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의 정치 깊이보기]정치인의 이름, 정치인의 생각

[the300]

편집자주the300이 여론에 나타난 민심 흐름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우리 정치 현상들을 한단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이상일의 정치 깊이보기'를 연재합니다. 필자인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는 여론조사 분석 전문가로 TNS코리아 이사, 청와대 행정관 등을 지냈습니다.
 #. 강남역 사건, 구의역 사고, 삶의 질 최하위권, 미세먼지 그리고 원구성 협상


중요한 일이란 무엇일까. 정치권은 ‘중차대한’이란 표현을 즐겨 쓴다. 원구성 문제는 향후 입법권력의 향배를 좌우할 ‘중차대한’ 문제라고 여야는 입을 모으고 있다. 그렇게 ‘중차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서로 양보할 수 없고 국회법에 정해진 시한 같은 건 어겨도 그만이라는 것이다.

총선이 끝나고 50여일이 지났고 그 사이 우리사회에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들이 있었다. 강남역에서는 한 여성이 아무런 이유 없이 살인의 대상이 됐고, 구의역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한 청년이 부조리한 사회구조 속에서 힘겹게 일하다 짧은 생을 마감했다. 섬으로 부임한 젊은 여교사는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성폭행의 대상이 되었고, 미세먼지로 고통 받는 국민들은 자구책으로 산소캔을 구입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직 검사장은 전관예우 관행을 이용해 로비와 청탁으로 거액을 받아 챙겼고 현직 검사장은 특혜로 백억대가 넘는 주식차익을 얻었다 검찰에 소환되었다. 재벌기업 오너는 부실비리 기업인에게서 수십억의 입점 청탁비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고, 그 기업인은 도박혐의 재판을 유리하게 하려고 수십억대 변호사비를 써 물의를 빚었다. 온라인에서는 생리대 살 돈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여학생들의 이야기가 터져 나왔고, OECD가 발표한 살의 질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38개국 중 28위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개별 사건·사고의 이면에는 하나같이 고착화된 기득권 사회, 불합리한 갑을관계, 왜곡된 성의식과 성차별, 소외계층에 대한 무관심, 근절되지 않은 전관예우, 유전무죄 무전유죄, 국민건강권과 환경문제 같은 그야말로 ‘중차대한’ 사회적 이슈들이 내재되어 있다. 경제규모 12위권이라는 대한민국의 외형적 발전 뒤에 삶의 질 최하위권이라는 농축된 문제가 놓여 있는 것이다.

원구성 협상을 가로막고 있는 국회의장 몫 배분. 그 문제는 도대체 얼마나 ‘중차대한’ 것일까. 국회법에는 국회의장 선출에 대한 규정이 명확히 되어 있다. [국회법 제15조(의장ㆍ부의장의 선거) ① 의장과 부의장은 국회에서 무기명투표로 선거하되 재적의원 과반수의 득표로 당선된다]가 그 규정이다. 과반 득표가 없을 경우 2차 투표 등 보완 규정도 후술되어 있다. 그 뿐이다.

여야가 서로 주장하는 1당에서 국회의장을 해야 한다거나 집권여당이 의장을 맡는 것이 관례라는 주장은 그냥 주장일 뿐이고, 과거 국회에서 ‘결과적으로’ 되어 온 결과일 뿐이다. 서로 협상이 되어 어느 당에서 국회의장을 맡을지 합의가 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국회법에 따라 투표로 선출하면 되는 것이다.

여야 3당은 하나 같이 민생을 기치로 내걸고 20대 국회는 과거와 다른 국회가 될 것이라고 公言했지만 국회의장 자리를 놓고 싸우는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空言이 되어가는 것 같다. 새누리당에서 국회의장을 맡는 것과 더불어민주당에서 국회의장을 맡는 것에 따라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저 중차대하고 심각한 문제들의 해결이 달라지는가. 정말 그렇다면 어느 당이 국회의장을 맡느냐는 그야말로 ‘중차대한’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여야가 국회법을 스스로 어겨가며 다투고 있는 국회의장 몫이 어느 당으로 돌아가든 국민들이 먹고 사는 문제, 어려운 사람들이 보호를 받는 문제, 구조적 고착성까지 보이는 부조리와 불합리한 관행의 해결 방법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누구의 몫이냐 하는 논쟁만 있을 뿐 왜 국회의장을 自黨에서 맡아야 하는지 설득하는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외면할 뿐 국민들은 국회의장 몫의 향배에 관심이 없다. 국회의장을 어느 당이 가져가느냐 하는 문제에 왜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 누가 되든, 어느 당이 가져가든 국민의 삶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의 삶에서 멀찌감치 비켜선 정치, 그런 정치의 모습을 20대 국회의 개막부터 또 지켜봐야 하는 것은 서글프다.

#. 사람보다 내용에 주목하는 풍토로 바꿔야 정치가 제자리를 찾을 것

정치가 일상과 멀어지고, 선거 시기에만 반짝 국민의 일상과 접점이 생겼다 소멸되는 현상이 반복되는 것은 정치를 보고 이해하는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반기문, 문재인, 안철수, 오세훈, 안희정, 김무성… 요즘 대선 이야기가 나오면 함께 등장하는 이름들이다. 그 외에도 박원순, 원희룡, 남경필 이런 이름들도 쉽게 눈에 띈다. 대선이 더 가까워질수록 이런 이름들이 언론에, 세간에 회자되는 빈도는 늘어날 것이다.

