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시(野視視)]5월18일엔 MT도 못갔는데…지금 한국당은

[the300]'5월 광주' 품지 못하면 집권 어려워…전향적 자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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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뉴스1) 문요한 기자 = 장외 투쟁에 본격 돌입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3일 오후 전북 전주시 전주역 광장에서 '문재인 STOP! 전주 시민이 심판합니다' 규탄 대회를 하고 있다. 황 대표 뒤로 '5.18 망언 자유한국당 해체하라'라는 피켓이 보인다. 2019.5.3/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광주에서 전두환이 사람들을 죽였어"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에 갓 들어간 아이가 듣기에는 이해가 안됐다. 꼬마는 "TV 뉴스에 만날 나오는 대통령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하느냐"고 막내 삼촌에게 되묻곤 했다. 대학생이던 삼촌은 "군인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부터 잘못"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다. 울산 현대중공업에서는 '128일 파업', '골리앗 투쟁' 등 대한민국 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대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졌다. 물론 그때는 몰랐다. 학교 담벼락 바로 옆에서 투석전이 벌어졌고 최루탄이 자욱했다. 휴교가 이어졌다. 백골단(체포 전담조)이 아이들 보는 앞에서 노동자와 대학생들을 짓이겨 피투성이로 만들어 끌고 갔다. 아파트 연탄보일러 옆에 숨었던 한 노동자를 위해 백골단에게 거짓말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담임선생님은 1980년 전남대 학생이었다. 최루탄 때문에 수업을 못할 때면 노래(민중 가요로 추정되는)를 가르쳐줬다. 광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했다. 이유를 묻는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를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어린 시절 어린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는 무서운 것이었다.

# 전투적 학생운동의 끝물이 남아있던 1990년대 후반에 대학을 다녔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공부'했다. 그때만 해도 5월 18일은 데모하는 날이었다. 축제가 한창이고 놀기 좋은 5월이지만 그날 만큼은 먹고 마시고 노는 게 금기시됐다. 5월 18일을 끼고 MT(멤버십 트레이닝, 혹은 모꼬지)를 가는 동아리나 학회는 비난의 대상이 됐다.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실려 어디갔지…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노래를 불렀다. 선배들의 말을 듣고 머리로나마 5월 광주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대학가는 빠르게 변했다. 졸업 무렵 더 이상 5월 18일은 특별하지 않았다. 그날 MT를 가든 말든 신경 쓰는 사람은 없어졌다. 각자 자기 생활에 바빠 MT 자체도 사라져갔다.

# 2019년 대한민국 국회. 정치부 기자로 발령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유한국당의 '5.18 망언' 사태가 터졌다. 민주화 운동을 '폭동'으로 발언한 이종명 의원은 제명 처분이 내려졌다.

그러나 3달이 지나도록 제명안이 처리되지 않는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빨리 하고 싶지만 국회가 의원총회를 열 상황이 아니"라고 한다. 광주 기념식에 참석하려는 황교안 한국당 대표에게는 여권 등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한다. "맞으러 간다", "호남 때려 영남을 품는다"는 시각에 이어 "사이코패스"라는 막말도 나왔다.

국회 상황도 이해가 간다. 황 대표가 그런 의도를 가질 정도로 비정상적인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안타까움이 크다. 광주 민주화운동은 명확한 역사다. 한국당이 집권당 시절 '민주화 운동'으로 공식화했다. 광주 민주화운동을 자산으로 삼지는 못할망정 왜 여권에 공격의 빌미를 주나.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평온, 5월의 평범함은 민주주의를 위해 피 흘린 사람들의 덕분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물론 극우세력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럼에도 이들은 일부일 뿐, 보편적 국민 정서와 다르다. 그들한테 휘둘려선 집권하지 못한다. 집권을 해야 한국당이 그토록 부르짖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킨다. 한국당이 5월 광주를 더 적극적으로 품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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