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이 된 '86세대'와 '문파'

[the300][대한민국 4.0 II] 진보의 위기-보수의 자격【4】-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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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 한열 동산에서 열린 고(故) 이한열 열사 33주기 추모식에서 '한열이를 살려내라'란 문구가 적힌 판화 조형물이 공개되고 있다. 2020.6.9/뉴스1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생)는 범진보진영의 핵심이다. 80년대 학생운동 세대인 이들은 민주화의 주역이다. 정치의 세계에 들어온 뒤에는 두 번의 정권 창출에 기여했다. 하지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변화를 꿈꿨던 이들은 현재 기득권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거대여당으로 등극한 더불어민주당의 다수도 86세대다. 현실에 안주하는 86세대에 극성 지지층까지 겹치면서 진보가 진보하지 못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득권이 된 86세대



민주당 내 86세대는 주류 중 주류다. 특히 1987년 민주화 운동 당시 활약했던 이들이 민주당의 주류로 활동하고 있다. 민주당의 원내대표 출신인 이인영 통일부 장관과 우상호 의원은 1987년에 각각 고려대와 연세대의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이들은 같은해 결성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의 초대 의장과 부의장을 맡았다. 4선의 이 장관은 지난 7월 통일부 장관이 됐다. 역시 4선의 우 의원은 내년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 중이다. 전대협 출신으로는 3기 의장을 지낸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있다.

이들 외에도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경험을 공유한 이들이 국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 소속으로 당선된 국회의원은 180명. 이 중 50대는 113명(62.7%)에 이른다. 86세대가 다수 포진하면서 평균 연령도 55.1세를 기록했다.

86세대의 헤게모니는 21대 총선의 압승으로 더욱 공고해졌다. 하지만 범진보진영 차원에서 86세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예전 같지 않다. 민주화 운동이 있었던 1987년에 태어나 이번 총선에서 정의당 의원으로 당선된 장혜영 의원은 86세대를 '기득권자'로 규정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40대 주자들도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소장파'로 꼽히는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86세대는 기회를 소진했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1971년생이다. 1973년생인 박주민 의원도 선배 세대와는 다른 정치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86세대는 이제 주도권을 다음 세대에게 일부라도 이양하기 시작해야 마땅하다"며 "86세대가 정치적인 대표성을 가지게 된 것은 80년대 민주화 운동에 기여했다는 것인데, 지금에 와서도 그것을 주장하기에는 정치권 86세대는 이미 보상 받을 만큼 다 받았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15년 전 한국의 엘리트 3만2000명을 분석한 결과도 소개했다. 그는 "운동권 출신 엘리트의 국회의원 당선 확률은 모든 조건을 통제했을 때 다른 엘리트보다 100배가 넘었다"며 "그런데 86세대들은 아직도 자기들이 운동권으로 희생할 때 당신들은 뭐했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뉴스1) 임세영 기자 =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에서 열린 윤리심판원 징계논의에 참석하고 있다. 금 전 의원은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 투표 당시 기권표를 던졌다. 이후 민주당 윤리심판원은 지난 5월25일 금 전 의원이 당론과 다른 의견을 냈다는 이유로 '경고' 처분을 내린 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생겼고 금 전 의원은 지난 2일 재심을 신청했었다. 2020.6.29/뉴스1



진보진영의 실세 '문파'



문재인 대통령의 극성 지지층을 의미하는 '문파'의 존재도 범진보진영의 동력을 가로막고 있다. 이들은 사실상의 기득권 역할을 하고 있다. 팬덤 정치의 출발점은 2000년대 초반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팬덤 정치를 기반으로 극적으로 당선되면서다.

팬덤 정치의 무기는 소통과 참여다. 이를 잘 활용하면 '플랫폼 정당'으로 제도화할 수 있다. 하지만 팬덤 정치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민주당 내부에서 '문파'로 대표되는 극성 지지층의 눈치를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금 전 의원은 민주당 극성 지지층의 비판을 가장 많이 받았던 의원이다. 당론과 다른 행보를 보여왔던 금 전 의원은 공천에서 탈락하고 당의 징계까지 받았다. 강성 당원들의 비판에 직면했던 금 전 의원은 결국 당을 떠났다.

그는 탈당계를 내면서 "다른 무엇보다 편 가르기로 국민들을 대립시키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범법자, 친일파로 몰아붙이며 윽박지르는 오만한 태도가 가장 큰 문제"라며 "건강한 비판이나 자기반성은 '내부 총질'로 몰리고 입을 막기 위한 문자폭탄과 악플의 좌표가 찍힌다"고 비판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정치의 역할은 갈등을 조정하고 조율하는 것인데, 강성 지지층들만 남게 되면서 정치의 본래 기능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며 "팬덤 정치도 점차 정치를 극단적, 적대적으로 만들면서 갈등 조정기능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강성 지지층에 의한 행태는 과잉 민주주의다. 원칙적으로 정당이 중심이 돼 정책의 의제를 만들고 개혁의 방향성을 만들어야 한다"며 "민주주의를 다수결이나 목소리 큰 사람의 것으로만 생각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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