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내 삶을 바꾸는 개헌-경자유전·소작

[the300]종합

'경자유전·소작금지' 쟁점.."사극? 개헌입니다"


#소작농에 대한 지주의 착취는 사극의 단골 레퍼토리(이야깃거리)다. 가을걷이를 하고 나서 거둬들인 곡식의 태반을 지주에게 갖다 바치고 눈물짓는 농민. 지주가 가장 많이 가져가고 악덕 마름도 중간에서 한 몫 떼 간다. 뼈 빠지게 일한 소작농은 가족들 입에 풀칠할 걱정에 고개를 떨군다. 땅을 근간으로 살아가는 문화권에선 토지를 매개로 한 이와 유사한 착취의 역사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런 소작의 부작용은 현재도 유효할까.

 

적어도 현행 헌법은 그렇게 본다. ‘경자유전(耕者有田)’. 농사를 짓는 자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원칙이 헌법에 자리를 잡은 것은 뿌리 깊은 소작제의 역사에 기인한다. 소작의 역사는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 강점기까지 이어지다가 해방 후 농지개혁 때까지 이어졌다. 그 기나긴 착취와 피착취의 흔적이 바로 헌법 121조에 남은 '경자유전의 원칙'과 '소작제도 금지'다. 경작을 하는 사람만 농지를 가질 수 있고, 농지를 더 잘 활용하기 위한 불가피한 사정이 있지 않은 한 농지 대여를 불허한다는 거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굳건했던 경자유전과 소작금지의 원칙에 대해 폐지론과 수정론이 조심스레 제기된다. 내년 지방선거로 시점이 정해진 개헌을 앞두고 폐지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적잖다. 하지만 여전히 힘이 실리는 쪽은 존치론이다. 날로 부족해지는 경작지와 약해지는 농업경쟁력 회복을 위해서는 근간을 다져놓을 필요가 있다는 게 존치론의 뼈대다. 



◇"요즘 소작농이 어딨나" = 폐지론은 소작제의 폐해나 이에대한 우려가 사라졌다는 데서 출발한다. 소작제도 금지가 헌법에 들어간 3공화국 당시엔 소작농에 대한 착취가 극에 달했던 일제 강점기의 기억이 남아 있었다. 해방 이후 농지개혁을 거치면서도 여전히 봉건적인 소작제의 폐해에 대한 우려가 존재했다. 나름 헌법적 금지의 필요성이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엔 지주에 예속돼 소작료를 내는 농민은 없다. 역사적 의미만 남아있는 소작제도 금지 조항은 폐지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같은 맥락에서 경자유전 원칙도 폐지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여기선 경제 원칙이 우선된다. 경자유전 원칙이 대규모 기업농 탄생의 걸림돌이 된다는 거다. 글로벌 기업농이 활동하는 상황에서 토지의 대여를 제한하는 해당 규정은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 농업 대기업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식량 안보도 중요하지만 대규모 기업농을 육성하고 농업의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보면 경자유전의 원칙은 안전 장치라기보다는 규제다.

 

◇‘스마트 팜’과 ‘新 소작제’ = 존치론자들도 소작제가 사라진 현실은 인정한다. 다만 농업의 신산업화 과정에서 얼마든지 소작의 관행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농업 기술의 발달, 대량 생산 시스템 구축 등 미래의 선진화된 생산 형태가 오히려 소작 형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미래 농업시스템은 농업에 IT(정보통신) 등 다양한 기술을 접목시킨다. 다양한 단계별로 소작료를 징수하면 엄청난 고율의 소작료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경자유전 원칙에 대해서도 존치론이 만만찮다. 헌법에서 이 원칙이 삭제되면 농지의 용도 변경 문턱이 낮아진다. 가뜩이나 줄어들고 있는 농지의 규모를 감안할 때 국민 식량 생산 기반이 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농림축산식품부 집계에 따르면 우리 국토 면적은 지난 2001년 995만ha에서 2015년 1003만ha로 증가했다. 반면 경지 면적은 같은 기간 188만ha에서 168만ha로 감소했다. 연도별 쌀 재배 면적도 2005년 거의 100만ha에 육박했지만 2015년엔 처음으로 80만ha대가 깨진 79만9000ha까지 줄었다. 



