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LH 사태'에 도사린 포퓰리즘


#울고 싶은데 뺨 때렸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는 국민들의 분노를 제대로 건드렸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는 여권이 직감했다. 발등에 불 떨어진 여당 서울시장 후보가 특검 카드를 던졌고 당이 바로 받았다. 지난 수년간 숱한 논란에도 좀처럼 실시간 입장을 내지 않던 대통령이 매일 초강경 메시지를 내놓는다.

민심을 달랠지는 의문이다. 명칭은 그럴듯하지만 구성하는데만 시일이 한참 걸리는 게 특검이다. 전수조사에 야당도 끌어들인다. 자기들 권한 휘두를 때는 없는 사람 취급하더니 책임져야 할 때는 같이 해야 한단다. 대통령은 사과는커녕 비판하는 목소리에 짜증을 냈다.

물 타기와 물고 늘어지기는 원래 정치권 속성이니 새삼스러울 건 없다. 진짜 문제는 이슈가 터질 때마다 벌어지는 입법권 남용이다. 불붙은 여론에 찬물 한 바가지씩 붓듯 각종 ‘법’을 경쟁하면서 쏟아낸다. 논란이 거센 법을 성난 여론을 핑계로 뚝딱 통과시킨다.

LH 파문에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이 특단의 대책으로 떠올랐다. 대통령이 강조했고 야당도 반대하지 않는다. 공청회 날짜가 잡혔고 무산된 지 6년 만에 본격 처리 수순을 밟는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꼭 필요하고 타당하지만 법으로 만들 수 있나” 이해충돌방지법을 심사해야할 국회 정무위원회 한 의원의 탄식이다. 어디까지가 이웃이고 어느 정도가 사랑인가. 제19대 국회에서 20대, 21대 국회까지 통과가 안 되고 미뤄져온 게 의원들이 게을러서만은 아니다.

공직자의 이해충돌을 막는다는 취지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만 법으로 규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해충돌의 정의부터 직무관련성을 따지는 것까지 하나하나가 산 넘어 산이다.

열띤 토론 끝에 보류 결론을 낸 2015년 7월21일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원회 속기록을 보자. “정부안은 국무위원 다 빼게 돼 있고 그 이유가 국무회의 안건심사를 하기 때문이고, 그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따지면 (본회의 표결을 하는) 국회의원이 다 빠져야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빼자는 게 아니라 말이 안 된다는 거예요” 누구보다 이 법을 고민했던 김기식 당시 민주당 의원의 발언이다. 복잡다단한 개개인의 삶에서 사적 이해관계를 따져 직무수행을 금지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현재 발의된 법은 좀 더 방법론을 고민했다지만 근본적 고민은 그대로다. LH 사태를 계기로 논의를 재개할 수는 있지만 ‘3월 통과’식으로 밀어붙여선 곤란하다. 혼란만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절실하다면 시간이 걸려도 제대로 만들어야한다.

#이른바 거대여당의 ‘입법 독주’가 본격화되면서 곳곳에서 “법 지키는 법 좀 가르쳐달라”는 냉소가 적잖다. 누더기 법으로 전락해 모두가 불만인 중대재해처벌법을 비롯해 일단 만들고 봤다가 거센 반발에 부딪힌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집단소송법과 징벌적 손해배상 전면 시행 등 민간 영역 전체에 폭발적 변화를 불러올 법안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탱해야 할 법이 가벼워진다. 법치주의를 흔드는 포퓰리즘은 법과 제도 탓을 하며 ‘법의 지배’(rule of law)를 무시한다. 사람의 문제를 슬쩍 제도 문제로 떠넘기며 법을 바꾸고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를 펼친다. 여야를 가리지도 않는다. 선거를 눈앞에 두니 과거를 단숨에 뒤집고 가덕도법을 합심해 처리하는 게 한국 정치의 현주소다.

대선까지 달콤한 속삭임은 계속될 것이다. ‘국민의 뜻’을 받든다며 지지자에게는 터무니없는 약속을, 반대자에게는 반역의 낙인을 남발할게다. 그러나 포퓰리즘도 프레임도 민심을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이기지는 못한다. 결국 현명한 국민만 광풍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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