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혈세 35조, 번갯불에 콩볶듯 하나…추경의 비극

[the300]

(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여야 의원들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9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 산회 후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2020.6.8/뉴스1

사상 최대인 35조원의 제3차 추경(추가경정예산안)이 결국 졸속처리를 면키 어렵게 됐다.

원 구성을 놓고 여야가 극한 대립을 이어간 탓에 국민 혈세가 들어가는 천문학적 규모의 '슈퍼 추경'이 고작 사나흘의 심사밖에 받지 못할 처지다.

형식적 절차만 거치는 셈으로 이럴 거면 국회가 왜 존재하느냐는 지적마저 나온다.



민주당 "더 기다리지 않는다" vs 통합당 "대통령 한마디에 도장 팍팍 찍나"



28일 정치권에 따르면 주말 사이 더불어민주당은 6월 임시국회 회기(7월4일) 내에 3차 추경을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미래통합당과 원 구성 협상을 타결짓는 것과 별개로 29일에는 본회의를 열어 예결위(예산결산특별위원회)을 비롯해 추경 처리에 필요한 나머지 상임위 구성을 완료하겠다는 계획이다.

강훈식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7일에도 서면 브리핑에서 "3차 추경은 코로나19 국난 극복과 우리나라 경제 회복의 동력"이라며 "민주당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겠다"고 밝혔다. 내달 3일(4일은 주말)까지 추경안을 처리하겠다는 얘기다.

기획재정부는 이달 4일 국회에 3차 추경안을 제출했다. 초유의 코로나 사태에 긴급성이 중요한 시점이지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를 놓고 여야가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면서 제21대 국회는 공전을 거듭했고 그 결과 24일간 추경 심사를 시작조차 못했다.

여당의 강행 처리 방침에 맞서 통합당은 35조원의 추경을 처리하는데 제대로 된 설명조차 듣지 못했다며 문재인 정권이 졸속처리를 사실상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28일 페이스북에 "‘7월3일까지 3차 추경을 처리하라’ 입법부에 내린 대통령의 행정명령"이라며 "우리 국회가 대통령 한마디에 도장 팍팍 찍는 통법부인가, 우리 국회가 유신 국회로 돌아갔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여당의 기세대로라면 35조원의 예산이 예결위도 구성 안된 국회에서 닷새만에 통과된다"며 "제1야당 원내대표인 저는 오늘까지 행정부로부터 3차 추경에 대해 한번도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 경제부총리 얼굴을 아직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실에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와 회동하고 있다. 2020.6.26/뉴스1



29일 상임위 구성 완료해도, '번갯불에 콩볶듯' 처리해야



29일 본회의에서 상임위 구성이 완료된다고 해도 7월 3일까지는 시간이 지나치게 촉박하다. 국회의장이 예비심사 기한을 하루 정도로 정할 경우 정부 각 부처를 담당하는 소관 상임위에서의 예비심사는 사실상 생략해야 한다.

예결위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을 상대로 즉각 종합정책질의를 열고 각 상임위에서 예비심사안이 넘어오면 7월 1~2일 예산안조정소위원회를 열어 세부심사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많은 항목을 제대로 심사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예결위에서 세부심사를 마치면 본회의가 열릴 3일 기획재정부의 '시트작업’(예산명세서 작성)을 거쳐 추경안은 최종 처리될 전망이다. 

국회가 추경안을 제대로 심사하지 못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이미 국회 예산정책처(예정처)는 최근 보고서에서 3차 추경안에 문제점을 지적했다. 

예정처는 정부의 일자리 사업에서 중복성을 지적했고 추경 핵심 사업인 한국판 뉴딜 사업에서 계획이 미흡해 효과를 담보하기 어려운 사업이 상당수 편성됐다고 평가했다. 

예정처는 "대규모 국채 발행을 통해 편성된 추경 사업들이 의도하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심도 있는 국회 심의를 통해 면밀히 검토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일련의 심사 과정에 통합당 의원들이 참여할지도 변수다. 참여하지 않는다면 여당 의원들끼리 일사천리로 진행하겠지만 통합당 의원들이 예결위 등에 들어가 항목의 적절성 등을 따지기 시작하면 신속한 합의처리는 어렵다.

이 경우 여당은 표결로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 합의처리가 원칙인 상임위에서 추경안이 일제히 표결로 처리돼 본회의까지 올라가 통과된다면 민주당으로서 정치적 부담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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