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 5개월…'일했다'는 與, '독재'라는 野, 한숨짓는 '민생'

[the300][대한민국 4.0 II] 진보의 위기-보수의 자격【3】-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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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 개원 5개월만에 ‘일하는 국회’가 위기를 맞고 있다. 170여석의 압도적 다수로 쟁점 법안까지 신속 처리했던 더불어민주당은 ‘책임 정치’의 성과를 애타게 기다린다. 속수무책이던 국민의힘은 전열을 가다듬고 쟁정 이슈로 반격에 나선다.

‘의정활동의 꽃’이 돼야 할 국정감사장에도 정쟁이 번지면서 ‘일하는 국회’를 위태롭게 한다. 의회주의를 망각한 여야가 진영논리에 따라 피감기관장들 편에 서며 스스로 국감을 희화화한다는 쓴소리가 나온다.



21대 초반 '입법 결실' 법안 197건…4년전엔 '0건'



1일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21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시작된 올해 5월 30일부터 10월 30일(오후 4시 기준)까지 법안 접수 건수는 모두 4636건으로 이 중 254건(처리율 5.48%)이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처리된 법안 254건 중 197건은 △원안 가결(53건) △수정가결(38건) △대안반영(106건) 되는 등 실제 입법으로 이어진 법안이 전체 77.6%를 차지했다. 남은 57건은 △폐기(23건) △철회(34건) 된 것들로 빠른 논의로 일찌감치 결론이 났다.

20대 국회 초반과 대조적이다. 2016년 5월 30일부터 10월 30일까지 접수된 법안 건수는 2928건으로 21대 초반 대비 63.2%에 그쳤다.

같은 기간 처리된 법안은 35건으로 전체 접수된 법안의 1.2%에 그쳤다. 법안 처리율 기준으로 21대 국회 초반(5.48%)과 비교해 5분의 1 수준이었다. 모두 철회된 것으로 법률에 반영된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정부 입법안의 처리 성과도 주목된다. 21대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법안 222건 중 17건을 의결했다. 코로나19(COVID-19) 대응과 감염병 관리체계 강화를 위해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빠르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정부 입법안이 의원 입법과 비교해 대체로 여야의 ‘현미경 심사’를 받으며 처리가 더딘 것과 대조적이다. 

21대 국회가 ‘양적으로’ 일했다고 평가받는 대목이다. 민주당의 ‘170여석’이 빠른 법안 처리를 주도했다. 비쟁점 사안임에도 여야 기싸움으로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던 관행은 통용되지 않았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지난 5월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회동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스1



'질 높은' 논의 사라져…與 '부동산 입법' 강행, 野 '퇴장' 응수



법과 제도의 완성도를 높이는 질 높은 논의가 실종됐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속도감 있는 법안 처리의 그림자다. 부동산 입법이 대표적이다. 

국회는 지난 7월 30일과 8월 4일 본회의에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임대차 3법’(주택임대차보호법·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부동산거래신고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세입자에게 한번의 ‘계약갱신청구권’을 부여해 기존 2년 계약이 끝나면 추가로 2년 계약 연장을 보장받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또 주택 임대료 상승폭을 기존 임대료의 5% 이내로 하는 ‘전월세상한제’와 주요 계약 사항을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하는 ‘전월세신고제’도 포함됐다.

상임위 논의 때부터 예고된 일이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지난 7월29일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를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의결하는 과정에서 고성이 터져나왔다. 윤호중 법사위원장이 해당 법안을 상정한 후 찬반 토론을 진행하려고 하자 통합당 의원들은 위원장석으로 다가가 ”독재적 행태“, ”왜 우리가 들러리를 서야 하나“라며 강력 항의했다.

윤 위원장은 “반대 토론에 임하고 나서 표결하지 말자고 주장하시라”고 맞섰다. 결국 야당 의원들이 회의장을 떠난 후 법안은 의결됐다. 부동산거래신고법 역시 담당 상임위인 국토교통위원회에서 통합당 의원들이 집단 퇴장한 가운데 처리됐다.

김도읍 미래통합당 간사가 지난 7월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윤호중 국회 법사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



다시 '정쟁' 속으로…싸우는 여야에 피감기관장들 '미소'



여당의 수적 우위에 밀리던 야당은 절치부심하고 반격에 나섰다. 지난 9월 2일 국민의힘으로 간판을 바꾼 후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의혹을 제기하며 총공세에 돌입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추 장관 엄호에 총력을 기울였다. ‘제2의 조국 사태’를 방불케 했던 한 달이 지나고 여야 정쟁은 뚜렷한 성과 없이 막을 내렸다.

정쟁은 국정감사로 이어졌다. 이번에도 법사위였다. 정책 질의는 실종됐고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관계를 규정하는 질의가 메인뉴스를 장식했다. 윤 총장은 이달 22일 국감에서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했고 추 장관은 같은달 26일 “상급자와 하급자”라고 맞서며 이슈를 빨아들였다.

국민 눈높이로 정부 등을 감시·비판해야 하는 국회가 민생과 동떨어진 질의로 스스로 희화화한다는 뼈아픈 지적이 나왔다. 추 장관과 윤 총장은 피감기관장 신분으로 국회에 출석하고도 누구보다 꼿꼿하고 격양된 목소리로 국민이 선출한 권력들을 압박했다.

‘라임·옵티머스 사태’도 이번 국감의 화두였다. 야당은 이 사건을 ‘권력형 게이트’로 규정했다. 여당은 ‘정치공세’로 응수했다. 정무위원회 등 관련 상임위에서 라임·옵티머스는 정쟁의 단골 손님이었으나 여야 모두 ‘한 방’은 없었다.

자성의 목소리는 없었다. 정기국회 남은 일정 역시 정쟁에 노출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예상이 빗나가기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국민의힘은 한치 오차도 없이 이번 국감에서 시종일관 정쟁에 골몰했다”고 말했고,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정권에 불리한 것은 무조건 채택을 거부했다. 방탄국감이고 정권옹호 국감이 됐다”고 맞섰다.

추미애(왼쪽부터)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회동을 앞두고 지난 1월7일 오후 경기 과천시 법무부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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