점점 대선 관련 여론조사 빈도는 증가하고, 이번 주에는 누가 앞섰고 다음 주는 순위나 지지율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소위 말하는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가 임박해지기 전까지는 도대체 이 ‘잠룡’들이 중요 현안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그것이 우리사회의 현실에서 합리적이고 좋은 대안인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다.

부의 편중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양극화 완화 대안으로 차기 주자들은 어떤 대안을 갖고 있는지, 복지와 증세라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 증세의 방법론에 대해 어떤 방식들을 펼칠 것인지, 부의 대물림과 계층사다리 붕괴, 교육에 의한 계층이동성 약화 현상의 대책은 무엇인지, 저성장 시대와 맞물려 있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근본적 해법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통일 구상과 대비는 어떻게 할 것인지, 남북관계는, 미중일 외교관계는 어떻게 풀 것인지 이런 문제들에 대한 대선주자들의 구상과 대안을 물어야 하고 그 해법에 대한 평가에 주력해야 하지만 이런 이슈들은 대선이 임박해서야 ‘잠깐’ 중요하게 다뤄진다.

정치인들이 우리 사회의 현안에 대해 입을 닫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만 해도 문재인 전대표는 증세 필요성을 얘기했고, 유승민 의원도 중부담 중복지론을 강연에서 밝혔다. 안철수 대표는 법인세 실효세율 정비를 주장했다. 그러나 구체적 대안까지 나가지 않는다. 증세든 경제민주화든 중복지론이든 어떤 방향을 얘기하다가도 ‘민감한’ 구체 대안 부분에 대해서는 입을 닫는다. 논란이 큰 이슈라는 논리다.

논란이 큰 이슈이기 때문에 적어도 차기 대선을 준비하는 주자나 정당의 리더급 정치인이라면 구체적 대안을 밝히고 그 대안에 대해 국민의 이해와 동의, 더 나아가 지지를 얻어야 하는 것 아닐까. 앞서 거론한 정치인들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 정치인들이 더 많다. 그나마 우리사회가 당면한 과제들에 대해 나름의 방향을 제시하는 정치인들은 나은 편이다.

그렇지만 더 나가야 한다. 언론과 시민사회는 더 깊숙하게 그들의 생각을 캐물어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대통령의 자리를 원하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과 정책대안들을 준비하고 있는지 알고, 알리고 평가하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의 생각과 더 가깝고 실제적인 대안을 많이 준비한 후보가 더 높은 지지를 얻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는 게 정석이다.

논란을 피해가지 않는 정치인, 논란의 한 복판에서 정치인들의 구상을 드러내는 언론, 그 내용에 주목하는 시민사회와 국민이 늘어나야 ‘이름’만으로 이뤄지는 정치가 퇴출될 수 있다. 두루뭉술한 화두만 있고 구체적 대안은 없는 ‘캐치 프레이즈 논쟁’에 그칠 때 정치는 화려한 수사 뒤에 숨어 국민의 일상과 멀어질 기회를 얻게 된다.

선거 때마다, 대통령 선거든 지방선거든 총선이든 公約과 空約 논란이 벌어진다. 선거 때 내놓은 公約=空約이 되어도 별다른 비판도 없다. 으레 그러려니 하는 관행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름과 경력, 인지도와 인기로 선거의 판도가 정해지고 좌우되는 그런 정치문화를 바꿔야 할 때다.

무엇을 준비했고 무엇을 했는지가 평가의 기준이 되어야 하고 그런 평가가 더 깊어지고 넓어질 때 정치가 국민의 일상과 더 가까워지게 될 것이다. 20대 국회의 첫 출발이 자리싸움으로 점철된 저 풍경은 어느 당이 몇 석을 얻을 것인지, 어느 후보가 1위를 달리고 있는지, 지역 텃밭의 맹주가 누가 될 것인지에만 관심을 기울인 총선 기간에 이미 잉태된 것이 아닐까.

다음 대선은 언론과 국민이 함께 선거판을 ‘다르게 보는’ 그런 선거가 되었으면 싶다. 후보의 인물과 출신지역, 소속 정당, 성향만 따져보는 게 아니라 도대체 어떤 국정 운영 구상을 갖고 있는지 어떤 대안들로 나라를 좀 더 낫게 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짚어보고 그 속에서 평가가 이뤄지는 그런 선거를 기대하는 건 지나친 바람일까.

미국에서도 대통령 선거가 한창 진행중이다. 공화당은 트럼프 후보가 사실상 당내 후보로 확정됐고 민주당은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이 예비경선의 매직넘버를 확보하며 대선후보로 사실상 확정됐다고 한다. 본선 전 당내 경선 단계인데도 공화당 트럼프 후보의 ‘논쟁적 이슈제기’에 미국 국내 뿐 아니라 우리나라까지 주목한 경우들이 있었다.

한반도 주둔 미군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거침없이 자신의 입장을 꺼내 놓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선거 결과가 어떻게 끝나든 그건 미국 국민들의 선택이겠지만, 적어도 누가 당선될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지 모르는 깜깜이 선거는 아닐 것이다.

‘알고 지지하고 투표하는 선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고민하고 시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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