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의 정치 깊이보기]친박의 잘못된 손익계산서

[the300]

편집자주the300이 여론에 나타난 민심 흐름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우리 정치 현상들을 한단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이상일의 정치 깊이보기'를 연재합니다. 필자인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는 여론조사 분석 전문가로 TNS코리아 이사, 청와대 행정관 등을 지냈습니다.

6월 16일. 새누리당 혁신비대위가 탈당 무소속 의원들의 일괄복당을 ‘전격적으로’ 의결했다. 당장 친박계 의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초재선 의원 몇명이 모여 정진석 원내대표 퇴진 같은 격한 발언들을 쏟아냈다. 김희옥 위원장은 비대위원장으로서 자괴감이 든다며 당무를 거부하고 칩거에 돌입했다.

6월 17일.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기 힘든 비대위 의결사항을 뒤집을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과 또 한 번 실력행사로 비대위와 비대위 결정을 무력화시키는 힘의 논리가 초래할 역풍에 대한 우려 때문인지 복당 파문은 비교적 조용히 매듭이 지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기왕 복당이 결정된 것을 어찌할 수 없다’는 쪽으로.

6월 19일. 김희옥 비대위원장이 당무복귀를 선언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그 전에 김 위원장을 찾아 90도 인사를 하며 복당 결정과정의 과격한 언사를 사과했다. 그러나 계파갈등, 친박의 노여움은 결코 사라진 것 같지 않다. 김희옥 위원장은 권성동 사무총장 경질을 복당의 명분으로 요구했다. 권 사무총장은 ‘비대위 결정의 책임을 개인에게 물을 수 없다’며 사퇴를 거부하고 있고 비대위는 파행 후 첫 회의를 열었지만 위원장이 제기한 사무총장 교체 안건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정상화를 시작했다.

뇌관은 그대로 둔 채 매번 찢어진 부위만 일단 꿰매고 보는 새누리당식 갈등봉합 수순이 그대로 재연되는 모양새다. ‘대충’ 봉합된 상처부위는 다시 곪아터지고 새로운 상처를 깊게 하면서 점점 인화성을 높여가고 결국 갈등의 분출지점이 되고 만다. 유승민 의원의 공천배제와 탈당, 복당 논란 과정이 그랬고, 1차 혁신비대위 구성을 무력화시키고 재가동하는 수순이 그랬다. 권성동 사무총장 경질 이슈도 그런 전철을 그대로 답습할 가능성이 상당해 보인다.

6월 20일. 친박계 초재선 의원 이십여명이 다시 모여 권성동 사무총장 사퇴, 정진석 원내대표의 의총 소집과 복당 의결과정 해명, 복당 의원들의 소회를 밝히는 자리가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고 한다. 점입가경이라는 말 외에 별로 생각나는 단어가 없다. 사무총장 교체는 김희옥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언급한 사안이라 하더라도, 복당 의원들이 의총에 나와 각자 견해를 밝히라는 말은 뒤집어 얘기하면 유승민 의원에게 공개적 충성맹세와 셀프 사상검증에 나서라는 말과 무엇이 다를까. 어떤 자격으로 친박계 의원들이 모여 그런 식의 요구를 하는 것인지, 그 요구의 타당성이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권 사무총장을 경질한다면, 혁신비대위는 김희옥 위원장의 ‘명분’을 세워주기 위해 자신들이 의결한 복당 결정의 과정과 내용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책임을 사무총장인 동시에 비대위원의 일인인 권 사무총장에게 모두 덧씌우는 데 동의해야 한다. 그리고 나면 혁신비대위원장이 아니라 친박비대위원장을 자임한 위원장이 남게 될 것이고, 힘의 논리에 굴복한 비대위가 남는다. 전당대회까지 남은 기간 동안 중립적으로 계파청산과 혁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은 공허한 말이 되고 비상대책위원회는 그야말로 ‘임시위원회’ 정도로 격하될 것이다. 친박의 힘의 정치를 목격한 비박계는 그에 맞서 전당대회를 앞두고 세력화와 집단행동에 돌입하는 것이 그 다음 예견되는 수순이다.

만약 권성동 사무총장 경질 이슈가 불발된다면, 김희옥 위원장은 복귀 명분 일성으로 제기한 이슈에서 패하게 되고 혁신비대위는 위원장과 비대위원들이 서로 반목하는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안그래도 단기 혁신기구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냐는 우려가 큰데 내부 갈등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비대위가 될 것이고, 친박계는 다시 뭔가 다른 수를 내려 할 것이다. 유승민 의원을 복당시킨 비대위와 비박계 사무총장이 당을 운영하는 체제를 그대로 두고 전당대회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 마뜩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어떤 무리수가 등장할지 모르고, 당은 또다시 총선 수준의 내전 상황에 돌입할 수도 있다.

