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짜리 시장 선거[광화문]

당혹스러웠다. “박원순은 정말 그렇게 몹쓸 사람이었나”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페이스북 말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보름 남은 23일, 그것도 야권 단일 후보가 결정되는 날, 아무리 박 전 시장 재임 시절 정무부시장으로 인연을 맺었다 해도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이 시점에 이런 글을 올렸을까.

겨우 1년 남짓한 임기의 시장을 뽑는 선거에 약 800억 원이란 막대한 시민 혈세가 들어간다. 원인 제공자는 여당이다. 후보를 추천하지 않겠다는 당헌까지 바꿔가며 후보를 내세웠다. 경위야 어떻게 됐든 대선 전초전 성격이 큰 만큼 후보를 낸 이상 반드시 이겨야 하는 선거다. 백번 입장을 이해한다 해도 이건 아니지 않나.

임 전 실장의 ‘뜬금포’는 최근 여권이 처한 난맥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지칭 2차 가해 논란을 빚은 남인순·진선미·고민정 의원의 박영선 후보 캠프 합류와 뒤늦은 하차. 박 후보 역시 피해자의 기자회견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즉답을 피하며 “집에 가서 진지하게 생각한 뒤 오늘 밤에 페이스북에 올리겠다”고 답했다. 돌이켜 보면 후보가 내뱉을 말이 아니었다. 바꿔 말해 여당은 아직도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입장 정리를 못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혈세를 들여가며 1년짜리 시장 선거를 왜 치르는지 아직도 진정한 성찰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번 선거는 여권에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시민들의 관심은 야권 단일화에 쏠렸다. 여권의 재난지원금, 백신 카드가 전혀 먹히지 않고 있다. 남은 기간 특별한 이슈를 던져 선거전을 이끌고 갈 동력도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여권의 오만과 독선, 독주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정권 심판론은 갈수록 거세지며 여권을 수세에 몰아넣고 있다. 특히 최근 이런 민심이 더욱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 지난 19일 한국 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선거가 목전인 서울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전국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 정도면 민심이 말하는 것은 자명하다. 가뜩이나 경제도 안 좋은데 코로나19(COVID-19)가 창궐했고, 집값·전세값이 폭등했다. 화가 단단히 났다. 그런데 한국토지공사(LH) 사태가 터졌고, 이에 대응하는 당정의 모습은 이런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적어도 현재까지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들은 집권 여당에 회초리를 들 태세다. 여당으로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지난해 총선의 압도적 승리가 독이 된 여파가 지속되고 있는 걸까. 선거 원인 제공자로 보다 낮은 자세로 임하며 뭔가 달라지겠다는 메시지를 내놔야 함에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 시민들이 내는 경고음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없어 보인다.

여당의 기조는 확실해 보인다. 임 전 실장의 글이나 “선거가 아주 어려울 줄 알고 나왔는데 요새 돌아가는 것을 보니 거의 이긴 것 같다”는 이해찬 전 대표의 관측은 일맥상통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선거 전문가가 등판해 내놓은 분석이지만, 적어도 현재 여론조사 상황과는 동떨어졌다. 중도 확장 포기다. 보선이다. 투표율이 중요하다. 남은 선거 기간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최대한 이끌어내는데에만 집중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선거에는 승패가 뒤따른다. 다이내믹한 한국 정치환경에서 보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 여당이 어떤 회심의 반격 카드를 손에 쥐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선거 결과를 예측할 수 없지만, 적어도 현재로선 여당에 쉽지 않은 여건이다. 패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전초전이라 해도 대선까지 바라본다면 보선 패배는 오히려 여권에 약이 될 수도 있다. 적어도 민심을 제대로 읽고 자성의 계기로 삼는다는 전제에서다.

‘양보 경쟁’ 을 통해 우여곡절 끝 단일화를 이뤄내며 승기를 잡은 것처럼 보이지만, 야당도 안심할 수 없다. 국민들의 회초리는 야당이 잘해서가 아니다. 여당에 대한 경고적 성격이 훨씬 강하다. 국민의힘에 대한 여론의 반감은 여전한데, 현 정권에 대한 불만에만 편승하려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 최근 분위기에 취해 변화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오히려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다 해도 독이 될 수 있다. 180석 총선 압승이 여당에 독배가 된 것처럼 말이다. 여든 야든 겸손을 멀리하고 방심하는 쪽이 지게 돼 있다. 그게 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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