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여정의 경고, 김정은이 미뤘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전날(7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3차 정치국 회의를 주재했다고 8일 밝혔다. 정치국 회의에는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후보위원이 참가하였고 내각부총리와 일부 도 당위원장, 위원회, 성 책임일꾼들이 방청으로 참가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북한이 24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주재 노동당 중앙군사위 예비회의 보도를 통해 대남 군사행동 계획을 보류했다고 밝히며 최근 불 붙였던 대남공세의 ‘감속’을 시사했다.

북측이 애초에 긴장을 격화시키다 '김정은의 보류'로 속도조절에 나서겠다는 시나리오를 짜고 이를 단행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전략적으로 북한이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다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김정은 전격 등장…軍 행동 보류

지금까지 대남적대 정책 과정에서 나서지 않던 김 위원장이 보류 주체로 등장, 대남공세를 주도해 온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의 역할분담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최근 북한의 대남공세는 김여정의 '입'에서 시작해 그의 지휘 아래 이뤄졌다. 지난 4일 김여정 담화가 대북전단(삐라)을 빌미로 연락사무소 폐기 등을 경고한 게 시작이었다. 5일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에선 김여정이 '대남사업 총괄자‘임이 공식화됐다.

16일 북한 당국은 김여정의 경고대로 연락사무소를 폭파했고 17일엔 김여정 명의 담화로 문재인 대통령의 6.15 20주년 기념 발언을 수위 높게 비난했다. 김여정이 "다음번 대적행동의 행사권은 군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고 한 후엔 총참모부가 17일 개성공단 군대 전개 등 이른바 4대 군사행동을 예고했다.

이 과정에 김 위원장이 전혀 등장하지 않아 그 배경에도 관심이 쏠려 왔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등장하지 않는 게 상황을 역전시킬 여지를 남겨두기 위한 것이라 분석했다. 김 위원장의 위임을 받은 김여정이 '악역'을 담당하는 방식으로 김정은 남매가 이른바 ‘굿캅 배드캅’ 역할을 맡았다는 것.

실제 북한은 지난 3월 3일 김여정 명의 담화에서 청와대를 비난한 뒤, 하루 뒤인 4일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코로나19 극복을 기원하는 내용의 친서를 보내는 모습을 연출한 전례가 있다.

이날 김 위원장이 대남 군사행동 보류의 주체로 등장하면서 이 같은 분석에도 힘이 실리게 됐다. 북한이 상황을 격화시킨 뒤 김 위원장의 ‘보류’로 속도조절에 나서는 일련의 시나리오를 애초부터 계획해 이를 이행했을 수도 있다.

이상신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장은 "북한은 김정은의 '보류'까지 한묶음으로 계획하고 지금까지 긴장을 끌어 올렸을 수 있다"며 "남측과 미국에 자신들이 정치적 변수로 작용해야 한다는 걸 상기시키기 위한 조치였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스1) = 합동참모본부는 3일 오전 7시41분경 북측에서 중부전선 아군 GP(감시초소)로 총탄 수발이 피탄됐다고 밝혔다. 우리 군은 대응매뉴얼에 따라 현장 지휘관의 판단하에 경고방송 및 사격 2회를 실시했으며, 군의 인원 및 장비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지난해 2월 '9.19 군사합의' 이행에 따라 시범철수된 강원도 고성의 GP. (뉴스1 DB) 2020.5.3/뉴스1

남북간 군사력 비대칭…북한, 명백한 도발은 어려워

북한이 김정은의 보류로 속도조절에 나선 건 예고한 행동을 실제로 이행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남북간 군사력이 비대칭한 상황에서 북한이 남측의 군사적 행동을 불러올 수 있는 ‘명백한 도발’은 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얘기다.

북한은 지난 17일 인민군 총참모부 발표로 △금강산관광지구·개성공업지구에 연대급 부대·화력구분대 배치 △9.19 군사합의로 철수한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GP) 재진출 △전방지역 근무체계 격상 및 접경지역 부근 군사훈련 재개△북한 주민들의 대남삐라살포 시 군사적 보장을 예고했다.

이후 북한은 대남삐라 살포 준비 과정을 매일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이 삐라를 ‘남조선의 깊은 종심’까지 보내겠다고 해 서울까지 살포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그러나 서울에 삐라를 살포하려면 드론 등이 필요한데 드론을 띄울 경우 우리 군의 사격이 불가피하다. 전직 국방부 관계자는 "남북간 군사력 차이 때문에 북한도 우리 군의 대응을 불러오는 명백한 도발은 하기 어렵다"고 봤다.

북한은 오는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및 오는 11월 미 대선 까지 대외적으로 긴장 국면을 이어갈 것으로 보이는데, 이 기간 쓸 수 있는 실질적인 카드가 제한적이란 점도 속도조절의 이유로 꼽힌다.

예컨대 폭파한 GP를 다시 만드는 등의 조치는 물자가 투입되는데 이는 북측에도 부담이다. 대북제재 속에서 제한된 자원을 최대한 집약해 농업과 평양종합병원건설 등에 투자하고 있는 북한이다. 빠듯한 자원을 대남 군사 경계에 투입하는 건 북한으로서도 꺼리는 조치일 수 있다.

(강화=뉴스1) 박지혜 기자 = 23일 오전 인천광역시 강화군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도 봉화산에서 북한 군인들이 대남 확성기를 방수포로 보이는 덮개로 가린 뒤 하산하고 있다. 통일부는 이날 북한의 대남삐라 살포와 대남확성기 방송 재개 움직임을 '비생산적인 적대행위'로 규정하며 속히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2020.6.23/뉴스1

중단 아닌 '보류' …다시 긴장 끌어올릴 여지 남겨둬

북한이 중단 대신 '보류'를 썼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대외적으로도 상황에 따라 긴장을 다시 끌어 올릴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 보인다.

북한 매체들은 군사위가 제7기 5차회의 본회의 상정할 주요 군사정책 토의안들을 심의하고, 전쟁억제력을 더 강화하기 위한 국가적 대책들을 반영한 여러 문건들을 연구했다고 전했다. 앞으로 개최될 군사위에서 이를 더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총참모부가 제기한 대남 군사행동 계획들은 보류됐지만 나머지 안건들은 통과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며 "거기에는 SLBM(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발사나 새로운 전략무기 공개, 군사력 현대화를 위한 신형무기 개발 등과 같은 안건이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북한이 국제사회 제재 강화를 불러올 수 있는 SLBM 등을 실제 카드로 꺼낼 수 있을 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SLBM을 시험발사할 경우, 지금까지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등과 달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의 명백한 위반이 될 수 있다.

SLBM이 미국에 명백한 위협이 되는 건 분명하지만, 동시에 안보리 추가 제재 키를 쥐고 있는 미국이 지금까지처럼 북한의 행동을 용인해줄 여지가 줄어든다. 이 때문에 북한이 SLBM을 공개만 하는 등 레드라인을 넘지 않는 수준의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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