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회고록]개방적인 김정은? 협상의 조건이 흔들렸다

[the300][뷰300]실망스러운 정세인식 노출…'북한식'으로는 정상국가 요원

(랑선성=뉴스1) 성동훈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박 5일간의 베트남 방문 일정을 마친 2일 오후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서 환송 인파에게 손인사를 하고 있다. 2019.3.2/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해부터 시작된 북미 핵담판의 특징은 '톱다운'이다. 고위·실무급에서 좁혀지지 않는 이견을 지도자들의 결단으로 좁히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방식. 경직된 사고방식과 편견을 가진 북미의 관료들 대신 '뭔가 다른' 지도자들의 결단에 의해 협상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평가였다. 

중심에는 북한의 새로운 세대를 대표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워싱턴 정가 특유의 선악 구도에서 벗어나 '기브 앤드 테이크'를 추구하는 사업가 출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있었다. 선대와 달리 '핵' 대신 '돈'을 원하는 김 위원장과, 자신만의 '업적'을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 '딜'이 충분히 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특히 김 위원장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어릴적 스위스에서 유학하며 자본주의의 맛을 봤고 미 프로농구(NBA)에 열광하는 모습은 '핵 대신 개방'의 설득력을 높여줬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우리 길이 불비해서 민망하다"며 낙후된 북한의 모습을 직시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이번 하노이 회담이 '노딜'로 끝나기 직전까지도 기대감을 주기 충분했다. 하노이에서는 외신 기자와 깜짝 일문일답을 나누면서 "핵 해체 의지가 없었으면 여기 안 왔다"고 했다. "내 아이들이 평생 핵무기를 짊어지고 살길 원치 않는다"고 했던 말이 전해지기도 했다.

회담을 앞둔 하노이 현지에서 역시 기대감이 팽배했다. 이번 회담에 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비핵화 기준'이 굉장히 높은 것으로 파악이 되고 있었는데, 김 위원장이 66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올 정도면 '결단'을 내린 게 아니냐는 해석이었다.   

모든 기대는 '본 게임'에서 무너졌다. '66시간 대장정'은 비핵화와 경제발전에 대한 결기가 아니었다. 미국의 입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오판'에 불과했다. 너무 작은 카드(영변)로 너무 많은 과실(제재 전면 해제)를 얻으려 한, 선대(김일성·김정일)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 노출됐다.

지난 8개월 동안 '영변'을 '경제제재'와 바꾸는 카드 하나만을 노려왔다는 사실은 나쁜 의미에서 반전이었다. 현재 보유한 핵무기의 신고 및 반출, 영변 외 핵시설 해체 등에 대한 약속은 전무한 채 '영변 해체' 하나만으로 5개의 핵심 경제제재부터 풀라는 말은 '북한식 비핵화'일지는 몰라도 국제적 기준의 비핵화는 아니다.

'노딜' 이후 반응도 그렇다. 새벽에 리용호 외무상이 기자들을 불러모아 트럼프 대통령의 '전면적 제재해제 불가' 발언을 반박하기 급급했다. 북측이 요구한 것들은 '완전한 비핵화'와 등가교환 가능한 핵심 제재들이다. 미국 고위 당국자가 "말장난"이라고 한 게 무리가 아니다.

김 위원장이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입을 통해 "미국의 거래 계산법에 대해서 굉장히 의아함을 느끼고 있다"고 한 것은 냉소만 불러일으켰다. '영변' 하나만 보고 핵심 경제제재를 다 풀라는 계산법이 더 의아했고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선대와 차원이 다른 비핵화 및 경제개발의 의지를 보여주려면 '플러스 알파'를 향한 타임 테이블 정도는 제시했어야 했다. 예컨대 영변 핵시설의 폐기를 곧바로 이행하고, 연내에 핵 리스트 제출을 확약할 터이니, 인도적 지원을 우선 풀어주고, 가을까지는 금강산관광을, 핵 리스트 제출 후에는 개성공단 재개 정도는 허용해 달라고 요구했었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빅딜' 요구에 대해서도 "준비가 안 됐다"고 할 게 아니라 "당신의 임기 내에 달성한다는 문구를 합의문에 넣고 다음 회담에서 타임테이블을 더 구체화하자"는 식으로 유도했어야 한다.

북측이 한 발 더 나간 제안을 선제적으로 했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노딜' 전략을 감히 쓸 수 있었을까. 비핵화 타임테이블을 구체화하는 상황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승자가 될 수 없었다. '마이클 코언 폭로' 때문에 핵담판장에서 도망쳤다는 비판에 직면했을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보인 태도는 그의 비핵화 및 경제발전 의지에 의문 부호를 붙게 했다. 이를 불식시키는 게 북미 간 중재에 나서게 될 문재인 대통령의 숙제다. '북한식 비핵화'라는 망상으로는 김 위원장이 그토록 바라던 정상국가의 길이 요원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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