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135조' 우본,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2년째 '준비만'

[the300]

우정사업본부가 우체국금융의 우체국보험기금 운용에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 지침)를 도입하겠다고 공언한 지 2년여가 지났지만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KSC)에 도입 예정 신청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연금 등 3대 연기금이 공적 책임을 이유로 신속히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것과 대조적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단순히 주식을 보유하는 것에서 나아가 투자 대상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 주주와 기업의 이익을 추구하고 지속가능한 성장과 투명한 경영을 이끌어낸다는 취지의 제도다. 특히 우본과 같이 공적 연금을 운용하는 기관투자자의 경우 일반 기관투자자가 받는 각종 규제가 완화·면제 돼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필요성이 더욱 강조돼왔다.

국내 4대 연기금인 국민연금기금, 공무원연금기금, 사학연금기금, 우체국보험기금 중 우체국보험기금만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혹은 도입 예정 기관에서 빠져있다/사진=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우본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우본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필요성을 강조한 용역 결과가 나온 지 2년여가 지난 현재까지도 세부실행방안 및 관련 내부지침개정안을 마련 중에 있으며 KSC에 '참여 예정 기관'으로 신청하지도 않았다.

우본은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직후인 2018년 8월, 도입 필요성 관련 연구 용역을 맡겼다. 같은 해 12월 우본이 제출 받은 보고서에는 "우체국금융은 보편적 금융서비스 제공을 통해 서민경제를 지원하는 등 공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예금자 보호 및 자산운용 등 관련 각종 규제가 완화·면제 되는 만큼 예금·보험 자산을 유지·증진하여 예금자·보험계약자의 이익을 보호하며 납세자의 잠재적인 부담을 억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수탁자로서의 책임이 있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22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우본은 '도입 준비 중'이다. 국민연금기금, 공무원연금기금, 사학연금기금 등 3대 연기금이 용역 보고 후 도입까지 평균 4개월이 걸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사학연금은 용역 보고 후 1개월만에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절차를 마무리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국내 4대 연기금 중 하나로 135조원 규모 자산을 운용하는 우본이 사실상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우본은 KSC에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 예정 기관 신청을 하지 않았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고자 하는 기관투자자들은 통상 도입 전 KSC에 참여 예정 기관 신청을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기관의 자산 운용 방향성·전략 등을 전향적으로 바꾸기 때문에 투자자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어서다.

/사진=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최근 금융권 흐름을 보면 공적 연금을 운용하는 3대 연기금 뿐 아니라 자산운용사, PEF(사모펀드)운용사, 증권사 등 일반 기관투자자들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는 추세다. 올해 9월 기준 메리츠자산운용, 삼성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 하나금융투자, KB증권 등을 포함해 총 130개 기관투자자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참여 예정 신청을 해둔 기관투자자는 총 35개다.

해외의 경우 도입 흐름은 더욱 빠르다. 해외 주요 연기금 상당수가 지난 2017년 전후로 이미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상태다. △영국통신연금(BTPS)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기금(CalPERS) △미국 캘리포니아 교직원연금(CalSTRS) △캐나다연기금운용회사(CPPIB) △일본 공적연금펀드(GPIF) 등 20여개국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특히 일본 우정그룹 우체국보험 역시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하고 있다.

유럽, 북미 등 국가에서 도입 흐름이 빠른 이유는 스튜어드십 코드 자체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된 탓이다. 당시 각국은 기관투자자가 투자 기업 이사회와 경영진을 견제하지 못했다는 점을 금융위기를 초래한 원인 중 하나로 꼽으면서 국제 금융시장에서 책임투자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최근에는 ESG 책임투자(환경, 사회 및 지배구조를 고려한 투자)가 투자 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는 기관투자자가 늘고 있다.

실효성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스튜어드십 코드가 전 세계 금융권의 추세로 자리잡은 요인이다. 영국 투자협회(IA)가 2015년 영국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관투자자의 적극적인 주주활동이 회사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됐다는 응답이 91%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기관투자자의 적극적 주주활동이 기업경영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는 스튜어드십 코드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존재했다.

다만 국내에서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재계는 기관투자자들의 기업 압박이 거세진다며 '경영 간섭' 우려를 지속적으로 표하고 있다. 또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기금 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국민연금이 사실상 정부 지배 하에 있다는 점에서 '관치'와 '연금 사회주의' 논란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지우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는 이날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통화에서 "전 세계 자본주의 국가 대부분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는 추세"라며 "기업은 지배구조 개선 관련 우려를 표하겠지만 사실 지배구조 건전성 등의 조사를 봐도 한국은 중국이나 인도보다 낮은 수준에 있다"고 했다. 이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야 한다. 특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통해 ESG 책임투자를 확산해야 기업의 장기적 지속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조정식 의원은 "우정사업본부가 우체국금융에 대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놓고도 2년이 지난 지금까지 뒷짐만 지고 있다"면서 "전 세계 자본주의 국가 대부분이 건강한 자본주의 만들기의 일환으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도입하고 있는 만큼 공적 역할을 담당하는 우본 역시 조속히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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