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의 정치 깊이보기]안철수 대표의 화법

[the300]

편집자주the300이 여론에 나타난 민심 흐름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우리 정치 현상들을 한단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이상일의 정치 깊이보기'를 연재합니다. 필자인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는 여론조사 분석 전문가로 TNS코리아 이사, 청와대 행정관 등을 지냈습니다.

20대 국회 첫 교섭단체대표연설이 끝났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중향 평준화’라는 키워드를 제시했고,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기업 개혁’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격차해소’를 강조했다.


재벌 개혁이나 기득권 타파, 양극화 해소, 복지와 증세 등 여야 3당 대표의 교섭단체 연설 핵심 메시지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부적인 방향에서 다소간 차이를 보였지만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양극화 시대의 심각성과 그 해법에 주목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런데 유독, 안철수 대표의 연설에 대해서는 ‘모호하다’, ‘여전히 새정치가 뭔지 모르겠다’, ‘평론 같다’, ‘미래학자 아니냐’는 지적들이 등장했다.


정치적 평가절하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타당 대표의 연설을 깎아내리거나 트집 잡는 ‘당연한’ 관성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꼭 그렇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전부터 안철수 대표의 화법에 대한 논란은 계속 있었다. 추상적이고 제3자 관점이고 알맹이가 없고… 등등. 그러던 안 대표의 화법이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한 건 4월 총선 국면이 본격화되면서였다.


과거에 비해 톤이 강해지고, 직설적이 되고 때로는 비유와 유머도 구사하는 화법을 선보이면서 ‘안철수가 변했다’는 이야기가 등장했다. 그런데 이번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다시 과거의 화법 평가가 재등장 한 것이다. 실제 그런 부분이 있을까? 교섭단체 연설의 핵심 메시지와 구체적인 설명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분석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누구의 연설이 더 ‘좋은가’를 평가하기 위한 건 아니지만 비교분석을 위해 안 대표의 연설을 ‘미래학자 같다’고 短評한 김종인 대표의 연설을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두 당대표의 연설원고에서 키워드로 제시한 항목과 그에 대한 부연설명이나 해법과 관련되었다고 판단되는 내용들만 추렸다. 당위적 개념설명이나 상식적 부연설명에 그친 것들은 가급적 제외했고, 어떤 방향성을 제시한 경우, 自黨의 입장이나 각오가 포함된 경우, 구체적 해결책이 언급된 부분들만 뽑았다.


분석의 정밀성, 타당성이나 객관성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상식적인 선에서 원고의 내용을 살핀 것이고 나름대로 어떤 편견을 두지 않고 작성 해 본 것이다. 반론이나 이견이 있다면 달게 받겠다. 음영색을 입힌 부분은 화두로 제시된 내용들이고 그 아래 내용은 화두에 대한 구체적 언급 중 어떤 구체성이 더해진 내용을 적시했다.


내용 중 파란색 글자 부분이 어떤 구체적 해법이나 단초를 언급한 부분이다. 적색 내용은 당의 입장이나 각오가 담긴 내용이라고 판단한 부분이다.


김종인 대표의 연설은 위 표에서 끝나지 않는다. 개헌 관련 언급이 있었고, 더불어민주당이 수권정당으로 거듭나겠다는 각오가 마지막이었다. 두 항목은 분석에서 제외했다.


꼼꼼히 보기 전에는 3당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모두 비슷하리라 생각했다. 화두를 던지고 몇 개 나름의 방향이나 대안을 제시했겠지만 대체로 ‘개념적이고 선언적 방향’을 제시하는 내용이 주류였을 것이라고 봤다.

내용을 하나하나 뜯어보니 김종인 대표가 ‘미래학자 같다’고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었다. 안철수 대표의 연설문에서 안 대표가 제시한 화두에 대해 구체적 해법까지 전개시킨 대목은 ‘상대적으로’ 분명히 적었다. 주로 화두로 내 건 개념에 대한 세세한 설명이나 그 화두를 내 걸게 된 당위성 설명이 많았고 구체적 대안을 제시한 경우는 드물었다.