◇존치론 손 들어준 정부 = 정부는 일단 경자유전의 원칙과 소작 금지 원칙을 존치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제논리에 입각한 폐지론도 일리가 있지만 식량자원의 확보는 경제논리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게 농식품부의 설명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과 농업정책의 바른 수행을 위해서는 헌법 원칙을 근본에서 뒤흔드는 입법적 조치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정부의 해석"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자유전 원칙의 목적이 분명한데도 불구 헌법의 개정을 논한다면 잘못된 전제를 바탕으로 너무 성급하게 시도한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소작제 금지 규정은 존치하되 임대차 등 예외적인 허용은 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오히려 원칙이 강화되는 내용의 헌법 개정 에 무게를 둔다. 헌법상 현행 국가가 '노력해야 한다'고 표기된 부분을 강화해 '보장하며(준수하며)'로 개정하는 내용이다. 현실화된다면 '①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의 항이 '①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을 보장하며(준수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로 개정될 수 있다.

 

국회의 대표적 존치론자인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개헌 논의에 있어서 농지를 중심으로 농촌의 고유한 가치와 공익적 기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농지가 없으면 농업과 농촌이 유지될 수 없는 만큼 개헌 논의 과정에 농민과 농민 단체가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위스는 왜 경자유전 원칙을 강화했을까


농업 선진국들은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헌법과 법률로 보장한다. 스위스는 농업 중시 철학과 경자유전 원칙을 헌법에 명문화했다. 독일이나 프랑스 등 유럽 국가는 물론 일본도 농민의 농지 소유를 보장하고 소작제도를 제한하는 법 조항을 두고 있다. 국가가 농업의 고부가가치성을 인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보호한다는 취지에서다.

 

유럽의 대표적 농업선진국인 스위스는 연방헌법 104조를 통해 농업과 농민을 보호한다. 헌법 104조 1항은 "연방이 농업을 발전시키고 시장의 요구에 기여하도록 보장한다"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는 '국민 식량 공급', '천연자원·농촌경관 보존', '인구분산' 등의 국가 의무 사항도 농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2항엔 "필요한 경우에는 자유경제의 원칙을 배제하고 농장을 지원한다"고 섰다. 스위스의 농업 철학을 강하게 담은 조항이다. 경우에 따라 농업이 경제원칙보다 위에 있다고 적시한 게 눈에 띈다. 국가기간산업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경자유전'의 원칙은 3항 f호을 통해 공고히 했다. 3항 f호는 "연방은 농지소유를 강화하는 법률을 제정한다"고 했다. 이를 바탕으로 스위스는 농지거래 허가제, 임차인 영농의무 및 임대인 유지보수 의무 등을 담은 농지 임차법을 마련했다. 아울러 4항에 "연방은 이를 위해 농업분야 및 일반연방기금으로 조성된 전용기금을 조성한다"고 명시, 재정 지원의 근거도 마련했다.

 

스위스가 처음부터 이처럼 강한 농업·농민 보호책을 실시한 것은 아니다. 스위스는 1990년대 세계화 추세에 맞춰 농산물 수매보증을 축소하는 등 정부 개입을 대폭 줄인 '신농업정책(1992)'을 도입하기도 했다. 농산물 가격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농가가 줄도산하고, 농가의 1/3이 겸업농으로 전락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이에 개헌을 준비하던 스위스는 1996년 농업과 농민을 적극 보호하는 현재의 헌법 조항을 마련한다.

 

농산물 가격 인상 등을 우려한 일각의 저항도 있었지만 '경쟁력 있는 농업의 필요'에 대한 국민 공감대가 더 컸다. 헌법을 통해 농업에 대한 정부지원의 정당성과 방향을 확립한 스위스는 농업 생산성을 안정시키고 농민을 효과적으로 보호하는 등 농업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스위스 외에도 유럽 다수 국가들은 법률을 통해 농민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경자유전 원칙은 기본이다. 낙농업으로 유명한 덴마크는 비농업인이 2ha이상 농지를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등 강한 농지소유 규제를 갖고 있다. 2개 이상의 농장을 소유하는 경우 농장간 거리가 10km 이내여야 하는 규정도 있다. 농지 취득 후에는 거주지를 근처로 이전해야 하는 의무도 존재한다.

 

프랑스와 독일에도 농지소유와 거래에 정부가 적극 개입한다. 두 국가 모두 농지 소유와 거래때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 아시아의 농업선진국으로 분류되는 일본도 농지매매 허가제를 실시해 비농가의 농지소유를 규제한다.

 

전문가들은 2000년대 들어 경자유전 원칙을 폐지한 대만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953년 경자유전 원칙을 도입했던 대만은 2000년대 농업생산성 증대 등 효율성 확보를 이유로 이를 폐지했다. 하지만 비농민의 농지 소유가 증가하자 농지 가격의 폭등으로 이어졌다. 이에 대만에서는 경자유전 원칙을 재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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