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시]나이 많으면 당선…아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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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종덕 기자 = 지난해 11월20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에 유니세프 로고와 파란색 조명이 켜졌다. 2019.11.20/뉴스1

"아마 기네스북에 오르는 것이 아닌가"

김형오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이 혀를 내둘렀다. 주말인 7일 오후 서울 서초구을 경선 결과를 발표하면서다. 경선 후보인 박성중 의원과 강석훈 전 의원이 동점이었다. 소수점 첫째 자리까지 똑같아 국회의장까지 지낸 김 위원장도 놀라게 만들었다.

난데없는 동점 소동은 잊고 있던 법 규정을 소환했다. 박성중 의원이 공직선거법상 '연장자 승리' 규정을 내밀었다. 공직선거법에는 지역구 국회의원과 지방의회 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의 당선인을 결정할 때 최고 득표자가 2인 이상(동점자 발생)이면 '연장자'를 당선인으로 하도록 돼 있다.

공관위는 당내 공천 문제인 만큼 선거법을 준용하지 않고 재경선을 결정했다. 통합당 당헌·당규에는 경선에서 동점자 관련 규정이 없다.

연장자 논란은 짤막한 해프닝으로 일단락됐지만 뒷맛이 남는다. 동점이라는 극히 이례적인 경우를 가정해 만들어놨다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유권자의 선택을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상징적이다.

농경사회와 유교질서에서 비롯된 노인 공경과 장유유서 문화일 테다. 하지만 선거철만 되면 '미래' '청년' '세대교체'를 부르짖는 정치판과 너무 이질적이다.

찾아보면 연장자 규정은 곳곳에 있다. 국회법에 따르면 의장 직무대행을 정할 때(제18조), 윤리심사자문위원회 위원장 직무대행을 정할 때(제46조의2), 특별위원회 위원장 직무대행을 정할 때(제47조), 국회에서 실시하는 각종 선거의 득표수가 같을 때(제112조) 등에 연장자가 우대를 받는다.

진보세력과 젊은 정당을 자처하는 더불어민주당이 더하다는 점도 새삼 놀랍다. 민주당 당헌·당규를 보면 지역구 후보자를 결정할 때 경선 결과 동점이 나오면 여성과 연장자순으로 결정하게 돼 있다. 박성중, 강석훈 후보자가 민주당 소속이었으면 나이가 더 많은 박성중 의원이 후보자가 된다는 얘기다.

원내대표, 전국위원장 등 각종 당직을 선출할 때도 동점이 계속되면 연장자 규정이 적용된다. 상임위원장을 배분할 때도 관례상 선수와 함께 나이를 적용해왔다.

통합당은 당헌·당규에 당직이나 공직후보자 추천에서는 연장자 규정이 따로 없지만 국회의장과 부의장, 상임위원장 등을 선출할 때는 득표수와 선수 등 다른 조건이 같을 때 연장자 조건이 명시돼 있다.

21대 총선이 코앞이다. 16대~17대 총선 이후로 청년 세대의 정치권 진입이 크게 위축됐다는 지적이 계속된다. 비록 상징적이지만 21대 국회에서는 연장자 규정을 없애보는 게 어떨까.

대한민국 정계 전통을 부인하는 일도 아니다. 현재 공직선거법은 대통령선거법·국회의원선거법·지방의회의원선거법·지방자치단체의장선거법 등 흩어져 있던 법들을 모아 1994년 만들어졌다.

그 이전에 있던 국회의원 선거법은 1948년부터 시행됐다. 당시 규정에는 득표수가 같으면 공개석상에서 '추첨'으로 당선인을 결정하라고 돼 있다. 연장자 조건은 없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27살 나이로 거제에서 국회의원이 된 게 1954년이다. 지금 지역구 의원 중에 40대 이하는 단 한 명도 없다. 70년 전보다 우리 정치는 오히려 더 올드(old)해지지 않았는지.

2020년 초유의 경선 동점자 해프닝에서 지나치게 뻗어 나간 상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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