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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영 국회 의정기록심의관이 10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2016년 2월23일~3월2일 국회 본회의 회의록을 들어보이고 있다. 당시 본회의에서는 192시간 동안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가 진행됐다. /사진=백지수 기자 |
"옛날엔 '종이가 자기 키 만큼 쌓일 정도로 연습해야 국회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 있었어요."
10일 국회 본청에서 만난 이순영 의정기록심의관(사진·59). 유신 시절 막바지였던 1978년 국회에 첫발을 들였을 때 그의 나이 만 20세였다. 지금 국회가 20대인데 그때는 9대 국회였다. 첫 사회 생활을 국회 속기사로 시작했다. '국회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가졌던 여고생은 한 신문에서 국회 속기사양성소 학생 모집 공고를 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속기사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남들은 2~3년 걸린다는 속기사 시험을 1년 만에 붙어 국회 입성의 꿈을 이뤘다.
컴퓨터가 없던 당시, 이 심의관도 손으로 말을 기록하는 수필 속기를 전문으로 공부했다. 그는 "처음 회의장 들어간 게 국방위원회였는데 너무 어려워서 중간 내용은 하나도 못 쓰고 '~했습니다' '~있습니다' 같은 서술어만 간신히 써서 나왔다"고 속기사로서의 첫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1995년 국회가 '카스(CAS)'라는 시스템을 이용한 기계속기로 바뀐 이후에도 2003년쯤까지 계속 회의장에서 수필속기로 국회의원들의 말을 기록했다. 이후엔 승진에 따라 속기 실무 대신 속기록을 바탕으로 한 회의록 편찬 업무에 매진했다.
그렇게 40년 동안 국회에서 일하며 가장 인상깊었던 순간 중 하나로 그는 19대 국회 막바지인 지난해 2월 테러방지법 반대를 위해 진행됐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를 꼽았다. 이 심의관은 한 권당 두께 10센티미터는 돼 보이는 책 두 권을 책장에서 꺼내들며 "당시 필리버스터가 2016년 2월23일부터 3월2일까지 9일 동안 192시간 이뤄져 세계 기록을 갈아치웠다"고 회상했다.
그는 "필리버스터 회의록이 200자 원고지 1만9014장 분량인데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 분량인 원고지 1만6500장보다도 훨씬 많다"며 "국회 의정기록과 직원 20~30명이 다 붙었는데도 속기문자를 속기록으로 변환하는 시간만 72일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 당시 의사록엔 '지금 생리현상이 급합니다. 화장실을 허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같은 워딩도 생생히 기록돼 있는데 국회 역사상 '생리현상'이라는 말이 들어간 것이 처음이었다"고도 덧붙였다.
이같은 기억들을 갖고 국회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이 세대나 속기 방법은 변했어도 회의를 기록한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이 심의관은 "회의록을 만드는 작업 자체는 30~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며 "정확하고 신속하게 회의록을 만들고 늘 의원들 생각을 날 것 그대로 담겠다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이 심의관은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는 정치가 역동적인 나라라 증명하려는 욕구가 굉장히 강하다"며 "속기사들이 회의장 발언을 하나 하나, 토씨 하나 하나 기록해 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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