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의 정치 깊이보기]개헌 여론이 들쭉날쭉한 이유

[the300]

편집자주the300이 여론에 나타난 민심 흐름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우리 정치 현상들을 한단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이상일의 정치 깊이보기'를 연재합니다. 필자인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는 여론조사 분석 전문가로 TNS코리아 이사, 청와대 행정관 등을 지냈습니다.

 

20대 국회 개원과 함께 개헌(改憲) 논의가 활발하다. 정세균 국회의장을 비롯해 與野를 가리지 않고 여러 정치인들이 개헌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전에도 개헌 논란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번번이 논의 수준에 그쳤다. 임기 초에는 현직 대통령이 개헌에 무관심했고, 후반에는 유력 대선주자가 개헌에 부정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여야가 모두 개헌 필요성에 공감하고 강력한 미래권력이 없기 때문에 올해는 개헌 논의가 진전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상당하다.

 

발맞춰 개헌에 대한 여론조사들도 여럿 보도되었다.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80% 이상이 개헌에 찬성했다고 한다. 국민 여론조사는 조사에 따라 결과들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두 조사만 비교해 보자.


 



개헌에 대한 관심도와 찬반(공감) 질문은 성격이 다르므로 결과도 다를 수 있다고 치더라도 권력구조 선호도 질문은 두 조사결과의 편차가 얼핏 이해되지 않는다.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중임 대통령제가 선호가 40%를 넘었고 갤럽 조사에서는 분권형 대통령제 선호가 50%를 넘었다. 왜 그런 차이가 생겼을까.

 

CBS-리얼미터 조사(이하 ‘조사1’)의 문항 설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조사1의 4년중임 대통령제가 바람직하다는 응답 41%에는 대통령제가 낫다는 응답과 4년 중임제가 좋다는 응답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섞임을 방지하려면 설문의 응답 항목이 더 많아져야 한다. 예를 들어 보기가 ①5년 단임 대통령 중심제 ②4년 중임 대통령 중심제 ③분권형 대통령 임기 5년 단임제 ⑤분권형 대통령 임기 4년 중임제 ④의원 내각제 이런 식으로 구성되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보다 좋은 방식은 갤럽(이하 ‘조사2’)처럼 질문을 분리하는 방식이다.

      

일반 국민은 개헌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는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일상 생활에 당장 부딪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실체적 여론은 ‘현재 발생한 문제에 대한 반작용’ 수준에서 형성된다. 대통령에 모든 권한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계속되면서 대통령 중심제보다 분권형 대통령제가 나은 것이 아닌가 하는 여론이 형성될 수 있다. 또한 5년 단임제 정권으로는 안정적 국정운영이나 연속성 확보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반복되면 5년 단임제보다 4년 중임제가 좋다는 여론도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 두 가지는 현실의 권력구조 제도에서 하나의 완결된 형태로 조합될 수 있는 문제지만 여론은 개별적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누구도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가 가능하다고 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같은 인식 수준에서 ‘4년 중임 대통령제’라는 설문의 보기항목은 두 가지 차원을 한꺼번에 물음으로써 정확한 여론을 파악하는 데 장애물로 작동하는 것이다. 조사2는 그 문제를 피해갔다. 권력 구조에 대한 질문과 대통령 임기제를 구분 질문했기 때문이다. 조사2의 결과를 종합해 보면,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키는 분권형 대통령제로 하되 대통령의 임기는 4년 중임이 낫다]는 복합 결론의 추론도 가능해 진다.

 

여론조사를 비교했지만 본질은 여론조사의 문제가 아니다. 조사1과 같은 방식의 질문은 연합뉴스와 중앙일보가 각각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동일하게 사용되었다. 결과는 국회의원들도 ‘4년 중임 대통령제’가 가장 높은 지지를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정치권 인사는 그 설문조사 결과를 보고, ‘대통령 1인 권력 집중이 문제여서 개헌을 하자면서 4년 중임제 대통령제로 가자는 것은 대통령의 권한을 더 늘리자는 것 아니냐’고 했다고 한다.

 

개헌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을 해 온 국회의원들이니 4년 중임 대통령제가 바람직하다는 응답이 말 그대로 ‘현행 대통령 중심제를 유지하되 임기제만 바꾸는’ 것이 낫다는 생각들이 제대로 반영된 결과였길 바란다. 국회의원들에게 조사2(갤럽) 방식의 설문을 했더라도 연합뉴스나 중앙일보 조사결과처럼 대통령제 선호가 높다는 동일한 결론이 났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국회의원들조차 권력구조 형태 수준에서도 제대로 고민하지 않은 채 개헌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는 뜻이 될 것이니 그야말로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국민 기본권이나 여타 개헌의 주제가 되어야 할 내용들은 물론이고 ‘권력구조 문제’ 하나에서도 정교한, 정돈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자주 인용되는 것이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다. 오스트리아의 대통령은 임기 6년의 중임제다.

 

분권형 대통령제와 중임 대통령제를 배타적 선택지처럼 당연하게 제시하고 선택하는 수준에서 개헌 논의가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개헌처럼 국민의 일상생활과 거리가 있지만 국가적으로 중요한 이슈에 대한 여론을 제대로 짚어내고 국민들의 요구를 수렴해 가려면 그에 부합하는 수준의 정보제공과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반복적으로 어떤 권력구조가 좋은지를 물어본다고 제대로 된 여론이 형성되거나 파악되는 것이 아니다. 개헌을 왜 해야 하는지, 시대에 맞지 않는 헌법 조문들로 어떤 것들이 거론되는지, 개헌의 내용은 어떤 주제들로 구성되는지, 각 부분에서 쟁점은 무엇이고 찬반 논리는 무엇인지 충분히 설명한 후에 형성되는 여론이 제대로 된 여론일 것이다. 모든 국민에게 그런 설명을 하고 피드백을 받을 수 없다고 해서 ‘찬반, 선호도’ 여론조사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정치권이 의지만 있다면, 개헌 이슈를 둘러싼 공론조사 정도를 검토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정치권 스스로 ‘개헌의 제반 이슈와 명분, 논리’들을 좀 정돈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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