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의 '원칙'에 던지는 '물음표'

[the300][300소정이: 소소한 정치 이야기]

서진욱 기자 | 입력 : 2020.04.01 06:17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지난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총선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홍봉진 기자.


정의당이 위기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최대 수혜자일 것이란 전망은 온데간데없다. 오히려 최대 피해자로 전락할 상황이다. 

거대 양당의 꼼수 정치라는 외적 변수뿐 아니라 정의당 내부에 산적한 문제들이 위기를 불러왔다. 총선 결과를 떠나 절실한 쇄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1대 총선을 보름 앞둔 정의당의 처지는 악화일로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비례위성정당을 띄우면서 여야 지지층 결집이 이어졌다. 더군다나 더불어시민당뿐 아니라 친문(친문재인)을 앞세운 열린민주당도 선택지로 제시됐다. 정의당 입지가 좁아졌다. 

역대 최저치를 찍은 지지율 반등은 요연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정의당 지지율은 불과 한 달 전 창당한 열린민주당의 절반 수준이다. 심상정 대표가 연일 정의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으나 효과가 없다.

정의당은 지난 총선에서 정당 득표율 7.23%를 기록, 비례대표 의원 4명을 배출했다. 지역구는 민주당, 정당은 정의당에 표를 던진 교차투표 효과가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이번 총선의 경우 거대 양당으로 유권자들이 결집하면서 지난 총선과 같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비례 의석 마지노선인 득표율 3%가 무너질 수 있다는 비관론마저 제기된다.

정의당이 처한 위기를 비례위성정당 탓으로만 돌리긴 어렵다. 정의당이 자초한 측면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원칙과 현실론 사이의 괴리와 인물난이 가장 큰 문제다.

정의당은 총선 국면에서 '원칙'을 전면에 내세웠다. '원칙을 지킵니다, 당신을 지킵니다'를 선거 슬로건으로 정했다. 거대 양당의 비례위성정당 전략에 편승하지 않고 독자 선거를 치르겠단 의지다.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하기 위한 현실론보다 정의당의 핵심 가치인 '정의'를 지키겠단 것이다.

다만 정의당의 원칙 행보는 갑작스럽다. 정의당은 불과 몇 달 전 준연동형 비례선거제 도입을 위해 각종 의혹에 휩싸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에 찬성하는 등 현실론에 근거한 전락을 펼쳤다. 

조국 사태에서 정의당의 의도된 침묵이 과연 원칙에 입각한 정의로운 결정이었을까. 친문 여론이 열린민주당으로 쏠리는 걸 보면 현실적인 선택이었는지도 의문이다.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인 장혜영 청년선대본부장(가운데)이 지난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의당 회의실에서 열린 '다시, 정의당답게 청년정의' 출범식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1.

정의당 청년 정치인들은 공개적으로 반성했지만 심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의 사과는 없었다. 심 대표는 "그 때도 지금도 우리 당원 중 특히 청년 당원들은 조국 장관에 대한 다른 의견이 많이 있고 당내 청년들의 문제의식이 반영된 것"이라며 "당내 다양한 의견이 있다는 것은 정의당의 당내 민주주의가 건강하다는 증표"라고 말했다. 청년 정치인들의 반성이 무색한 자화자찬적 사고다.

정의당의 오랜 과제인 인물난은 이번에도 해결되지 않았다. '포스트 심상정'이 될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심 대표의 존재감은 예전같지 않다. 새로운 인물로 유권자들의 이목을 사로잡기는커녕 비례 후보들의 구설수로 진땀을 뺐다.

비례 6번을 받았던 신장식 후보는 음주 및 무면허 운전 논란 끝에 사퇴했다. 비례 1번 류호정 후보의 대리게임 논란은 여전히 정의당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당의 간판이라는 상징성이 오히려 당과 후보 모두에게 악영향을 끼친다.

당과 함께 성장한 인재들의 국회 입성은 사실상 무산됐다. 비례 경선에 나섰던 강상구 전 대변인, 김종철 전 노회찬 의원 비서실장 등 정의당에 오랫 동안 몸담은 진보 정치인들은 당선권에서 한참 멀어졌다. 강 전 대변인은 정책검증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음에도 비례 20번에 그쳤다.

유권자들은 사상 초유의 선거 국면에서 정의당에 묻는다. 정의당이 그토록 강조하는 원칙이 무엇인지. 그 원칙은 앞으로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지. 원칙을 지켜나갈 인물은 과연 누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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