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포그래픽]같은 듯 다른 '두남자'…이낙연-황교안 대선 지지율은?

[the300]

①'역대 최고' 이낙연, '최저치 근접' 황교안… 엇갈린 '종로맞수' 지지율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서 맞붙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차기 대선주자 1, 2위인 두 사람은 여론조사에서 매달 경쟁을 펼쳐왔다. 최근 격차는 상당하다. 이 전 총리가 4개월 연속 상승세로 '역대 최고' 지지도를 경신한 반면, 황 대표는 최저 지지도에 근접했다.

리얼미터의 1월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를 보면, 이 전 총리는 지지도 29.9%로 1위를 기록했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달 28~31일 성인 2511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 표본오차 ±2%p)한 결과다.

이 전 총리의 지지도가 지난해 12월 조사보다 0.5%p 높아졌다. 8개월 연속 1위 자리를 지켰다.

황 대표의 지지도는 17.7%로 지난 조사보다 2.4%p 떨어졌다. 7개월 연속 20% 안팎에서 횡보했던 선호도는 10%대 중·후반으로 떨어졌다. 이 총리와 격차는 9.3%p에서 12.2%p로 벌어졌다. 황 대표의 지지도는 지난해 최저치인 17.1%(1월)에 근접했다.

이 전 총리가 황 대표를 제친 건 지난해 6월이다. 당시 이 전 총리의 지지도는 21.2%로 황 대표(20.0%)에 비해 불과 1.2%p 앞섰다.

이후 이 전 총리 지지도는 7월 25.0%, 8월 25.1% 2개월 연속 올랐다가 9월 20.2%로 크게 떨어졌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지도(13%)가 크게 오르며 3위를 차지한 여파가 컸다. 당시 황 대표의 지지도는 19.9%로 격차가 0.3%p에 불과했다.

이 전 총리는 반등에 성공했다. 10월 23.7%, 11월 27.5%, 12월 29.4%, 1월 29.9%로 지속적인 상승세에 있다. 이 전 총리의 지지도는 호남과 부산·울산·경남(PK), 충청권, 50대와 40대, 20대, 60대 이상, 진보층, 바른미래당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에서 상승했다. 반면 서울과 대구·경북(TK), 30대, 보수층, 정의당과 자유한국당 지지층에선 하락했다.

이와 달리 황 대표의 지지도는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19~20% 안팎에서 유지되다가, 지난달 대부분 지역과 계층에서 하락하며 17.7%에 그쳤다. 지난 8개월 사이 최저치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7일 서울 영등포의 한국당 중앙당사에서 4·15 총선 서울 종로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오른쪽). 왼쪽은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에 더불어민주당 후보 출마 입장을 밝힌 이낙연 전 국무총리. 황 대표의 종로 출마로 이번 종로구 총선은 전직 총리 출신의 빅매치이자, 차기 대선의 전초전으로 치뤄질 전망이다.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1위인 이 전 총리에 이어 황 대표는 선호도 2위를 달리고 있다. 2020.2.7./사진=뉴스1

②이낙연 vs 황교안 '종로 대결' 성사…같은 듯 다른 '두 남자의 역사'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2위 후보인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종로 매치'가 성사됐다. 

황 대표는 7일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종로를 정치 심판의 땅으로 만들겠다"며 종로 출마를 공식화 했다.

지난달 일찌감치 종로 출마선언을 하고 이사와 예비후보 등록까지 마친 이낙연 전 총리는 "미래를 위한 선의의 경쟁을 기대한다"며 여유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낙연과 황교안.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은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르다.

◇'독재정권' 시절 법학도의 양갈래 길…기자와 공안검사=두 사람은 '법학'을 전공했다. 이 전 총리는 서울대 법대 70학번이다. 황 대표는 재수한 뒤 성균관대 법대 77학번으로 입학했다.

이 전 총리는 사법고시 대신 언론을 택했다. 동아일보에서 1979년부터 2000년까지 21년간 기자생활을 했다. 그는 "스물여덟부터 마흔아홉까지. 인생의 한복판을 기자로 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회고했다.

