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와 심사, 단어 하나 차이가 헌법소원까지

[the300][정재룡의 입법이야기]정확한 법조문 용어 적용 필요

2015년 5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교육감협의체가 교육부장관에게 의견을 제출한 경우 그 의견을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하는 내용의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심사했다. 개정안 조문에 '필요한 경우'라는 표현이 재량을 인정하므로 이에 조응할 수 있도록 ‘통보하여야 한다’를 ‘통보할 수 있다’로 수정했다.

그러나 개정안의 취지는 '지방자치법' 제165조처럼 통보 의무화였다. 법사위원회는 그 취지를 오해해 잘못 수정한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 필자는 그 문제를 설훈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에게 보고하고 개정안이 정부로 이송되기 전 법사위원회 및 의사국과 협의를 거쳐 의장의 의안 자구정리권을 통해 ‘필요한 경우’를 삭제했다. 대신 통보 의무를 원래대로 환원시켰다. 이처럼 법사위원회의 자구심사에 가끔 실수가 발생하기도 한다.

2012년 12월 31일 법사위원회는 교비회계 예산 편성 및 결산을 하면서 등록금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하는 내용의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심사했다. 당시 '심의는 심사·의결의 준말이기 때문에 풀어 써야 한다'는 이유로 등록금심의위원회의 ‘심의’가 아니라 ‘심사·의결’을 거치도록 수정했다. 이렇게 수정된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해 시행되자 이를 근거로 일부 사립대의 등록금심의위원회가 교비회계의 예산 및 결산에 대하여 심사·의결권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학교법인 이사회의 기능이 무력화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혼란이 야기되었다. 급기야 2013년 10월 5개의 사학법인이 관련 조항의 위헌확인을 위한 헌법소원을 청구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사전적으로 심의는 ‘상세하고 치밀하게 토의하는 일’을 뜻하며 결정권 없이 토론만 하는 것이다. 반면, 심사는 ‘자세히 조사하여 등급이나 당락 따위를 결정함’을, ‘의결’이란 ‘의논하여 결정함’을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심의에는 결정의 의미가 포함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예를 들어 국무회의는 심의기관이고, 반면 금융통화위원회는 현재 의결기관으로 구분되지만, 과거 이를 심의기관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의결기관으로 할 것인지에 대하여 오랫동안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따라서 ‘심의’를 ‘심사·의결’로 수정한 것은 잘못이다. 

법조문의 용어는 다 각각의 경우에 맞는 적확한 것을 써야 한다. 현행 법조문에 심의로 규정된 경우가 허다한데 거기에는 각각 그것이 가장 적확한 용어이기 때문에 그렇게 규정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교비회계의 예산 편성 및 결산 과정에서 결정권은 학교법인 이사회가 행사하되 대학 구성원의 참여를 보장하고자 등록금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한 입법취지와 맥락을 고려할 때도 법사위원회가 심의를 심사·의결로 수정한 것은 적절치 않다. 

예를 들어 '가축전염병 예방법' 제34조는 광우병 발생 국가의 쇠고기 수입 시 그 위생조건에 대하여 국회의 심의를 받도록 한다. 여기서 ‘심의’는 등록금심의위원회처럼 국회가 결정권을 행사하지는 않되 의견수렴을 거치게 하는 취지로 쓴다. 때문에 이를 심사·의결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이 입법례는 집행사항에 관하여 국회의 심의를 받도록 한 것으로서 심의를 심사·의결의 준말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등록금심의위원회는 2010년 1월 '고등교육법'의 개정을 통해 법제화됐다. 이 법의 제11조 제3항은 학교의 설립자·경영자는 등록금심의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최대한 존중하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등록금심의위원회의 근거법은 ‘심의’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립학교법만 '심의’를 ‘심사·의결’로 바꾸면 고등교육법과의 체계상도 맞지 않는다.

입법례를 보더라도 심사·의결은 드물고 오히려 심의·의결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심의가 심사·의결의 준말이라면 심의·의결이라는 용어는 ‘의결’이 중복되는 것으로 부적절한 용어가 되어버린다.

2013년 12월 한 신문사는 이 문제에 대하여 연일 ‘유령법까지 만든 황당한 국회, 전대미문의 입법왜곡’ 등으로 비판했다. 이에 대하여 국회는 정정보도를 요구했지만 수용되지 않고 반론보도에 그치고 말았다. 

다행히 헌법소원은 관련 조항이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지 않고 사학 운영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보고 합헌 결정됐다. 그 조문은 현재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 사례는 입법에서 우리가 용어 선택에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정재룡 국회 교육위 수석전문위원 / 사진제공=심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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