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N번방' 국민 목소리, 법안에 반영됐을까?





(서울=뉴스1) 황덕현 기자 2020.2.17/뉴스
'텔레그램 n번방'을 포함한 디지털 성범죄를 강력 처벌해달라는 내용의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25일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됐다. 이 청원은 지난 23일 오후 4시쯤 국회 청원사이트에 올라 동의를 받기 시작했다. 하루 만인 전날 오후 10만명이 동의해 청원이 성립됐다.

이 청원 이전에도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청원이 있었다. 당시 해당 청원은 제1호 국민동의청원이라는 이유로 관심을 받았다. 제1호 국민동의청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의 형태로 지난 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청원인이 속한 단체 ReSET은 청원 취지가 반영되지 않았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이후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검증 대상]
국회가 ‘제1호’ 청원을 법안에 반영했다

[검증 내용]
 
◇법안에는 딥페이크만 있다

해당 청원은 “여러 형태의 디지털 성범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을 취지로 한다. 따라서 청원의 내용 역시 △국제공조 수사 △경찰 디지털 성범죄 전담부서 신설 △2차 가해 방지를 포함한 경찰의 대응 매뉴얼 신설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 강화(딥페이크 등)로 법 개정부터 수사 방식의 변화까지 포괄한다. 
    
대표 청원자가 제출한 국민동의청원서
그러나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에는 특정 인물의 얼굴을 다른 영상에 합성하는 ‘딥페이크’ 처벌만 포함됐다. 청원 내용 중에서 처벌 기준 강화만 포함됐고, 디지털 성범죄 중 딥페이크만 포함된 것이다. 청원 취지가 반영됐다고 보기에도, 디지털 성범죄 전반에 대해 엄격한 처벌 기준을 마련했다고 보기에도 어렵다.
 
딥페이크 외에도 새로운 디지털 성범죄 유형은 다양하다. 딥페이크 처벌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은의 변호사는 “최근의 불법촬영물, 음란물 시청은 스트리밍으로 이뤄진다. 아동청소년 음란물 소지로 처벌을 받으려면 저장했다는 것이 입증돼야 하는데, 스트리밍은 소지했다고 보기 어렵다. 입법 공백이 많은 상태”라고 밝혔다. 

개정안이 통과되고 '텔레그램 n번방'사건이 화제가 된 이후 여러 의원들이 입법 공백을 우려하며 'n번방 방지법' 등을 제안했다. 이는 현 개정안이 여러 형태의 디지털 성범죄를 처벌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청원 내용 입법 불가능하다?
    
청원 내용이 애초에 입법 불가능했다는 의견도 있다. 국회민원지원센터는 서면 질의에서 청원 내용 중 '엄격한 양형기준 설정' 만이 입법부 소관이라 법사위에 회부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관한 내용은 행정부가 처리해야 할 내용으로 행정부에서 제도를 개선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 행정안전위원회를 관련 위원회로 지정했다고 설명했다. 청원 내용 중 대부분이 법 개정으로 달성되기 어려웠고, 국회는 행정부의 제도 개선을 위해서도 노력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제공조수사, 디지털 성범죄 전담 부서 신설은 입법의 영역이 아닌 행정 실무의 영역이다. 이영상 변호사는 “청원의 취지에는 당연히 공감하나 현행법, 조약 내에서 이미 가능한 부분이 많다. 입법이 없어도 실무적으로 가능하다”고 밝혔다. 양형기준 설정도 대법원 양형위원회 소관이다. 다만 법 개정을 통해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지난 2월 11일 청원이 회부되고 3월 5일 개정안이 통과되는 동안 어떤 상임위도 청원을 상정하거나 의견서를 제시하지 않았다. 청원 취지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보기 어렵다.

◇의원들 n번방 몰랐다

법안에 청원 취지가 반영됐다고 보기에 논의 과정 역시 부족했다. 해당 청원은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37분 동안 논의됐다. 의원들은 딥페이크 처벌 규정을 결정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청원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 '텔레그램'과 'n번방'은 각각 2회씩 언급됐다. 텔레그램의 경우 청원의 이름을 말하는 과정에서만 두 번 언급됐다. 텔레그램은 디지털 성범죄에 이용된 대표적인 애플리케이션이며, 'n번방'사건은 대표적인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다.

특히 김인겸 법원행정처처장은 "이것도 소위 'n번방 사건'이라고 하는, 저도 잘 모르는데요"라고 발언하여 디지털 성범죄에 관심이 부족함을 드러냈다. 이를 통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수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 회의록

 
◇시간이 부족해서 그랬다?
 
법사위는 20대 국회가 얼마 남지 않아 딥페이크 위주로 입법이 이뤄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송기헌 의원실은 전화 인터뷰에서 "전문위원이 안건을 만들어 우선으로 가져온 것이다. 20대 국회 거의 막바지였다. 그래서 청원에 있는 안을 다시 법안으로 만들어서 논의하기에는 법이 통과될 것 같지 않아서 딥페이크가 연관이 있으니 그거라도 통과시키자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백혜련 의원실 역시 "소위 안건에 딥페이크만 올라왔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법사위에는 딥페이크 처벌 이외에도 다양한 디지털 성범죄 처벌법이 계류 중이다. 윤소하 의원 대표 발의안에는 '촬영대상자를 괴롭히거나 협박할 목적으로 통신매체를 이용하여 음란행위를 하거나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또는 그 촬영물을 유포하는 행위에 대하여 가중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승희 의원, 진선미 의원도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해 개정안을 발의했다. '딥페이크 처벌법' 이외에도 청원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법률안은 여럿 존재했다.  

[검증 결과]
대체로 사실 아님
 
디지털 성범죄의 한 유형인 딥페이크 처벌 조항을 만든 것은 맞다. 그러나 딥페이크 처벌에만 그쳐 청원 취지를 달성했다고 보기 어렵다. 청원 내용이 입법부 소관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으나 청원 취지를 달성하기 위한 국회의 노력 역시 부족했다. 법사위 회의에서 청원 내용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으며, 시간이 부족했다는 설명 역시 설득력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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