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과거의 시간

[the300]

“비상경제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떤 제한도 두지 말고 예상을 뛰어넘는 정책적 상상력을 발휘해 주길 바란다”(2월18일 국무회의)

“규정에 얽매이지 말고 전례없는 강력한 대응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2월 23일 코로나19 범정부대책회의)

“비상한 경제시국에 대한 처방도 특단으로 내야 한다. 정책적 상상력에 어떤 제한도 두지 말고 과감하게 결단하고 신속하고 추진해야 한다”.(2월 2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문재인 대통령의 일관된 주문이다. 이후 한달 남짓 기간 동안 회의 때면 대통령의 ‘질책’ ‘질타’가 이어진다. 답안지가 만족스럽지 못한 탓이다.

받아든 결과물이 극도로 관성적이다. 위기일수록 창의적·적극적 행정이 필요한 데 현실은 반대다.

하루가 멀다하고 ‘마스크 수급 대책’을 내놓지만 창의적인 게 없다. 재정을 담당하는 경제부총리가 ‘마스크 사령탑’인데 돈으로 해결할 생각은 전혀 없다.

‘판매·유통 체계’에만 갇혀 파격을 고민하지 못한다. 우체국·농협에 이어 이젠 약국이다. ‘총알 배송·새벽 배송’에 익숙한 환경인데 기어코 신분증을 챙겨서 줄서란다.

'코로나 19' 추가경정예산안도 지극히 ‘전형적’이다. 문 대통령이 강조한 ‘상상력’은 없다. ‘전례없는’ 대응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복붙(복사·붙이기)’ 추경이란 비판이 나온다. 음압병실·전문병원 확충, 의료기관 보조·융자, 소상공인·중소기업 경영자금 지원 등은 2015년 메르스 추경 때 그대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비상시국에 맞는 특단의 대책인지 의문이다.

야심작이라고 꺼낸 든 ‘소비 쿠폰’도 대상이 극히 제한적이다. 대한민국이 ‘비상 상황’이라는 데 국가 돈은 제한적인 곳, 먼 미래에 쓰인다. 하반기 추경 불용액 집행 독려를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정부 대책 중 상상력이 발휘됐거나 규정에 얽매이지 않는, 전례없는 정책이 과연 있었던가.

18세 이상 영주권자에게 1만 홍콩달러(약 155만 원)를 지급하겠다는 홍콩, 갑작스레 기준금리를 50bp 낮추고 추가 인하까지 시사하는 미국 등을 보면 한국은 오히려 ‘평시’다.

말로만 긴박한 것은 무의미하다. ‘24시간 비상근무 체제’는 중요하지 않다. 대책이 긴급하고 전격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새로운 것은 없다. 재난 기본소득 등 나름 참신한 제안에 ‘반대 논리’를 세우는 데 전력을 다한다.

국민생활 안전 대신 행정 안전이 우선이다. 그렇게 “새로운 것은 위험하다”로 정리된다.

이 메시지는 정부가 추경안을 발표한 날, 국회에서도 확인됐다. 이른바 ‘타다금지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통과다.

정치권이 이렇게 일산불란하게 움직인 예는 없다. 사납금·택시면허·택시수급현황 등 택시 시장의 기득권 질서엔 침묵하던 이들이 작은 시도를 밟는 데는 가차없다.

‘새로운 시도’엔 정책적 상상력을 동원해 긴급하고 전격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이 한편 놀랍다.

백 번 양보해서 타다가 혁신이 아니라고 해도, 법으로 금지해야 할까. 정부는 혁신의 제도화라고 포장하지만 혁신을 기본틀 안에서 해석하고 수용하는 순간, 혁신은 '굿바이'다.

규제 샌드박스법을 만들어 불법도 일단 해보라고 부추기는 ‘포용적 혁신 성장’ 정부가 반대편에서 금지법을 만드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수십조원의 모태펀드를 조성해봤자 “정부 말만 믿고 하다가 제2의 타다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넘을 수 없다.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아가는 결정”. 이재웅 쏘카 대표·박재욱 타다 대표의 정리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래서 슬프고 안타깝다.

상상력 부족한 추경안과 타다 금지법이 나온 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옥중서신으로 등장하며 ‘과거의 시간’을 완성한다. 전혀 뜬금없지 않다. 우린 어느새 과거로 돌아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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