두 가지 방향의 시나리오는 물론 단순화시켜 본 가상의 상황일 뿐이다. 그러나 새누리당 계파갈등의 뇌관으로 작용한 탈당-복당 이슈를 여기서 매듭짓지 못하고 사무총장 경질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시킨 것은 어느 쪽으로 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악수처럼 보인다. 이겨도 져도 상처만 남는 문제를 막중한 위치의 비대위원장이 제기함으로써 스스로 계파갈등의 한 복판에 위치하게 된 셈이다.

새누리당 친박. 그들의 정치계산법은 타당할까. 친박의 복잡다단한 정치 시나리오를 단순화시키면 아마 이렇지 않을까.


친박 적어도 중립적 우호 성향의 인사가 비대위원장을 맡아야 하고, 원내대표도 그래야 한다. 전당대회까지 비박계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유승민 의원은 복당을 불허해야 하고, 전대 이후에 친박이 안정적으로 당권을 접수한 후에나 검토할 볼 사안이다. 그렇게 당권을 다진 이후에 반기문 대망론을 띄우고 반 총장을 영입한다면 대선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 그 전에 이원집정부제로 개헌까지 갈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반기문 대통령-최경환 총리 같은 구도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정도가 친박의 계산서에 담긴 ‘희망적이고 정상적인’ 시나리오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이 계산법은 틀렸다. 친박의 배타성이 강해질수록, 계파 순혈주의가 현실화될수록 새누리당의 외연은 좁아지고 지지기반은 축소될 것이다. ‘친박당’으로 재편할수만 있다면 충분히 만족스럽고 정권재창출 같은 것은 하늘의 뜻에 맡길 뿐이라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호위대를 자처하는 친박이라면 그들이 두어야 할 최종 목표는 정권재창출이어야 한다.

5년 단임제 정권은 성과는 적고 벌여놓은 일은 많은 상태로 임기가 끝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직전 이명박 대통령이 그랬고, 그 전 노무현 대통령도 그랬다. 두 전직 대통령의 퇴임 후 운명을 가른 건 오로지 한 가지 이슈다. 정권을 빼앗긴 전직 대통령과 그렇지 않은 대통령의 차이다. 친박이라는 기묘한 명칭의 계파가 의미를 가지려면 박근혜 대통령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드는 길에 헌신하는 것 뿐이다. 성공한 대통령의 ‘최종 성과’는 당연히 정권을 연장시켰느냐 여부로 판명된다.

그러나 총선 전부터 보인 친박계 일부 인사들의 행태는 차라리 정권을 내 주더라도 당을 친박 순혈조직으로 재편해서 퇴임 대통령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처럼 읽힌다. 그 셈법도 잘못됐다. 정권을 빼앗기고 ‘폐족’이 된 친노가 정치적으로 부활하는 데 10년이 걸렸다. 그러고도 총선에서 친노의 이름을 모두 빼고 외부 인사를 모셔와서 겨우 총선에서 어부지리 승리를 얻은 정도다. 친노의 이름으로 정권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TK와 보수층이 받쳐주는 ‘친박’은 다를 것이라는 착각이 손익계산서를 잘못 작성하게 한 건 아닐까. 친박은 아직도 보수의 균열, TK의 이반과 PK의 반란의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친박이 전가의 보도처럼 오매불망 고대하는 반기문 총장만 해도 그렇다. 친박이 꿈꾸는 대로 움직여 간,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계파정당으로 거듭난 새누리당에 몸을 싣고서 과연 대망을 이루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할까. 당내에 유승민 의원 같은 경쟁자 한 사람도 견뎌낼 수 없는 수준이라면 친박은 계파 관점의 당권-대권 시나리오는 일찌감치 접는 게 옳다. 경쟁을 인정하고 지지기반을 확장해 선거를 치르는 것이 정치다. 밀어내고 문을 걸어 잠그고 '우리끼리' 정당으로 향할 때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것인지는 자명하다.

총선 패배 이후에도 전혀 변화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친박, 그들의 정치시계는 8월 9일 전당대회를 끝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맞춰진 타이머처럼 보인다. 대선과 그 이후까지 정치시계의 작동기한을 늘리고, 친박은 정치의 손익 계산서를 다시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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