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의 정치 깊이보기]반기문과 친박의 역함수

[the300]

편집자주the300이 여론에 나타난 민심 흐름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우리 정치 현상들을 한단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이상일의 정치 깊이보기'를 연재합니다. 필자인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는 여론조사 분석 전문가로 TNS코리아 이사, 청와대 행정관 등을 지냈습니다.
  반기문 UN사무총장이 임기 중 마지막 방한(訪韓) 일정을 마치고 돌아갔다. 잠재적 대권주자로 이름이 오르내린지 오래지만 명확한 의지를 표명하지 않던 반기문 총장은 이번 방한 일정 속에서 ‘정치적 의지’가 내재되어 있음을 충분히 드러낸 것으로 읽힌다.

 

귀국 전 기자회견을 통해 “방한 중 활동과 관련해서 오해가 없길 바란다”고 밝혔지만, JP 회동, 안동 류성룡 고택 방문, 국가 원로급 인사들과의 만남들이 그랬고 제주에서 열린 관훈 포럼을 통해 비교적 ‘소상히’ 권력의지가 비축되어 있음을 알렸다.

 

반기문 총장의 행보를 가장 반기는 쪽은 보수, 새누리, 친박 진영이다. 총선 패배와 대권 예비후보들의 몰락으로 야권 대선주자에 맞설만한 대항마가 부재한 상황에서 UN 사무총장이 전격 등장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반가울 일이다. 충청권에 연고를 둔 정치인들은 충청 대망론에, TK에 근거지를 둔 친박은 충청-영남 연합 정권 재창출론에 활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문재인-박원순-안희정 등 쟁쟁한 대선주자가 포진한 더불어민주당이나 원톱 대선주자로 창당에 성공한 안철수 대표로서는 반기문 총장이 대선 리그에 한 발짝 가깝게 다가선 것이 반가울리 없다. 반 총장의 잠재적 경쟁력을 평가절하하거나 검증 과정에서 오래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반 총장이 정말 UN 사무총장 임기를 마친 후 대선리그에 등장할 것인지, 등장한다면 어떤 루트를 선택할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지금 여야 정치권과 대권 예비주자들이 포진된 지형을 감안한다면 새누리당, 특히 친박의 지지를 받는 충청 출신 대선주자로 등장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정말 반기문 총장과 친박은 대선주자와 대선주자를 떠받치는 디딤돌로 서로 윈윈하는 관계가 될 수 있을까.

 

친박 진영에서는 벌써부터 반기문 대망론을 설파하며 반기문 대통령-최경환 총리 구도라는 희망적 전망을 내놓는 등 반기문 총장을 대선주자로 내세울 수 있음을 공공연히 밝혔다. 그런 움직임들이 충청권 정치인들의 적극적 기대와 맞물려 반기문 총장의 대권 행보 시계를 앞당긴 측면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친박의 반기문 영입론은 총선 전 김무성 전대표가 새누리당의 대선후보로 1위를 달리던 시점에 등장한 것이다. 대선주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비박계 대선후보를 달가워하지 않는 친박의 ‘친박성향 대선후보 옹립’ 의지가 <반기문 대통령-최경환 총리> 구도 같은 그림을 만들어 낸 발단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친박 진영은 반기문 총장의 대선리그 등장을 오매불망 고대하고 있고, 뚜렷한 대권주자가 사라진 새누리당내 전반적인 반응도 반 총장의 ‘새누리당行’을 기대하는 기류도 확산되고 있다. 물론 절차에 대한 관점을 다를 것이다. 공정한 경선을 통해 대선후보로 올라서야 한다는 주장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후 새누리당 친박의 행보와 반기문 총장의 선택에 담긴 역 함수관계다. 현재 예상되는 구도대로 새누리당 전당대회가 치러지고 친박이 당권을 접수한다면 새누리당은 총선 패배에 담긴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친박당’으로 대선 리그에 진입하게 된다.

 

지금과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못한 채 새누리당=친박당 인식이 고착될수록 새누리당의 지지기반은 위축될 것이고 반기문 총장은 본선 가능성을 약화시키는 새누리당 대선주자 자리를 선택할 확률이 낮아지게 된다.

 

역으로 반 총장이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가볍게 올라서기 위해서는 새누리당이 지금과는 다른, 총선 과정에서 여론의 역풍을 맞은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거듭나야 한다. 거듭난다는 말을 구체적으로 풀어보면 결국 ‘친박 패권주의를 극복한 혁신적 보수정당’ 쯤 될 것이다. 그런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친박들이 향후 전당대회를 비롯한 당내 주도세력으로 당분간 등장해서는 안된다.

 

여기에 친박의 딜레마가 놓여있다. 친박의 영향력과 당권 장악력이 커질수록 새누리당의 당세와 지지기반은 위축되고 반총장 영입 확률은 줄어든다. 반대로 친박의 세가 약화되거나 계파 논란 극복을 위해 2선 후퇴가 활발할수록 반총장이 새누리당을 선택할 확률은 높아진다.

 

친박,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에 협력하면서 정권재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어하는 친박은 텅 빈 대선주자 자리에 반기문 총장을 모셔올 수 있을까. 반기문 총장이 대선에 대한 결심을 굳힌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친박과 반기문 총장은 가까울수록 위력이 약화되고 멀어질수록 위력이 배가되는 역함수 관계로 보인다. 매우 전략적인 행보 속에서만 가능해 보이는 친박과 반기문 총장의 대망론 조합. 과연 이 그림은 성사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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