황 대표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고시반에 들어갔다. 희귀성 질환으로 군 면제를 받아 사법시험 준비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는 1981년 제23회 사시를 패스한 뒤 사법연수원을 13기로 수료해 1983년 검사가 돼 '공안통'의 길을 걸었다.

이 전 총리는 1979년 '10·26 군사 쿠데타'를 수습기자 시절 겪었다. 이어진 독재 시절을 언론인으로 기록했다. 비슷한 기간 황 대표는 공안 검사로 이름을 날렸다.

정치권에선 이 전 총리가 20여년 선배다. 이 전 총리는 2000년 16대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공천을 받고 전남 함평군영광군에 출마해 국회의원이 됐다. 이후 내리 4선을 한 뒤 2014년부턴 전남도지사를 역임했다.

반면 황 대표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 정치에 입문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치러진 2017년 5월 '장미대선' 때부터 대선 출마 요구를 받지만 황 대표는 한 발 물러섰다. 결국 황 대표는 문재인 정부 출범 2년이 지난 2019년 1월 전당대회에 출마, 당대표에 선출되며 정치권에 뛰어들었다.

◇광역자치단체장 vs 대통령권한대행…다른 '행정' 경험=행정 경험도 같은 듯 다르다. 이 전 총리는 국회의원 4선을 한 뒤 지방선거에서 전남도지사로 선출돼 행정가로 변신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첫 총리로 그를 선택한 것도 경험과 행정력을 눈여겨 본 덕분이다.

초대 국무총리로 입각한 이 전 총리는 최장수 총리(2년 7개월 13일, 958일)을 지냈다. 총리 재임 기간 동안 그는 대선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20%를 넘는 지지율을 유지하며 장기간 1위를 지켜왔다.

황 대표는 2011년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을 끝으로 검사직을 그만둔 뒤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등으로 야인생활을 하다 박근혜 정부 첫 법무부장관으로 돌아온다. 곧이어 국무총리를 맡아 박근혜 정부 마지막 총리가 된다. 박근혜 정부 기간 내내 장관과 총리를 한 셈이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18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故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을 마친 후 김 전 대통령의 묘역으로 이동하며 대화를 하고 있다./사진=이동훈 기자

③대통령만 3명 배출한 '종로'…이낙연 vs 황교안 '빅매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7일 종로구 출마를 공식화 했다. 광화문에서 "험지 출마"를 선언한 지난 1월3일 이후 35일만의 결정이다.

이미 더불어민주당은 여당 대권주자 지지율 1위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등판'해 예비후보 등록까지 마친 상태다.이 전 총리는 지난달 23일 당의 종로 출마 제안을 수락하고 종로구에 이사까지 완료하면서 완벽히 '터'를 잡은 상태다. 

◇청와대가 속한 지역구…대통령만 3명 배출한 '종로'=여권 내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꼽히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지난달 23일 서울 종로구 출마선언을 공식화 했다. 그는 전날 이해찬 당대표의 출마 제안을 "엄숙하게 받아들인다"는 말로 본격적 총선 준비에 돌입했다.

종로는 윤보선, 노무현, 이명박 등 역대 대통령을 다수 배출한 곳이라는 점에서 '정치1번지'로 꼽힌다. 장면 전 총리와 정세균 총리도 종로 지역구 의원을 지냈다.

◇역대 성적표는=종로구의 정치 성향은 다소 보수적으로 평가된다. 1988년부터 2012년까지 보수 정당 후보가 강세를 이어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996년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해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를 이기고 당선됐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1997년 1심 재판에서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듬해 그는 서울시장 출마를 이유로 자진사퇴했고 이어진 1998년7월 보궐선거에서 노 전 대통령이 종로에 '민주당' 깃발을 꽂았다.

2000년 16대 총선(정인봉), 2002년 보궐선거(박진), 2004년 17대 총선(박진), 2008년 18대 총선(박진) 모두 한나라당의 독식이 이어졌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지역구를 종로로 옮긴 정세균 총리가 홍사덕 당시 새누리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면서 다시 민주당 땅이 됐다. 정 총리는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유력 대권주자로 꼽히던 오세훈 새누리당 후보를 10%포인트 넘게 큰 차이로 이기며 종로를 수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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