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팀’ 민주당을 흔드는 ‘원보이스’

[the300][정론관]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2016년1월1일. 당시 신년 화두로 ‘대하무성’(大河無聲)을 얘기했다. '큰 강은 소리 없이 흐른다'는 뜻의 사자성어다. 물 위에선 잔물결이 아무리 출렁거려도, 도도한 물줄기는 물 아래에서 앞으로 간다는 의미다.

당시 민주당은 쪼개질 위기에 처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장을 비롯해 호남 의원들이 탈당한 상황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 사자성어를 통해 담담하게 자신의 길을 가겠다고 했다.

서로 다름을 인정했다. 뜻이 안맞다면 이별도 감수했다. 지금 상황이 아무리 혼란스럽고 시끄러워도 역사의 물줄기는 소리 없이 순리대로 간다는 게 문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문 대통령의 이런 신념은 곧바로 입증됐다. 분당이란 혼란에 빠졌던 민주당은 4개월 후 원팀으로 똘똘 뭉쳐 총선에서 123석을 얻어 제1당이 됐다. 그 힘을 바탕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했고 이후 문 대통령은 대선에서 승리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그 4개월간 치열한 토론과 건강한 비판 등을 바탕으로 원팀이 됐다고 한다. 그런 민주당은 큰 흔들림 없이 4년을 달려왔다. “당이 또 쪼개지면 안된다”는 트라우마 때문에 다툼을 자제한 의원들이 많았고, 당내 현안을 두고 다양한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 영향일까. 지도부와 다른 목소리 혹은 지지자들의 뜻과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목소리는 당내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같은 분위기가 4·15 총선을 앞두고 요즘 당을 시끄럽게 했다고 지적한다. 이해찬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원팀'을 위해 그동안 '원보이스'만 너무 강조한 탓이란 얘기다.

민주당은 최근 한달 사이 △영입인재 원종건씨 미투 의혹 △문석균씨와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출마 논란 △‘#민주당만빼고’ 칼럼을 쓴 임미리 교수 고발건 △김남국 변호사의 서울 '강서 갑' 출마논란 등으로 혼란을 겪었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당 지도부가 그동안 원팀의 조건으로 원보이스를 내세웠는데, 그 전략 덕분에 그동안 잘 보이지 않던 수면 아래의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진 것 같다”며 "당내 다양한 얘기를 듣고 치밀하게 대응했으면 논란이 덜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더불어민주당 허윤정 신임 의원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의원 선서하고 있다.

서로 다른 의견을 자유롭게 얘기하면서 맞춰가는 게 민주주의다. 나와 생각이 달라도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는 게 정치다. 

그런데 계파 갈등을 비롯해 당이 쪼개지는 트라우마를 걱정한 의원들이 "논란과 의혹이 있어도 당을 위해 덮고 넘어가자"는 식으로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다보니 켜켜이 쌓인 문제들이 곪아 터졌다.

4년전 문 대통령이 ‘대하무성’을 외쳤을 때 당시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대표였던 김무성 의원은 ‘위민전봉’(爲民前鋒)을 꺼냈다. '백성을 위해 앞에 서겠다'는 사자성어로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때 새누리당 의원들은 4개월 앞으로 다가온 4·13 총선에서 200석 이상 의석을 얻을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공천을 시작하니 곳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그동안 친박을 중심으로 원보이스만 들렸는데, 당내 갈등이 곪아 터져 급기야 '옥쇄 파동'으로 이어졌다. 새누리당은 선거에서 122석에 그쳐 1석 많은 민주당에 졌고, 국회의장(정세균 국무총리) 자리를 내줬다. 대통령 탄핵 등 비극의 시작이었다.

지금 민주당에선 그때 새누리당 얘기가 회자된다. 지난해 말만해도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150석 이상 확보할 수 있을 거란 얘기가 나왔는데, 요즘엔 현재 의석수인 130석을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란 우려가 나온다. 

오만한 권력은 늘 국민들이 심판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최근 4년동안 '여의도 정치'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면 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등 건강한 목소리가 살아있을 때 조직은 발전한다. '원보이스'는 결국 '원팀'을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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