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훼방꾼 볼턴 & 아베

[the300]

회고록은 분명 사실을 토대로 한다. 다만 지극히 '주관적' 사실로 채워진다. 왜곡·과장·축소가 적잖다.

‘사실’에 MSG(화학조미료)를 많이 친 결과물이다. ‘객관적’ 사실의 나열이라면 회고록이 아닌 일지나 보고서면 충분하다.

거품을 걷고 양념을 빼면 작은 사실이 드러난다. 행간엔 오히려 감추고 싶었던 사실이 묻어있다.

최근 화제가 된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이 그렇다. 매파의 관점에서 정리된 주장을 두고 논란이 불거지고 정치적 공방까지 오가지만 거품을 제거하면 본질과 마주한다.

볼턴의 ‘대북관’은 확고하다. 북한이 ‘무조건’ ‘먼저’ 비핵화를 하라는 입장이다. ‘리비아 모델’로 압박한다. 대화·협상 등은 사치다.

볼턴은 회고록에서 당당히 고백한다. 자신이 ‘방해꾼’ ‘훼방꾼’이었다고. 한반도 정책 관련 그의 글은 “온갖 방해를 다했다”로 정리된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이전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트위터에 올리도록 건의했다” “(김정은이) 폼페이오를 만날 때까지 당신(트럼프)과 만날 자격이 없다” 등은 작은 예다.

‘하노이 노딜’ 관련 볼턴의 방해 노력은 눈부시다. 하노이로 가는 도중, 펜스 부통령·멀베이니 비서실장 대행, 밀러 정책보좌관에게 연락해 합의문을 채택하지 못하도록 사전작업을 펼쳤다.

혹 충동적인 트럼프가 예기치 못한 양보를 할까 걱정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레이캬비크 회담에서 회담장을 박차고 나오는 영상까지 보여줬다. 트럼프의 충동적 결단을 막는 한편 강한 리더의 결단을 심어주기 위한 노력이었다.

훼방꾼은 또 있다. 볼턴은 “일본도 내 생각과 같다”며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강제 '커밍아웃'시킨다. 일본의 훼방도 가히 눈물겹다.

아베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한반도 평화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2018년 4월 18일 열린 마라라고 미일 정상회담 때 아베는 북한 문제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한다. 강경 대응 기조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목전에 둔 5월28일 미일 정상 통화에서도 같은 얘기를 반복한다. 비핵화 관련 볼턴과 같은 입장을 전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견해와 반대되는 내용이었다.

아베는 특히 철저히 이중 플레이를 펼쳤다. 한국에는 비핵화, 남북·북미 회담 관련 특별한 반대 입장을 전하지 않았다. 트럼프 등에게 쏟아낸 강경 입장은 숨겼다.

대신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부탁했다. 아베의 숙원이다. “김정은을 믿지 않는다”고 한 아베였지만 일본인 납치 문제 관해선 김정은의 결단을 바랬다.

볼턴은 “트럼프가 김정은과 회담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를 줄기차게 제기했다”고 썼는데 아베는 문 대통령에게도 끊임없이 도와달라고 했다.

실제 문 대통령은 아베의 부탁을 들어줬다. 여권 고위 인사는 “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일본인 납치 문제를 자세히 얘기했다. 아베의 설명도 전했다”고 말했다. 이에대한 아베의 보은(報恩)은 수출 규제 조치였다.

방해와 훼방 사이엔 문 대통령의 인내와 끈기가 놓인다. 2017년 화염과 분노의 시기를 2018년 평화 프로세스로 반전시킨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를 설득하고 회담을 성사시킨다. 싱가포르 회담 직전 한미정상회담이 없었다면 볼턴의 방해는 성공했을 것이다.

하노이 노딜 후 4·11 한미정상회담에서 중재를 시도해 낳은 열매가 북미 판문점 회동이다. 훼방꾼의 눈에는 평화를 만들려는 모든 노력이 외교적 춤판(diplomatic fandango)으로 보였겠지만 평화주의자에겐 생존의 몸부림이 만든 창조품(creation)이었다.

공교롭게도 방해 공작이 좌절한 지점엔 신뢰가 존재했다. 볼턴은 문재인·트럼프·김정은 3명의 정상간 신의가 꺼진 불씨를 살리곤 했다는 사실을 의도치 않게 홍보한다.

볼턴 회고록을 세줄 요약하면 이렇다. “나는 온갖 방해를 다 했다. 일본도 같이 방해했다. 트럼프·문재인·김정은은 꾸준히 하더라”.

결과적으로 ‘네오콘’의 상징인 볼튼과 일본 극우주의의 상징 아베가 최강 빌런이자 훼방꾼이었다는 게 볼턴 회고록에서 얻은 성과다.

평화를 바라는 이와 평화를 원치 않는 이도 확인된다. 훼방꾼의 회고에 휘둘려 정쟁할 때가 아니다. 훼방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방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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