물론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당이 추진하는 정책의 구체적 내용까지 소개하는 데 적합한 자리는 아닐 것이다. 포괄적으로 전체를 아우르는 키워드와 20대 국회에서 당이 주력할 핵심 분야를 소개하는 정도가 적절한 자리이긴 하다. 그렇게 본다면 너무 세세한 내용들로 채워 핵심 화두가 무엇인지 헷갈릴 정도로 디테일만 추구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향은 아닐 수 있다.


그렇더라도 3당이 차례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진행하고, 서로 같거나 다른 화두들을 제시하면서 구체적 방향을 적시하지 않으면 추상적 선언문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핵심적인 대안들을 곁들여 어떤 방향으로 이 과제들을 해결하려는 것인지 밝혀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안철수 대표의 연설은 두 가지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지적한대로 ‘구체성’ 부분이다. 격차해소를 상당한 비중으로 언급했지만 구체적 대안 수준까지 나간 것은 고위공직자수사처 설치 하나였다. 나머지 내용은 어떤 격차와 차별이 존재하는지와 어떤 것들을 극복해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이었다. 하나 더 있긴 하다. 국회차원의 로드맵 구성을 제안했다. 그러나 상임위를 넘어선 수준의 전체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로드맵을 작성하자는 것은 수순이고 도구다. 국민의당 입장에서 격차해소의 핵심적 방안으로 어떤 것들을 구상하고 있고 추진할 것인지를 더 밝혔어야 했다.


두 번째 부족하다고 생각된 것은 ‘각오나 결의’ 부분이다. 국민의당이 어떤 것을 할 것이고 어떤 각오로 임하겠다는 당 차원의 결기를 드러낸 대목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화두에서 국회차원의 특위나 논의가 필요하다는 정도로 맺음이 되어 있다. 논의는 당연히 필요하다. 특위도 효과가 있다면 설치해야 한다. 궁금한 것은 ‘무엇을’ 논의할 것인가에 있지 논의를 할 것인지 아닌지에 있지 않다. 평론처럼 들렸다는 어떤 지적은 이런 부분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안철수 대표의 교섭단체대표 연설문을 살펴봤다. 안철수 대표를 깎아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연설에 대해서도 ‘남의 나라 이야기만 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정치가 사용하는 언어가 더 구체적이어야 하고, 모두에게 듣기 좋은 선언문이 아니라 정당과 정치인이 추구하는 정책-노선을 제대로 드러내는 언어가 확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도해 본 분석이다.


특히 안철수 대표는 내년 대선의 대권주자로 이름을 올려놓은 정치인이다. 안 대표가 이번 연설에서 제기한 이슈들에 대해 준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구체적 연설이 불가했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 ‘비장의 무기’처럼 어떤 해법들을 뒤에 숨겨놓고 ‘때가 되면’ 밝히겠다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 늘 모든 문제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그 구상을 드러냄으로써 보다 생산적인 논쟁과 토론이 가능할 것이고, 국민들도 정치인과 정당에 대한 이해를 더 깊게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남권 신공항 문제가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 나면서 여진(餘震)이 상당하다. 국제공항을 짓는 엄청난 사업이 표를 공략하기 위한 정치 구호로 변질되었을 때 잉태된 문제다. 차기 대선을 준비하는 후보들은 낙후된 지역경제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 균형발전을 이루는 대안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내놔야 한다. 그 방법의 타당성과 추진계획, 반대론에 대한 대응방안까지 준비되어야 한다. 그런 준비 없이 대선에 뛰어든 후보들은 쉽게 ‘대규모 개발공약’의 유혹에 휩쓸리기 마련이고 지역주민이나 언론, 지역정치인들도 모두 그 공약 하나를 붙들고 선거를 치르게 된다.


어떻게 국가를 경영할 것인지, 내재된 문제들을 어떤 식으로 풀어갈 것인지 구체적인 이슈들을 갖고 토론하고 논쟁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러려면 정치인들의 언어가 더 구체화되어야 한다. ‘잘사는 나라, 행복한 국민, 공정한 사회’ 같은 구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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