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60'인데 대역전 가능?…美 지지에 유명희 실낱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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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명원 기자 =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사진=산업통상자원부 제공) 2020.08.29. photo@newsis.com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WTO(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 선출 구도는 전설적인 야구선수 요기 베라의 이 명언처럼 흘러가고 있다.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세계은행 전무에 크게 뒤지고 있지만, 실낱같은 막판 역전 가능성이 존재한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유 본부장이 선출되려면 '엄청난 수준'의 반전이 있어야 한다. 유 본부장에 대한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이 마지막 변수다.


100대 60..예상외 큰 격차


28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소집된 WTO 회원국 대사급 회의에서, 데이비드 워커(뉴질랜드 대사) WTO 일반이사회 의장은 "신임 사무총장 선호도 조사에서 오콘조이웨알라 전무가 유 본부장 보다 더 많은 득표를 했다"고 발표했다.

오콘조이웨알라 전무는 100표 이상의 지지를 얻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BBC는 오콘조이웨알라 후보가 총 163개국 중 104국의 지지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유 본부장은 약 60개국으로부터 '선호한다'는 답을 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우리 정부가 '경합 열세'를 예상해온 것에 비해 차이가 크다.

일단 WTO 사무총장 선출은 단순 투표로 정해지는 방식이 아니다. 각국의 선호도를 바탕으로 WTO 회원국들이 한 명의 후보를 정하는 컨센서스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한 명의 후보가 자진사퇴를 하며 단수후보가 남게 된다. 그리고 '만장일치' 형식으로 사무총장을 뽑는다.

워커 의장은 오콘조이웨알라 전무에게 WTO를 이끌 것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 본부장에 대한 사실상의 자진사퇴 권유다.

하지만 외교부와 산업부는 "워커 의장은 향후 전체 회원국의 컨센서스 도출 과정을 거쳐 합의한 후보를 11월9일 개최되는 특별 일반이사회에서 차기 WTO 사무총장으로 추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유 본부장이 선호도 조사에서 밀렸지만, 당장 사퇴할 것이라고 언급하지 않았다. 컨센서스 과정까지 지켜보겠다는 취지다.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유 본부장이 마지막까지 희망을 거는 것은 미국의 지지다. 미국의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이번 WTO 사무총장 선출 과정에서 유 본부장에 대한 지원을 해왔다. 국제무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미국이 강력하게 유 본부장을 밀어주는 모양새다.
(AFP=뉴스1) 이동원 기자 =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응고지 오콘조-이웰라(오른쪽) 후보. ⓒ AFP=뉴스1
미국은 이번 선호도 조사 직후 아예 "오콘조이웨알라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공식성명을 내고 "미국은 유 본부장을 차기 WTO 사무총장으로 선출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EU(유럽연합)와 일본이 오콘조이웨알라 전무를 택한 가운데, 중국 역시 유 본부장에 우호적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국은 자신들이 주도하는 WTO 환경을 위해 유 본부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측은 WTO와 관련해 Δ25년간 다자간 관세 협상이 이뤄지지 않았고 Δ분쟁조절 기능도 통제불능이 됐고 Δ기본적인 투명성 의무를 지키는 회원국도 너무 적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유 본부장은 25년간 성공적인 무역 협상가이자 무역 정책 입안자로 두각을 나타낸 진정한 무역 전문가"라며 "WTO는 중대한 개혁이 절실히 필요하다. 실제 현장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사람이 이끌어야 하는 조직"이라고 주장했다.


대역전극 가능한가


컨센서스 과정에서 미국이 앞장서서 설득에 나설 경우 대역전극이 가능할까. '100대 60'이라는 구도로 볼 때 대단히 어려운 과정이 예상된다. WTO 측도 최종 합의까지 "정신없는,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 WTO 사무총장 선출 시한은 다음달 7일 까지다.

다음달 초 중에 역전이 어렵다는 판단이 설 경우 유 본부장이 후보직에서 사퇴하면서 자연스럽게 오콘조이웨알라 전무가 단수후보로 남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미국이 우리 측을 지원하고 있다지만, WTO 사무총장을 놓고 대립 분위기가 과열되는 것도 한국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이미 미국이 WTO를 흔드는 게 아니냐는 불만도 나오는 중이다.
[내슈빌=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미 테네시주 내슈빌의 벨몬트대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와 미 대선 최종 토론을 하고 있다. 2020.10.23.
미국과 손잡고 분위기 반전을 이끌어 낼 경우, WTO 사무총장의 임기를 유 본부장과 오콘조이웨알라 전무가 절반씩 나눠서 수행하는 쪽으로 결론이 날 수도 있다. 다만 11월3일로 예정된 대선 이후에도 미국이 같은 기조를 유지할 지 여부가 관건이다.

유 본부장의 WTO 사무총장 등극이 좌절되더라도, '졌지만 잘 싸웠다'에 가깝다는 평가다. 애초에 국제적 인지도가 부족했던 유 본부장이 '파이널 5'를 거쳐 결선까지 진출할 것이라 예상했던 이가 적었기 때문이다. 유 본부장이 최종 라운드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것도 한국 외교의 높아진 위상 덕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한 달 동안 14개국 정상과 통화를 하며 유 본부장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50여개국 외교장관과 통화했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28일 오전에도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 전화통화를 하며 WTO 사무총장 선출과 관련한 지원 협의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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