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잠룡 중 한명인 원희룡 제주지사가 20대 대선을 향해 기지개를 켠다. 그동안 도정에만 몰두했다면 총선 이후부터 '기본소득' 등 다양한 이슈를 던지며 보수의 대표선수를 자임하고 나섰다.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이 총선 패배의 여파로 정치권에서 한발짝 물러나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것과 대비되는 행보다. 

중앙정치와 거리두기가 만든 '판'원 지사는 사실 보수진영 내 대표적 '소장 개혁파'로 분류되지만 한동안 도정에만 몰두하며 중앙정치와 거리를 뒀다.

원 지사는 개혁보수를 꿈꾸며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에 합류했다. 이후 바른정당이 국민의당과 통합을 논의하자 바른정당에서도 탈당해 무소속으로 남았다.

원 지사는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유한국당에서도 숱한 러브콜이 있었지만 한국당에도 복당하지 않으면서 자리를 지켰다. 그는 당시 "복당을 한다면 어떤 힘과 내용을 가지고 당을 바꿔나갈지가 있어야 한다"며 "단순히 선거를 치르기 위해 복당하는 것은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적으로 어렵다고 무조건 '합치고보자'는 통합주의는 정치공학적 움직임이 될 것이고 정치공학적 움직임으로는 다가오는 정치 폭풍우들을 헤쳐나갈 지속성과 확장성이 부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 지사는 이후 2018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제주지사 재선에 성공했다.

원 지사의 이같은 행보가 총선 이후 대권 잠룡으로서 가장 먼저 '선수'를 잡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정치적 동지이자 함께 보수잠룡으로 거론되던 남경필 전 경기지사는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국당에 복당했지만 선거에서 패배한 후 사실상 정계를 떠났다.

유승민 전 미래통합당 의원은 바른정당 창당 후 외연확장을 위해 국민의당과 합당, 바른미래당을 창당하는 실험을 감행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나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현재는 대구에 내려가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는 총선을 진두지휘하다 패배의 책임을 지고 현재 정치권을 떠나있는 상황이다.

반면 원 지사는 탄핵이후 보수진영이 여러차례 이합집산을 반복할 때 '명분'을 강조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킨 덕에 보수진영 잠룡 중에 가장 '상처'를 덜입었다.

총선 전 보수통합과정에서도 물밑에서 모종의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활동은 최대한 자제했다. 그러다보니 총선의 패배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의제설정' '자강론' 외치며 보수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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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사회안전망 4.0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원희룡 제주지사와 대화하고 있다. 2020.06.23. photocdj@newsis.com

반대로 원 지사는 중앙정치에서 오래 떠나 있다보니 당내 기반은 단단하지 못하다. 일각에서는 탄핵이후 보수의 몰락과정에서 원 지사가 거리두기를 했다는 비판을 내놓는다. 

그러나 원 지사는 현재 보수진영에서 가장 취약한 지점을 파고들며 중앙정치에서 다시 입지를 다지고있다. 

'기본소득'도 그 중 하나다. 주요 의제를 선점하면서 논의의 장을 통합당 내부로 끌어들이고 있다. 원 지사는 사회안전망4.0포럼, 제주도 산하 제주연구원과 함께 지난해말부터 기본소득에 대해 연구했다.

"대한민국은 압축성장으로 세계속의 대한민국으로 성장했지만 국민은 청년부터 노인까지 삶의 위험에 처해있고 대전환의 불확실성을 맞이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국가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때인지 답할 차례"라는 게 원 지사의 생각이다.

원 지사가 당장 기본소득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하자는 입장은 아니다. 다만 4차산업혁명 도래 등으로 인해 대량실업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기본소득을 전면적으로 도입할 것인지 부분 소득을 보장해야할지 깊이 고민해야 할 때"라며 통합당 내에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원 지사는 보수진영의 낮아진 자존감을 세우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 원 지사는 지난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에서 보수진영이 건국과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끌어온 주축세력임을 강조하며 통합당 의원들의 마음 속 자존감을 자극했다.

"진보의 아류가 돼선 영원한 2등이고 영원히 집권할 수 없다" "(보수재건은) 용병과 외국감독에 의해서는 이룰 수 없다" "대한민국이 세계속에서 위기를 정면돌파했던 보수의 유전자를 회복해서 그 이름으로 이겨내자"는 등이 이날의 주요 메시지였다. 이날 특강에는 원 지사의 강연을 듣기 위해 통합당 소속 의원 60여명이 참석했다.

소장파 의원시절 '보수를 개혁해야 한다'가 주요 메시지였다면 최근에는 보수개혁을 주장하면서도 본인을 '보수의 대표상품'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