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국정원의 일방적 사과

[the300]

박지원 국가정보원장님. 지난 27일 '국민사찰 종식 선언 및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셨더군요.

앞서 지난달 국정원은 대법원에서 40년 만에 무죄가 확정된 '남조선해방전략당'과 '인민혁명당' 사건 유가족에게 원장님 명의의 사과문을 발송했습니다. 한국 현대사의 오점이자 비극인 중앙정보부와 안기부가 저지른 만행을 이제라도 반성한다니 뒤늦게나마 다행입니다.

그런데 최근 잇따른 사과에 사건 당사자인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보다 원장님이 잘 아실겁니다. 우선 앞서 언급한 두 과거사 사건의 원장님 명의의 사과 서한 발송은 지난달 초 이뤄졌습니다.

피해 유가족에게 확인해보니 국정원으로부터 사전에 어떤 연락도 받은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피해 당사자는 "사과를 받을 준비가 안 돼 있다"는데 사과라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교롭게도 사과 서한 발송 시점이 사위분의 마약 밀수·투약과 관련된 재판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지 불과 며칠 만에 이뤄졌습니다. 사실 원장님 가정사이기 때문에 이를 언급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을 했지만 이에 따른 내부 반발 등 후문도 들리기 때문에 석연찮다는 시각이 적지 않습니다.

당시 국정원은 "각 기관별로 우선 사과를 드리게 됐다"고 했습니다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국민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겁니다. 익명의 국정원 직원은 "사과 서한 발송은 원장님 의지로 이뤄졌다"고 했습니다.

이번 과거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한 공식 사과에서도 피해자 개인 또는 피해 단체 등에 대한 명예회복 방안은 빠졌더군요. 오히려 "문재인 정부 들어 정권의 부당한 지시는 없었다"고 원장님이 강조한 대목을 두고 지난 정부에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사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옵니다.

특히 피해 시민단체가 요구한 '국정원 특별법' 제정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는 탓에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다짐에 그쳤다는 혹평도 들으셨을 겁니다. 피해자 당사자의 입장을 수용하지 않은 탓에 충분히 예상하셨을 겁니다.

한 국가폭력 피해자는 "국정원에 사과를 구걸한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일련의 일방적인 사과가 오히려 그동안 개혁의 노력을 빛바래게 한 것은 아닌지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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