란 법적 미비(未備)로 자신의 기존 이익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던 것을 입법을 통해 확실히 지켜 내거나 혹은 자신의 이익을 더 공고히 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지켜 내거나 공고히 하는 건 시장을 보호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이익이나 영업권 또는 기득권을 더 강화하는 것일 수도 있어 그 대상은 다양하다.



항공기 조종사 파업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017년 3월 신문 한 귀퉁이에는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2차 파업 계획 철회'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당시는 대통령선거를 두 달여 남겨둔 상황이라 이 기사는 세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는 앞서 2016년 12월에 약 1주일간 파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당시 파업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챈 국민은 거의 없었다. 애초부터 법적 한계로 조종사의 파업이 '파업' 다운 영향력(?)을 보여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파업은 일차적으로 조합원의 참여도가 높을 때 성공(?)할 수 있다. 많은 조합원이 파업에 참여함으로써 일상적 업무가 마비돼 그에 따른 물적·정신적 피해가 커야 사측에서 노조 주장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애초부터 조합원 참여에 제한이 많은, 그것도 법적으로 한계가 정해져 있다고 한다면 이 같은 파업이 가져올 결과는 어떠할까? 이건 물어볼 것도 없이 이미 결론이 난 사안이다.

그럼 왜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일까? 시간을 12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평소 신문을 꼼꼼히 읽는 사람이라면 2005년 8월에 한 달여에 걸쳐 진행된 아시아나항공 조종사의 파업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파업은 7월 17일부터 8월 10일까지 사상 최장기간 이어졌는데 정부가 '긴급조정권'을 발동함에 따라 25일간 이어져온 파업은 일단락됐다.

1963년에 도입된 '긴급조정권'은 1969년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와 1993년 현대자동차 파업 때 발동됐을 정도로 그동안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그런데 정부가 아시아나 조종사 파업을 계기로 사상 세 번째인 긴급조정권을 발동했다. 이건 정부가 그만큼 다급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여름 휴가철과 맞물려 조종사들 파업이 미치는 영향력이 결코 작지 않았던 데다 손실 또한 눈덩이처럼 커져 갔기 때문이다.

당시 언론은 파업에 따른 최장기 항공대란으로 4241억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보도했다. '최장기 항공대란'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이에 따라 사측과 정치권의 기득권 보호를 위한 대응이 이어졌다. 그건 곧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개정하는 것이었다. 이유는 이렇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출액의 33%를 항공부문이 담당하고 있고, 국적항공사의 항공운송 점유율이 여객 63%, 화물 67.3%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항공사 파업 시 이를 외국항공으로 대체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며 "항공기를 대체할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는 제주도의 경우 지역경제와 주민들의 삶에 절대적인 악영향을 가겨온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제주도 출신의 여당 의원이 앞장서 '항공운송사업을 필수공익사업에 포함'하는 내용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필수공익사업이란 의료나 수도공급, 전기공급, 항공관제처럼 업무의 정지 또는 폐지가 공중(公衆)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하거나 국민경제에 큰 영향을 미쳐 대체가 불가능한 업무를 가리킨다. 따라서 필수공익사업에 포함될 경우 파업이 제한되며 노동위원회 중재를 통해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 특히 노동위원회 위원장에 의해 직권중재가 확정되면 중재회부일로부터 15일간 쟁의행위가 금지되고 중재 결정이 내려지면 단체협약과 동일한 효력을 발휘해 관계당사자를 구속한다. 한마디로 필수공익사업에 포함되면 파업은 쉽지 않은 일이 되는 것이다.


법률 개정으로 항공사 노조 파업은 사실상 불가능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은 조종사들이 파업을 한 지 1년 뒤인 2006년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의 내용은 '항공운송사업을 필수공익사업에 포함함'이라는 17개의 글자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이 미치는 영향력과 앞으로 가져올 결과는 실로 엄청났다. 항공사측과 정부는 기존 법률에 단지 17개의 글자만을 추가함으로써 골치 아픈(?) 조종사의 파업이 '항구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거나 설혹 실행된다 하더라도 그 파괴력이 대단히 미미할 수 있도록 조치한 것이다. 이에 반해 항공사 조종사들은 사측과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손발을 묶는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는 것을 그냥 지켜봐야만 했다. 그건 사측과 정부의 움직임을 잘 몰라서일 수도 있고 혹은 적절한 대응방법을 찾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이유가 어떤 것이든 이로써 조종사들 파업은 쉽지 않은 것이 됐다.

실제로 이 같은 사실은 2016년 12월 대한항공 조종사들의 파업을 통해서 확인됐다. 조종사들은 파업을 하더라도 법률에 따라 국제선 80%, 제주노선 70%, 내륙노선 50%는 반드시 운항해야 한다. 파업 인원도 전체 조종사의 20%를 넘을 수 없다. 그런데 실제로는 전체 조종사의 8%인 189명만 파업에 참여했다. 이러니 파업을 하더라도 운항 차질이 빚어질 리 만무했다. 파업 기간 중 운항률은 95%였다. 일본 중국 등 일부 노선에 대한 조정만 있었다. 자연 파업 동력은 떨어지고 효과 또한 미미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실효성을 거둘 수 없었던 것이다. 조종사 노조가 예고된 2차 파업을 취소하는 건 당연한 결론이다.

'법'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이게 바로 '입법을 통한 기존 시장 보호'가 갖는 현실적인 힘이다. 사측은 법률을 개정함으로써 조종사들의 파업을 무력화시키면서 기존의 이익을 지키고 나아가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반대로 조종사 노조는 사측의 법률 개정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상당 정도 침해받을 수 있는 건 물론 파업조차 쉽지 않은 처지가 된 것이다. 한마디로 조종사들 입장에서는 '뼈아픈 패착'이지만, 사측입장에서는 '법률 개정'이야말로 '쾌재'를 부를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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